『프리네의 재판』 장 레옹 제롬 (1861년)
『프리네의 재판』 장 레옹 제롬 (1861년)

그림 프리네의 재판의 왼편에 남자(변호사)와 여인(프리네)이 서 있고, 오른편에는 재판관들이 세 줄로 앉아 있다.

왼편에 서 있는 남자는 여인의 옷을 확 벗기고 있고, 나신이 된 여인은 부끄러움에 오른팔로 눈을 가린다. 그와 같은 광경에 근엄한 재판관들은 화들짝 놀라 본인들도 모르게 입이 쩌~억 벌려지고 눈은 휘~둥그레지고 몸이 휘~엑 뒤틀리고 손도 순간적으로 번~쩍 올려진다. 몇몇 재판관은 넋 놓고 앉아서 혹은 일어선 자세에서 매우 세밀히 관찰한다.

기원전 4세기경, 고대 그리스 아테네에 프리네라는 고급 매춘부(일명, 헤타이라)가 있었다. 그녀는 당대 최고의 최고의 미모로 당시 유명한 조각가 프락시텔레스가 아테네 여신의 조각상에 그녀를 모델로 이용할 정도였다.

그와 같이 출중하다 보니 당시 고관대작과 권세가들의 애정 구애가 끊이질 않았다. 그 중 한 명이었던 에우티아스프리네에게 애정을 요구하였다가 거부당한다.

그는 애증과 질투에 눈이 멀게 되고, 모 사건(엘레시우스의 신비극??)을 계기로 그녀에게 신성모독죄를 뒤집어 씌운다. 그 당시 신성모독죄는 사형으로 처벌하는 최고수위의 중죄였다.

마침내 그녀는 법정에 세워졌고, 그녀의 애인이었던 변호사 히페리데스가 변론을 담당하였다. 변호사는 먼저 재판관들에게 논리적으로 그녀를 변론하였다.

하지만 재판관들의 이성은 그러한 변론에 전혀 동요하지 않았다. 재판관들은 신성 모독이라는 중차대한 사건에 객관적이고 냉엄한 이성의 잣대로 이미 판결을 굳힌 상태였다.

그런데 변호사는 갑자기 프리네가 걸치고 있던 옷을 확 벗겨 버린다. 그리고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여신상을 빚을 만큼 아름다운 이 여인을 죽여야 하겠습니까?” 이것은 재판관들의 이성이 아닌 감정에 호소하기 위하여 감행한 모험이었다.

그림 『프리네의 재판』 부분
그림 『프리네의 재판』 부분

'프리네주위를 삥 둘러쌓은 재판관들은 그녀의 완벽하게 아름다운 나신에 정신을 잃고, 객관적 판단 근거인 이성을 놓아버린다. 그리고는 본인들 내부에 웅크리고 있던 감정에 충실하여, 다음과 같은 논조로 포장하여 판결을 내린다.

저 아름다움은 신의 의지로 받아들여야만 할 정도로 완벽하다. 따라서 그녀 앞에선 사람이 만들어낸 법은 효력을 발휘할 수 없다. 그러므로 무죄를 선고한다.” 결국 프리네는 무죄로 판결되었다.

그림 프리네의 재판에서는 공적公的이고 객관적 법에 근거한 이성적 판단이 요구되는 사건에, 지극히 사적私的이고 주관적 감정이 개입되면서 전혀 다른 판결로 결론 지어진다.

인간은 어떤 결정을 내릴 때 객관적 이성보다는 주관적 감정이 우선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그러한 과정은 대부분 무의식적으로 진행되어, 정작 결정을 내린 자신도 인식조차 못한다.

그런데 재미있는 점은 감정에 의하여 결정지어진 판단을 외부에 발표하거나 표현할 때에는, 이성적 논리와 근거를 선별적으로 찾아 인용하고 삽입하여 교묘하게 포장하고 다듬는다.

그림 A. 유연휘발유 합병증
그림 A. 유연휘발유 합병증

1921년대 미국 오하이오주의 제너럴모터스(GM) 연구원 '토머스 미즐리'는 휘발유에 납을 혼합하면, 이상연소(노킹)이 줄어들면서 연료의 가성비가 좋아진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때부터 유연휘발유가 효력 좋은 연료로 광고 및 인식되면서, 대부분의 자동차에서 유연휘발유가 사용된다.

그런데 얼마 후 연구소 직원과 유연 휘발유의 생산공장 직원들이 납중독에 의한 환각, 정신이상의 신경증상과 심지어 사망하는 환자가 속출한다 (그림 A).

