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인이 맹인을 인도하는 우화』 피테르 브뢰헬 (1568년)
『맹인이 맹인을 인도하는 우화』 피테르 브뢰헬 (1568년)

여러 명의 맹인이 한 줄로 다리가 건너고 있다. 모두다 앞을 보지 못하는 맹인이라 앞 사람의 인도에 자신의 모든 것을 맡기고 행진할 수밖에 없다. 앞과 뒤 사람은 팔과 손으로 앞 사람의 어깨에 걸치거나 또는 적당한 길이의 나무막대로 서로의 존재를 연결한다.

행여 행렬에서 이탈되어 곤란한 상황에 빠질까 두려워 앞사람의 행보에 온 신경을 곤두세운다. 눈으로는 아무것도 볼 수 없으니, 그저 앞사람을 믿고 따를 수밖에 다른 방책이 전혀 없다.

그런데 대열의 맨 앞사람이 행진의 방향을 잘못 잡았고, 결국에는 다리 아래로 떨어진다. 행렬의 제일 앞에 위치한 맹인은 뒤 따르는 맹인 전체를 이끄는 리더이다.

전체 안위를 책임진 엄중한 임무를 부여받았지만 본인도 맹인인지라 앞을 전혀 보지 못한다. 나름 소신대로 발걸음을 옮겼는데 발을 잘못 내디뎌 다리 아래로 추락한다.

리더의 상황이 그리 되었으니, 리더를 철벽처럼 믿고 따르는 나머지 맹인들 모두가 머지않아 곤경에 빠질 처지이다.

『맹인이 맹인을 인도하는 우화』 부분
『맹인이 맹인을 인도하는 우화』 부분

그런데 시궁창에 빠진 맹인 리더를 따라가는 나머지 맹인들의 모습이 극히 인상적이다. 뒤 쪽 네 명의 맹인들은 맨 앞 쪽에서 벌어진 상황을 아직 눈치 채지 못하였다. 그저 앞 사람이 인도하는 대로 순순히 따라간다.

다른 생각 없이 바로 앞 사람의 걸음걸이에만 온 신경을 집중하고 열심히 따라갈 뿐이다. 그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이 무리의 대열에서 낙오되는 것이다. 혹시라도 행렬 중 앞 사람 어깨나 막대기를 놓쳐 내쳐지게 될까 봐 불안하여 온몸의 긴장을 늦출 수 없다.

네 명 모두 자신들의 리더가 안전한 길로 인도하리라는 믿음에 한 치의 의심도 없이 앞으로 전진한다. 리더의 방향결정에 어떠한 비판이나 토를 달지 않고 그대로 뒤 따른다.

종국에는 네 명 모두 하천으로 추락할 운명임을 알 리 없는 그들은 리더를 따르는 행진을 결코 멈추지 않는다. 눈이 가려진 맹인들의 리더에 대한 맹목적 믿음!

그림 맹인이 맹인을 인도하는 우화에서 뒤따르는 네 명의 맹인을 볼 때마다 다음 세 가지를 떠 올리게 된다.

한나 아렌트 보고서, 파울 요제프 괴벨스 그리고 맹자(孟子). 미국의 기자였던 '한나 아렌트'1961년 이스라엘 예루살렘에서 진행되었던 홀로코스트 범죄자 '아돌프 아이히만'의 법정공판을 취재하였다.

그녀는 재판의 진행과정을 5 차례에 걸쳐 보고서 형태로 뉴요커지에 기고한다. 그리고는 "평범했던 사람이 왜 그와 같이 끔찍한 악행을 거리낌 없이 저지를까?"의 원인은 바로 생각없음thoughtlessness'이라고 지목한다.

, '아돌프 아이히만'이 잔혹한 악행의 명령에 복종하고 또한 동조한 것은 자신의 행위로 야기되는 결과에 대한 비판적 사고의 결여, '생각 없음' 때문이라는 것이다.

