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정순섭 외과학회 총무이사, 권정택 신경외과학회 이사장, 신응진 외과학회 이사장, 김경환 심장혈관흉부외과학회 이사장, 정의석 심장혈관흉부외과학회 기획홍보이사.
왼쪽부터 정순섭 외과학회 총무이사, 권정택 신경외과학회 이사장, 신응진 외과학회 이사장, 김경환 심장혈관흉부외과학회 이사장, 정의석 심장혈관흉부외과학회 기획홍보이사.

“왜곡이 왜곡을 낳는 상대가치 연구를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합니다. 그 과정은 근거와 원칙을 바탕으로 객관적이고 공정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의사업무량, 진료비용, 위험도의 산출을 위해 독립된 전문가로 구성된 전담 상대가치연구 조직의 구성을 제안합니다.”

엄연하게 이 땅의 필수의료를 지탱하면서도 미래의 암울한 전망 때문에 절망감에 빠진 외과계는 “제대로 된 상대가치 연구 조직이 있어야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누누이 강조했다.

대한외과학회 신응진 이사장(순천향대부천병원)과 대한신경외과학회 권정택 이사장(중앙대병원), 대한심장혈관흉부외과학회 김경환 이사장(서울대병원)은 지난 18일 오전 11시 컨퍼런스하우스 달개비에서 합동 기자회견을 갖고 상대가치 논의 구조를 공정하게 개선하여 합리적인 개편이 없이는 한국 외과계의 미래를 보장할 없다고 단언했다.

  처음부터 단추가 잘못 꿰인 상대가치체계

대한외과학회 정순섭 총무이사(이대목동병원)의 사회로 진행된 이날 간담회에서 참석자들은 상대가치 도입 때부터 1, 2, 3차 개정을 거치는 동안 외과계가 수적인 열세 속에서 철저히 무시돼 왔다고 강조했다. 처음부터 단추가 잘못 꿰여 상대가치 간의 균형성이 상실했고, 그래서 지금의 외과 존폐 위기가 초래됐다는 것이다.

특히 “2007년 상대가치점수 1차 개정 당시 상식적이지 못한 조정 방식으로 만들어진” 현행 의사 업무량 평가 체계로 인해 “외과, 신경외과, 심장혈관흉부외과 등 메이저 과의 필수ㆍ고난이 수술보다 비교적 필수적이라 보기 어려운 소위 마이너 과에 더 많은 업무량이 배정”됐던 상황에 주목했다.

이후 10여년이 지나도록 기본 틀이 바뀌지 않은 채 상대가치 기준이 원칙 없이 시행됐고, 결국 외과계 전문의들은 “점차 번아웃 되고, 경영진으로부터 눈치를 봐야 하고, 의사사회로부터 동정적인 시선을 받는 자괴적인 상황”에까지 이르게 됐다고 했다.

  똑같은 시간 진료해도 대우는 내과의사의 절반

외과계가 간담회를 위해 준비한 자료에 따르면 상대가치제도에서 외과계의 소외 현상은 의사협회 상대가치연구단이 연구한 3차 상대가치 기준의 각 진료과별 의사업무량(안)만 봐도 쉽게 알 수 있다.

외과는 <표1>과 같이 9개 분과로 나뉘어 있는데, 그 총합을 보면 386개 행위에 의사업무량 총점이 1,074,253,437점이다. 행위 수가 절반 정도에 불과한 비뇨의학과나 산부인과와 비슷하거나 적고, 마이너 수술을 담당하는 이비인후과의 1/3, 안과의 1/4 수준이다. 행위 수가 110개밖에 안 되는 마취통증의학과의 1/6, 행위수가 60개인 내과 소화기내시경의 1/2도 안 되는 점수이다. 더욱이 검체 검사의 업무량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신경외과나 심장혈관흉부외과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이날 외과계 대표들은 “이러한 불균형에 대한 시정을 의협 상대가치연구단에 수십 차례 건의했으나, 아직도 과별 총점 고정이라는 이해하기 어려운 이유로 의사의 업무가 왜곡되게 평가되고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다”며 “필수 외과의 참담한 현실을 직시해주 것”을 호소했다. “수술을 위주로 하는 외과계 전체의 의사 분당 업무량 평균이 내과계 평균의 1/2밖에 안 되는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되묻기도 했다.

  “한국 외과계는 결국 소멸의 길로 접어들 것”

이밖에도 상대가치체계에서 외과계의 소외는 쉽게 볼 수 있다. ‘수술 위험도’라는 것도 유형별로 일률적으로 정해지면서 고위험ㆍ고난이도에 대한 고려가 전혀 없다(표2 참조). 진료비용 역시 부정확한 회계조사를 바탕으로 한 변환지수를 적용하여 현실성이 없다(표3 참조). 전공의와 간호사를 포함한 임상인력의 인건비마저도 환산지수로 깎아내린다(표4 참조).

더구나 업무 강도가 높은 수술을 총점 고정이라는 것으로 평가 절하하는 상황을 외과의사들이 얼마나 더 수용할 수 있을까? 외과계 대표들은 “이제는 인내의 한계를 느낀다”면서 “이 모든 수치들이 암울한 미래를 보여주고 있으며, 결국 한국의 외과계는 소멸의 길로 접어들 것”이라고 경고했다.

의사협회라고 이런 상황을 모를 리 없다. “모든 의사들의 부당함을 수렴하지 못하는 것이 과연 정의로운가” 물으니 “복잡한 이해관계 때문에 어렵다”는 답을 들었다는 것이다. 이 대답은 “기득권자의 횡포에 불과”하다고 외과계 대표들은 표현했다.

  의사 업무량 평가, 외부 전문가가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그래서 외과계 대표들은 “이제는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힌 의사협회가 아니라 독립적인 조직에서 공정하게 의사 업무량 연구를 진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외과학회를 비롯한 우리 3대 학회는 상대가치 의사 업무량 연구와 산출을 외부 전문가에게 맡겨 원점에서 재검토할 것을 요청한다”고 덧붙였다.

그리고 작금의 상황으로 볼 때 이러한 전환을 추진하는 역할은 의협보다 정부가 바람직할 것으로 보고 있었다. 정부가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마음에 안 든다고 마음대로 현행 상대가치체계를 벗어날 수도 없는 외과계가 불합리한 현 상황의 탈출구로 의협에서 기대할 바가 없다고 보고 정부에 기대는 모양새였다. 그 방향은 다음과 같은 언급에서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었다.

“상대가치 점수라는 말 그대로 진료행위는 상대적인 경중을 가려 책정해야 합니다. 우리가 기준으로 참조하는 미국은 외과수술 점수를 기준으로 다른 수술의 상대적인 경중을 비교ㆍ평가하여 의사 업무량을 평가하고 있음을 모르는 의사는 없을 겁니다.”

외과계 대표들은 “수가가 모든 것을 해결해준다고 믿지는 않지만, 상대가치 평가에서 적어도 객관성과 공정성은 있어야 하기에 이처럼 쓴 소리를 할 수밖에 없는 점을 양해해줄 것”을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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