그림 B. 클레어 패터슨(좌), 로버트 키호우(우)
그림 B. 클레어 패터슨(좌), 로버트 키호우(우)

당시 미국의 젊은 과학자 '클레어 패터슨 (그림 B, )'은 납을 이용하여 지구의 나이를 측정하는 연구 중이었는데, 그 과정에서 대기 중 납 농도가 지나치게 높다는 것을 발견한다.

그는 공기 중 납이 오염되지 않도록 초청정실을 만들어 마침내 지구 나이가 약 46억년이라는 것을 계산해낸다. 그 후 대기 중 오염된 납의 근원을 연구하였고, 그 원인이 산업전반에서 과도하게 남용되는 납 그리고 특히 매일 타고 다니는 자동차에서 사용되는 유연휘발유라고 확신하고 이를 전문 학술지에 발표한다(1963).

하지만 그 당시 독물학의 권위자이며 클레어 패터슨보다 30년 선배인 '로버트 키호우(그림 B, )'는 클레어 페더슨이 제기한 문제에 대하여 인정하지 않았다. 그는 해당 분야의 최고 전문가인 자신이 보았을 때 그 분야의 애송이 클레어 패더슨의 연구결과와 주장은 뒷받침할 만한 자료가 없다고 묵살해 버린다.

클레어 패트슨은 결과 발표 후 유연휘발유 정유회사단체(미국석유협회)로부터의 연구지원이 끊기고, 그 단체의 후원을 받는 전문가 및 단체로부터 압력을 받고 또한 납 관련 국가전문위원회에서도 배제되는 등 탄압을 받는다.

하지만 클레어 패트슨은 그러한 방해에도 굴하지 않고, 공기 등 생활환경에서 납을 퇴출하기 위한 노력을 지속하였고, 마침내 23년 후(1986) 무연휘발유 사용을 의무화하는 납사용 규제법안이 발표된다.

그와 같은 법이 제정되기 전까지 수많은 사람이 영문도 모른 채 납에 중독되고 사망하였다. 미국 의회 보고서에 따르면 1927년부터 1987년까지 60년 동안 미국에서만 어린 아이 약 6,800명이 납으로 질병을 얻었으며, 매년 약 5,000명이 납중독으로 생명을 잃었다.

유연휘발유와 관련하여 수집된 객관적 자료와 증거에 대하여, 두 과학자은 서로 다른 결론을 내렸다.

, 동일한 자료와 증거에 대하여 두 과학자의 의견은 전~혀 달랐다. 그림 프리네의 재판을 참고하면 두 사람 중 누군가는 과학의 근간인 공적이고 객관적 이성보다는 사적이고 주관적 감정에 충실하였다.

과학의 생명은 객관성과 재현성이다. 과학자는 과학적 방법으로 관찰-실험-수집된 자료와 증거에 대하여 이성적 결론을 유추하도록 반복적으로 훈련받는다. 그런데 과학자마저도 학자學者의 양심을 버리고 객관적 이성보다 사적 감정을 중시하였던 사례가 과학사에 간간이 등장한다.

『니콜라스 튈프박사의 해부학 강의』 렘브란트 (1632년)
『니콜라스 튈프박사의 해부학 강의』 렘브란트 (1632년)

그림 니콜라스 튈프박사의 해부학 강의는 당시 26세의 젊은 렘브란트에 최고의 명성을 안겨준 작품이다.

당시 네덜란드는 네덜란드 황금시대 Dutch Golden Age' 로 암스테스담 중심의 무역과 상업이 번성하여 경제적 풍요로움이 한창일 때였다. 당시에는 현대판 단체사진 형태로 길드나 동호회 회원들이 같이 등장하는 그림이 유행이었다.

그러한 그림에는 길드, 동호회가 다수의 사람으로 이루어지다 보니 당연히 여러 사람이 등장한다. 여기에서 흥미로운 점은 화가에게 돈을 지불하는 방법이다.

그림을 의뢰한 사람들 중 대표자가 직접 돈을 모아서 화가에게 돈을 지불하는 것이 아니라, 그림에 등장한 사람들이 각자 따로 지불한다. 각자가 해당 그림에 자신의 모습이 잘 표현되었는지를 판단하고는, 만약 만족스러우면 화가에게 돈을 지불한다.

그림 『니콜라스 튈프박사의 해부학 강의』 부분
그림 『니콜라스 튈프박사의 해부학 강의』 부분

그림 니콜라스 튈프박사의 해부학 강의에서 당시 튈프 교수 해부학 강의를 참여한 사람들 7명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들의 시선이 일치하지 않는다.