수많은 학살을 자행한 나치의 아이히만은 개인적으로는 평범한 사람이었다고 한다. 그런 사람이 어떻게 엄청난 학살을 자행할 수 있는가에 대한 의문에서 출발해서 결론을 내린 것이 바로 악의 평범성이다.

, 자기가 습관처럼 행하는 일에 생각 없고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 평범한 사람은, 리더의 비이성적 말과 행동에도 의문을 제기하지 않고 그 권위에 동조되어 언제든지 악을 저지를 수 있다는 것이다.

독일 나치정권 2인자였던 괴벨스는 평범했던 독일 국민을 설득-교육-세뇌하여 아돌프 히틀러를 교주처럼 맹신하도록 만들고 사실과 이성을 보지 못하는 맹인으로 만들었다. 그러했던 그가 '인간'에 대하여 남긴 어록이다.

"거짓말은 처음에는 부정되고 그 다음에는 의심하지만 되풀이하면 결국에는 믿게 된다", "이성은 필요 없다 감정에 호소하라", "분노와 증오는 대중을 열광시키는 가장 강력한 힘이다", "승리한 자는 진실을 말했느냐 따위는 추궁당하지 않는다".

맹자는 인간으로서 지녀야 할 인성으로 불쌍히 여기는 마음(惻隱之心)’,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羞惡之心)’, ‘사양하는 마음(辭讓之心)’, ‘옳고 그름을 아는 마음(是非之心)’이라 하였다. 만약 그러한 마음이 없다면 동물animal’과 다름이 없다고 하였다.

인간이 어떻게 설득당하고 교육당하고 세뇌당하면, ‘불쌍히 여기는 마음’,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 ‘사양하는 마음’, ‘옳고 그름을 아는 마음이 완전히 말살되어 목적을 위해서는 사실과 이성을 깡그리 무시하는 동물처럼 행동하고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못할까? 어떻게 거짓말을 하면서 눈썹 하나 흔들리지 않을까?

괴벨스는 평범했던 독일 국민을 그림 맹인이 맹인을 인도하는 우화의 맹인처럼 리더(아돌프 히틀러)에게 절대적 믿음을 갖도록 만들었고, 어떠한 상황에서도 리더에 대한 맹신이 흔들리지 않도록 설득하고 교육하고 세뇌하였다.

그러한 과정에 "언론은 정부의 손안에 있는 피아노가 되어야 한다"면서 모든 언론, 문화, 예술을 통제하고는 위에서 소개한 어록대로 진행하여, 독일 국민의 눈을 그림 맹인이 맹인을 인도하는 우화처럼 진실과 이성에 눈을 닫아버린 장님으로 만들었다. 그리곤 그들을 무리지어 행진시켰고 또한 그들이 그러한 행렬에서 제외되는 것을 두려워하게 만들었다.

그림 맹인이 맹인을 인도하는 우화'맹신''생각 없음'의 인간 모습을 우화적으로 보여준다.

인간의 '맹신''생각 없음'은 극심한 경우에 과거 참혹한 역사 홀로코스트에서 알 수 있듯이, 자신이 저지른 인종 청소의 악행이 무슨 일인지도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또한 그러한 악행을 소중한 임무로 받아들이는 괴물인간monster’, 동물animal’로 변질시킨다.

더 나아가 '맹신''생각 없음'의 동물적 괴물인간은 설득-교육-세뇌로 언제든지 만들어 질 수 있다는 사실이 '괴벨스'의 관련기록 및 '한나 아렌트'의 보고서가 말해준다.

더욱 참담한 사실은 최첨단 과학 시대인 현재에도 또한 더욱 발전될 미래에도 그와 같은 동물적 괴물인간이 언제든지 재 출현될 수 있다는 점이다. 의학은 과학이고, 과학의 최고 가치는 (거짓이 아닌) 사실과 (감정이 아닌) 이성이다.

의학을 40년 이상 공부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마치 동물농장에 살고 있는 듯한 모습의 인간을 볼 때마다 심히 당황스럽고 매우 우려스럽고 또한 섬뜩섬뜩하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저작권자 © 메드월드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