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칼럼)

서울대 입시 문제를 놓고 청와대와 서울대가 벌이는 논전을 보면서 의료분야에서 이러한 논전이 가능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시장경제를 지향함에도 불구하고 교육과 의료만큼은 형평이 강조되어 하향평준화란 부작용을 초래하고 있다.

교육분야는 서울대와 같은 대표주자가 있어 모깃소리라도 내 보지만, 의료분야에서는 어떤 병원이 모깃소리만큼이라도 낼라치면 “병원이 공익성을 무시하고 돈벌이에 눈이 멀어…” 식의 비난이 앞선다. 그렇다 보니 국내 의료에 불만인 사람이 해외로 빠져나가도 원정출산 정도로 치부해 버리고, 외과계 수련의가 모자라도 일시적인 수급 불균형으로 치부하여 우리 의료의 앞날을 어둡게 하고 있다.


1970년대처럼 소득이 낮아 병·의원을 옆에 두고도 이용을 못하던 시절이라면 형평이 당연히 중요하다. 그런데 전 국민이 의료보장권에 들어온 지가 벌써 16년이 지나, 의료 이용률을 본다면 외래에서든 입원에서든 선진국 수준을 앞지르고 있다. 농촌과 도시 간에도 큰 차이가 없다.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하는 의료급여의 이용률은 오히려 건강보험의 이용률을 앞지르고 있다. 그리고 경제면에서 본다면 세계 10위권의 GDP 규모에 2만달러 소득시대를 생각하고, 소형보다는 중·대형 아파트가 불티나게 분양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이럼에도 불구하고 의료에만 형평을 강요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라 하겠다.


우리 의료의 수준을 높이기 위해서는 먼저 ‘공공의료’와 ‘민영의료’에 대한 구분부터 바꾸어야 한다. 민간 병·의원이 제공하는 서비스라고 단순히 민간의료로 치부하는 방식은 옳지 않다. 민간 병·의원이지만 정부가 정한 건강보험 의료수가를 지키고 그 이행 여부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꼬박꼬박 심사받는다면 이를 민간의료로 간주해서는 안 된다. 민간의료란 건강보험 의료수가와는 무관하게 병·의원이 독자적으로 의료수가를 매기고 심사도 받지 않는 자율적인 의료 서비스를 의미한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우리나라에는 현재 민간병원은 있지만 민간의료는 없다.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희망하는 병·의원에 대하여 자유롭게 의료수가를 받게 민간의료를 허용해야 한다. 이렇게 될 때 민간의료를 다루는 병·의원은 해외로 빠져나가는 환자를 끌어들이기 위하여 노력할 것이며, 공공의료는 이러한 민간의료에 환자를 빼앗기지 않으려고 경쟁하게 되어 우리의 의료 수준은 세계 10위권 안에 들어가게 될 것이다.


그리고 민간 병·의원이라도 건강보험 환자를 보게 되면 공공의료이기 때문에 낮은 의료수가를 다른 측면에서 보상해 주어야 한다. 같은 의료수가로 건강보험 환자를 보는데 국·공립 병원만 정부가 지원을 한다는 것은 모순이다. 사립학교가 제공하는 교육도 공교육으로 간주하여 정부가 지원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우리보다 전 국민 의료보험을 늦게 달성한 대만에서는 건강보험 환자를 보지 않는 민간의료를 허용하고 있다. 그러나 병원의 98%, 의원의 91%가 건강보험 환자를 받는 공공의료권에 있다. 민간의료를 이용하는 사람은 별도로 높은 수가를 지급해야 하기 때문에 대다수 국민들은 공공의료를 이용하게 된다.


몇 퍼센트에 불과한 자율의 허용을 국민 위화감을 이유로 반대한다면 자본주의 국가를 포기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공공의료의 붕괴를 두려워하여 반대한다면, 그렇게 취약한 공공의료는 국민을 위하여 빨리 붕괴시키고 새로운 공공의 틀을 마련하는 것이 낫다. 건강보험의 보장성이 보다 높아진 다음에 허용하자는 주장도 있지만, 민간의료의 허용이 건강보험의 보장성을 높이는 데 오히려 유리한 측면이 많음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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