7 명중 3명만이 튈프 교수가 진행하는 사체해부 강의에 집중한다. 맨 왼편의 한 사람은 튈프 교수의 눈을 마주치는지 아니면 다른 생각하는지, 사체 해부 강의에 집중하지 않는다.

더더욱 어색한 사람은 나머지 3명이다. 그들은 튈프 교수의 해부학 강의에 전혀 관심이 없는 듯, 그림을 그리는 화가를 의식하고 정면을 향하고 있다.

좀 더 심하게 표현하면, “나는 해부학 강의에 눈꼽만치도 관심이 없소. 내 얼굴이나 잘 나오게 그려 주시오!”라고 말하는 듯하다.

3명의 시선은 전체 그림의 구도에서 유난히 부각되어 집중력이 분산되고 자연스럽지 못하다. 그림 의뢰인들의 뜻을 존중한 작품이지만, 아무래도 지나치게 인위적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당시 렘브란트는 이 그림으로 절정 기량의 화가로 인정받아 명성과 부를 얻게 된다.

『야간 순찰』 렘브란트 (1642년)
『야간 순찰』 렘브란트 (1642년)

10년 후 렘브란트는 그림 야간 순찰을 발표하였다.

이 그림 제작은 그림 니콜라스 튈프박사의 해부학 강의의 의뢰처럼, 화승총길드 조직에서 의뢰되어 제작된 작품이다. 코크 대장과 16명의 대원이 자신들의 모임을 기념하기 위하여 단체 초상화를 의뢰하였다.

그림 니콜라스 튈프박사의 해부학 강의와 비슷하게 화승총 길드 구성원들 다수가 그림에 등장한다.

그림 중앙의 코크 대장이 한 손을 들고 무엇인가를 명령하고, 옆의 부관은 고개를 돌려 주위 깊게 명령을 듣고 있다. 코크 대장과 부관의 뒤 나머지 대원들은 곧 진행될 행진을 준비 중이다. 화승총을 점검하고, 행진 북을 조율하고, 옆 대원과 대화하고, 창을 다잡고, 복장 또는 자세를 점검 중이다.

코크 대장을 중심으로 행진을 준비하는 전체 대원들의 모습이 무척 다양하고 자연스럽다. 행진을 준비하는 대원들의 현장감과 생동감이 높아, 당시 어수선한 몸짓과 시끄러운 말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각자의 행동도 세밀하게 표현되어 얼마 후 코크 대장을 중심으로 암스테르담 도로를 행진하는 대원들의 멋진 모습이 연상될 정도이다.

그림 『니콜라스 튈프박사의 해부학 강의』 부분
그림 『니콜라스 튈프박사의 해부학 강의』 부분

그림 속 인물들은 니콜라스 튈프박사의 해부학 강의에서 처럼 자신을 드러내고자 일부러 전방을 주시하지 않는다.

얼굴만을 지나치게 강조하지 않고 각자의 몸집과 조화를 이루었다. 전체적으로 그림 야간 순찰은 그림 니콜라스 튈프박사의 해부학 강의와 비교하여 훨씬 자연스럽고 생동감이 넘친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렘브란트는 이 그림으로 그 동안 쌓았던 세간의 명성을 잃어버리게 된다.

그 이유는 그림의 의뢰자였던 코크 대장이나 대원들이 요구하고 기대했던 내용과 다르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모습이 명확하게 드러나기를 원했다. 하지만 막상 완성된 그림에서는 자신의 얼굴 모습이 뚜렷하지 않거나 옆 얼굴만 보이거나 다른 사람에 가려지거나 일부분만 그려져 있다.

렘브란트는 그림 야간 순찰에서 그림대상을 시대의 통상적 조류를 뛰어넘는 천재적 감각으로 대상을 이해하고 표현하였다.

하지만 동시대의 사람들에게는 렘브란트는 자신의 고집대로 그림을 그린다라고 오해되었고 결국 외면되었다. 결국 렘브란트의 명성은 점점 쇠퇴되었고, 그림 의뢰마저 줄어들면서 경제적 수입도 점점 줄어들게 된다.

그림 야간 순찰은 자신을 두드러지게 드러내고 싶어하는 의뢰자의 심중을 이해하고 표현하기 보다는, 전체적 조화와 예술성만을 고집하여 고객과의 약속과 계약을 어긴 렘브란트에게 다른 무엇보다도 우선 문제가 있다.

