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과 건강을 담보로 진행되는 임상시험. 신약개발을 위한 중요한 과정이지만, 일부 임상시험기관에서는 피험자의 동의를 제대로 안 받거나, 시험의약품의 부작용에 대해 충분한 정보를 주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전현희 의원(민주당, 보건복지위)이 식품의약품안전청으로 제출받은 ‘임상시험 현황 및 실태조사 결과’ 자료에 의하면, 최근 5년간 임상시험 실시기준 위반 및 피험자 동의규정 위반 등 총 64건의 행정처분이 내려진 것으로 나타났다. 피험자에게 제대로 동의서를 받지 않거나 대필하여 11건의 행정처분이 내려졌고, 피험자 선정기준 위반에 따른 행정처분도 10건이나 됐다고 밝혔다.

작년 서울소재 A병원에서는 임상자격을 갖추지 않은 간호사가 피험자 동의서를 작성했을 뿐만 아니라 전가의무기록까지 작성했다. 또 다른 서울의 B병원에서는 동의서가 변경되었으나 서면으로 재동의도 받지 않았고, 임상시험 문서를 담당의사가 아닌 간호사가 임의로 작성한 일도 있었다.

또한 서울 K병원의 경우 식약청 조사 전까지 30명의 피험자 동의도 받지 않고 임상시험을 진행하다 적발되기도 했다. 서울소재 C병원은 임상시험에 대한 정보를 피험자에게 충분히 알려야 함에도 시험책임자의 위임을 받지 않은 사람이 피험자의 동의를 받는 일까지 있었다.

임상시험 전 피험자 동의와 충분한 정보제공도 중요하지만, 임상시험 중 피험자 선정기준을 위반한 경우도 다수 발견되었다. 서울의 한 D병원은 피험자 선정기준에 맞지 않음에도 임상시험에 참여시킨 일이 몇 차례 적발되었고, 분당S병원에서도 피험자 선정기준에 적합하지 않은 피험자 12명을 등록해 임상을 진행했다가 식약청 조사로 경고처분을 받았다.

임상시험은 식약청장이 인정한 임상시험실시기관에서 실시되어야 하나, 작년 6월에는 임상기관이 아닌 곳에서 임상시험이 실시되다 적발되었고(품목 임상업무정지 6개월), 아예 식약청 임상허가도 받지 않고 임상시험도 작년에 두 건이나 적발되는 등 임상시험 의뢰자(제약사)와 시행기관(병원)의 임상안전 불감증도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피험자의 안전과 권리 그리고 임상과정의 절차준수도 중요하지만, 피해 발생 시 이에 대한 보상이 적절히 이뤄지고 있는지 모니터링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도 현재 부재한 실정이다. 제약사와 병원들은 민간 보험사의 임상시험 피해보장보험에 가입할 수 있지만, 일반 피험자들은 가입할 수 없다. 또한 얼마나 피해보장이 이뤄지는지 통계조차 없다.

따라서 일관된 기준과 엄격한 절차에 입각해 ‘피해자 보상규약’이 마련되어야 하지만, 제약사 간 보상규정이 상이하고 추상적이어서 임상피해자의 보상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이에 2008년 식약청이 제약사 등과 함께 ‘피험자 보상규약’을 만들겠다고 말했지만, 4년이 지난 현재까지 피해자 보상규약안은 표류를 거듭하고 있다.

전현희 의원은 “임상시험은 국내제약사의 신약 개발의 가능성을 열어주고, 국내 의학계의 발전을 이끌 원동력임에는 틀림없지만, 임상을 시행하는 제약사와 병원이 피험자들의 안전과 권리를 도외시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말하고, “피험자의 안전과 권리를 위해 자기결정권을 최대한 존중하는 측면에서 임상기관에서는 임상의 효과와 부작용, 보상에 관한 내용을 피험자에게 충분히 설명하고 엄밀하게 동의를 받아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전현희 의원은 “임상 중 피해가 발생해도 피험자는 전문적 의학지식이 없어 제대로 된 보상을 받기 어려울 수 있기 때문에 구체적이며 표준화된 ‘임상피해자 표준규약’ 제정이 시급하다”고 지적하고, “보건당국이 임상시험피해신고센터를 설치한다든가, 임상피해 보상 관련 이견을 심의․조정할 수 있는 독립적인 심의기구가 설치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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