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의료시장개방을 찬성하는 재경부와 반대하는 시민단체 사이의 시각 차이가 하늘과 땅 만큼이나 멀다. 양측이 끝없이 공방을 펼치는 가운데 의료계와 병원계는 부득이 의료시장을 개방하겠다면 외국 병원에 부여되는 모든 혜택을 국내 의료기관에도 똑같이 적용하라는 입장이다.

서울의대 의료정책연구실(실장 허대석ㆍ내과)은 시장개방을 보는 재경부와 시민단체의 시각이 모두 지나치게 경직됐다고 비판하고 있다. 단순한 찬반 논의를 넘어서 「의료의 산업화 전략」 차원에서 의료시장 개방이 논의돼야 한다고 촉구하고 있다.

의료정책연구실은 개방 지지자와 반대자의 의견이 합의점을 찾지 못하는 이유를 「의료 패러다임의 변화」를 인정하지 않고 있기 때문으로 보고 있다. 그동안 『모든 의료는 필수적 재화이므로 모든 국민에게 공평히 분배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으나 『이제 이 명제의 일부는 맞지만 일부는 맞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다. 질병치료에 필수적인 의술만이 아니라 부가적이고 선택적인 분야가 크게 성장하고 있는 현 상황에서는 『모든 의료가 필수일 수는 없다』는 논지다.

의료정책연구실은 이제 「모든 의료는 필수」라는 대전제가 「의료 내에 필수적/선택적 의료가 존재한다」는 패러다임으로 변화되었음을 인정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를 인정한 상태에서 필수적 의료 부분은 보장성을 강화하고, 선택적 의료 부분은 시장논리로 접근하여 국제 경쟁력을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참여정부가 들어서면서 주장해온 공공의료의 확충은 당연히 필수적 의료에 집중돼야 할 것이다.

연구실에 따르면 질병치료에 필수적인 부분은 정부가 사회안전망으로서의 기능을 담당하여 국민 건강권을 수호해야 한다. 싱가포르의 경우 메디세이브(medisave)나 메디펀드(medifund)를 통해 국민 모두가 기본적인 의료보호를 받을 수 있는 공보험의 토대 위에서 활발한 개방정책이 펼쳐졌음을 상기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의료정책실은 『이제 모든 의료가 필수일 수 없다』는 전제하에서 의료시장개방과 민간보험 도입, 의료산업화 구축 등의 논의를 선택적 의료의 측면에 국한시킬 것을 촉구하고 있다. 선택적 의료 분야의 경우 의료 산업화를 통해서 수익을 창출할 무한한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는 의료정책연구실은 『의료시장 개방은 단지 일부 의료기관의 의료서비스를 개방하는 것에 국한되는 차원에서의 문제가 아니다』면서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민간보험 도입과 영리법인 인정, 의료개방 등을 모두 같은 맥락에서 보아야 하며, 정부는 이 문제들을 연계해서 해결방침을 결정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렇다면 어디까지를 필수 영역으로, 어디서부터를 선택 영역으로 볼 것인가? 의료정책연구실은 『필수와 선택의 합리적인 판단기준은 임상연구를 통한 과학적 근거가 중심이 되어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이미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에서는 임상연구가 의학발전을 위한 학문적 연구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증거중심의학(evidence-based medicine)에 근거하여 실제 국가가 부담하는 의료서비스의 범위를 결정하는 기준으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의료개방과 산업화의 대상인 선택적 의료와 공보험이 보장돼야 하는 필수의료의 범위를 설정하는 데에도 공정하고 객관적인 임상연구 결과를 이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신재경 기자/sjk1212@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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