하지만 고객들이 그림 야간 순찰을 거부한 이면을 살펴보면, 그 내면에는 자신을 다른 누구보다도 돋보이게 드러내기를 원하는 인간의 본성이 숨어있다.

그와 같은 인간의 본성으로 천재작가의 뛰어난 감각을 인지하고 수용하는 안목이 좀처럼 열리지 않고, 천재작가를 귀히 여겨 더욱 성장하도록 도와주는 덕행이 더더욱 어려운 듯싶다.

와 같은 인간 본성은 지나치게 과잉되어 자신 몸을 손상시키거나 혹은 연루된 상대방을 신랄하게 매도하고 심한 경우에는 공식 조직이나 사회에서 확실하게 매장 시킨다.

『무대 위 별』 에드가 드가 (1878년)
『무대 위 별』 에드가 드가 (1878년)

무대 위 한 무희가 집중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다.

무희는 하늘을 품는 듯 양 팔을 넓게 벌리고, 한 발로 추켜세워진 몸은 마치 나비처럼 사뿐하다.

무희의 두 눈은 이 순간을 최대한 즐기는 듯 살포시 감겼고, 흥분으로 고조된 양 볼은 빨갛게 달아 올랐다.

밝은 흰색 바탕에 알록달록 꽃으로 장식된 의상의 무희는, 맑은 저녁 하늘에 떠 있는 별처럼 초롱초롱 빛난다.

무대 커튼 뒤에는 다음 장면을 준비 중인 여러 명의 무희들이 에둘러 서 있고, 무희를 향하는 그들의 몸짓은 다음 장면 준비의 설렘과 무대 위 무희에 대한 부러움으로 긴장되어 있다.

그런데 그 무희들 사이에 무대와 어울리지 않는 복장의 인물이 서있다.

그림 『무대 위 별』 부분
그림 『무대 위 별』 부분

얼굴은 무대 커튼으로 가리워져 있지만, 검은색 양복과 구두로 미루어 정장차림의 남성이다. 무대에 올려진 작품의 내용과는 전혀 관계없는 사람이다.

손은 바지 주머니에 찔러 넣고 곧게 뻘은 양 다리로 탄탄히 받쳐든 몸은, 무대 위 별처럼 빛나는 무희를 향한다. 얼굴은 드러내 놓지 않았지만, 복장과 몸짓이 무대 위 무희의 단단한 뒷배경임을 자처한다.

그는 무대 위 무희의 후원자이다. 그림의 배경지인 당시 파리에는 무용수들이 대부분 가난한 집안 출신이었다.

신흥 부자들은 그러한 무용수들에게 경제적 뒷받침을 해주었고, 그들에게는 자신이 후원하는 무용수의 수업 받는 모습을 직접 참관할 수 있는 혜택이 주어졌다.

런데 문제는 그들은 자신들이 후원하는 십대 초 중반의 무용수를 대상으로 성적 욕망을 채웠다. 성공적 사업을 통하여 재력을 갖추고 그 재력을 바탕으로 당시 사회에 신흥 부르주아 계층의 권력가로 군림한다. 그리고는 그 재력과 권력을 이용하여 어린 나이의 가난한 무용수를 성적 노리개로 삼았다.

『발레교실』 에드가 드가 (1871-1874년)
『발레교실』 에드가 드가 (1871-1874년)

그림 발레 교실에는 발레를 배우는 어린 소녀들이 선생님을 중심으로 모여 있다. 열심히 발레 동작 중인 학생, 그 소녀를 면밀히 쳐다보는 다수의 학생들, 그 학생의 동작을 따라하는 일부 학생, 그리고 저 멀리 계단식 의자에는 갓 입학하였거나 수업을 막 끝낸 학생 여럿이 계단식 의자에 앉아 있다.

그림 『발레 교실』 부분
그림 『발레 교실』 부분

 

계단식 의자의 학생들 뒤에 평상복 차림의 여인들 여럿이 자리하고 있다. 이들의 시선과 몸짓은 발레를 배우려는 모양새는 도대체 아니다. 이 사람들은 발레를 배우는 학생들의 어머니들인데, 발레 교실에 참석한 이유가 그림 무대 위 별과 관계가 깊다.

나이 어린 소녀들의 어머니들은 그림 무대 위 별의 검은색 정장차림 뒷배들의 성적 욕망으로부터 별처럼 귀한 자식이 행여 피해 당하지 않도록 보호하고자 발레교실까지 직접 따라 나와 지키고 있는 것이다.

옛 중국 명나라 시대의 여곤呂坤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욕망에는 천욕天欲과 인욕人欲이 있다. 바람을 노래하고 달을 희롱하며 꽃을 찾고 버들을 따르는 일은 천욕이다. 이에 비해 여색이나 이익을 탐하는 것은 인욕이다. 천욕은 지니지 않으면 안 된다. 지님으로 인해 인생의 향기를 더 하게 되기 때문이다. 인욕은 버리지 않으면 안 된다. 이것이 있으면 인생이 더럽혀지기 때문이다.”

옛 현인께서 '인욕'을 조심하라 지적하신 것은 인간이 재력과 권력을 얻게 되면, 인욕의 유혹이 심히 빈번함을 익히 직접 보셨고 들으셨음이라. 그림 무대 위 별발레 교실은 인욕의 유혹에 쉽게 빠져드는 인간의 비이성적 모습을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에드워드 4세의 아이들』 폴 들라로슈 (1831년)
『에드워드 4세의 아이들』 폴 들라로슈 (1831년)

그림 에드워드 4세의 아이들에 촛불 하나 없는 어두운 배경 속 침대에 돌봐주는 어른 없이 달랑 두 아이만 있다. 그리고 그 아이들은 잠옷이 아닌 평상복 차림으로 잠자리에 들어갈 복장이 아니다.

한 아이의 손에 책이 들려 있지만, 두 아이 모두 책에는 집중하지 못한다. 침대에 걸터 앉은 아이는 눈에 초점이 없고 깊은 상념에 잠겨 있다. 책을 든 아이는 얼굴을 돌려 강아지가 바라보는 방향을 주시하는데, 눈이 마치 놀란 토끼모양으로 긴장하고 두려운 표정이다.

두 아이 모두 적막강산 속 외로움, 불안, 공포에 떨고 있다. 그림 좌하단의 강아지는 두 아이 방향이 아닌 반대 방향을 향해 있는데, 꼬리가 다리 사이에 묻혀 있다. 강아지는 반갑거나 즐거우면 꼬리를 바짝 세우고 세차게 흔들어대는 데, 그림처럼 다리 사이에 묻혀 있는 것은 불안과 두려움의 상황이다. 아이들의 표정과 강아지의 모양새는 방 바깥에서 점점 다가오는 상황이 결코 호의적이지 않다.

그림 C. 에드워드 4세(좌), 리처드 3세(중), 에드워드5세(우).
그림 C. 에드워드 4세(좌), 리처드 3세(중), 에드워드5세(우).

영국의 에드워드 440세에 요절하면서, 그의 아들 에드워드 5세가 고작 13살의 나이에 왕권을 이어 받는다.

하지만 곧 바로 왕권다툼에 휘말렸고, ‘에드워드 4의 동생 리처드 3가 마치 우리나라 수양대군이 조카 단종에게 그러했던 것처럼 왕권을 찬탈한다. 그리고는 에드워드 4의 두 아들, 에드워드 5, 슈루베리의 리처드을 런던 탑에 가두고는 종국에는 살해한다.

그림 에드워드 4세의 아이들에서는 런던 탑에 갇혀 죽음을 기다리는 에드워드 4세의 두 아들을 표현하였다. 당시 에드워드 5(그림에서 침대에 걸터 앉은 아이)13살이었고 동생 슈루베리의 리처드(그림에서 책을 들고 있는 아이)는 그보다 어린 9살이었다.

삶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두 아이는 삼촌의 명예욕에 제물이 되어 인생의 꽃도 피워보지 못하고 죽음을 맞이한다. 명예욕에 휩싸인 인간은 같은 피를 나누고 한 솥 밥을 먹고 살갗을 부딪히며 살았던 형제, 자손 더 나아가 부모와도 등을 돌리고 심하면 살육 분쟁하는 비이성적 행동을 불사한다.

『니콜로 마키아벨리』 산티 디 티토 (16세기)
『니콜로 마키아벨리』 산티 디 티토 (16세기)

도덕적 삶과 전혀 다른 방식으로 운영되는 정치의 냉혹한 원리를 담은 군주론을 저술하고 평생 통일 이탈리아를 꿈꾸었던 마키아벨리는, 국가를 부강 시키고 국민을 행복하게 만들기 위하여 부도덕한 행위도 용납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인간에 대하여 다음의 말을 남겼다.

인간은 간사하고 조그만 이익에도 신의를 저버리고 이기적이며 교활하며 목적을 위하여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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