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밭 위의 점심식사』 마네 (1863년)
『풀밭 위의 점심식사』 마네 (1863년)

야외 한적한 곳에서 남녀의 소풍 모임이다. 두 남자는 상하 말쑥한 복장과 차림용 지팡이까지 갖춘 정장차림으로 당시 신흥계층으로 대두되었던 부르주아 계층의 남자들이다.

그런데 두 여자의 차림이 남자들과 너무나도 대비된다. 두 여자는 모두 누드이다. 한 여자는 어깨를 거의 드러내고 안이 훤히 비치는 얇은 속옷만 입고 있다. 다른 여자는 옷차림이 더더욱 인상적이다. 옷을 모두 벗은 전라의 상태이다. 그것도 해가 중천에 떠 있는 벌~건 대낮에!!!

그림 『풀밭 위의 점심식사』 부분
그림 『풀밭 위의 점심식사』 부분

전라 여인의 모습에서 매우 당돌한 점은 관객을 향하여 당당히 정면을 향한 여인의 시선이다. 그녀의 표정은 자신의 현 모습에 일말의 부끄러움이나 수치심도 없고 당당하다.

이 그림이 당시 처음 발표되었을 때 사회적으로 엄청난 파장을 불러왔다. 그 시절에는 그림에 전라로 등장하는 여인은 모두 신화나 상상에 등장하는 아름답고 이상적인 신이거나 님프였다.

그런데 이 그림에 등장하는 전라의 여인은 당시 실재하였던 현실 인물이었다. 더 나아가 그 여인은 기존의 그림에 등장하는 이상적 이미지의 여인과는 전혀 다른 이미지를 지녔던 여인이었다.

그림 풀밭 위의 점심식사의 설정과 표현 방식은 당시로서는 기존의 틀을 완전히 벗어난 파격적이었다. 그림 풀밭 위의 점심식사는 당시 공식 작품 발표회인 살롱 심사에서 탈락하였다.

기존 회화방식을 고수하던 당시 권위자들은 기존의 틀에 반하는 이 작품을 결코 용납하지 않았다. 그들에게는 이 작품은 너무 낯설고 도전적이었다. 또한 기존의 방식을 순순히 따르지 않는 화가 마네에게 엄청난 혹평과 비난을 쏟아 놓았다. 그들은 전통을 뛰어넘는 화가 마네의 혁신적 방식과 창조성을 이해하지 못하였다.

결국 이 작품은 정식 살롱에서 발표하지 못하고 낙선전에 겨우 전시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림 작품에서 교훈 혹은 숭고한 주제를 찾으려던 당시의 대중들도 역시나 작품을 이해하지 못하였고 충격과 분노에 휩싸였다.

하지만 발표 당시 그와 같이 심한 평가를 받았던 이 그림은 후배 화가들에게 새로운 영감을 심어준 기념비적 작품으로 기록된다. 전통적 양식을 뛰어넘어 야외 회화의 새로운 해석을 보여주었던 이 그림은 인상파 출현에 중요한 모티브가 되었고 모더니즘의 효시가 되었다.

훗날 여러 예술가들은 그림 풀밭 위의 점심식사을 재해석하여 마네에 대한 존경심을 표현하였는데, 파블로 피카소도 재해석한 다수의 드로잉과 회화작품을 남겼다. 권위자들로부터 부정당한 마네로부터 새로운 미술 인상파가 태어났으며, 뒷날 그를 '인상주의의 아버지'라 불렀다.

그림 A. 아만이즘(amanism)
그림 A. 아만이즘(amanism)

미숙했던 개인이 정규 및 비정규 과정의 배움을 통하여 세상에서 살아갈 능력을 얻게 되고, 그 능력의 도움으로 인간의 오욕이 충족되고 특히 재력과 권력을 탄탄히 갖추게 되면 (자신도 모르게) 형성되는 야누스적인 나

재력과 권력이 충만해진 야누스적인 나는 자신에게 만족과 기쁨을 준다. 하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본인이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 "내가 옳다!", "내가 최고다!"라는 '아만이즘'을 형성한다.

그런데 문제는 '아만이즘'은 당사자의 귀를 막아 다른 사람과의 소통을 방해하고, 시야를 좁게 만들어 타인의 창의적 의견과 아이디어를 보지 못하게 가리고, 상대방에 대한 배려와 공감 능력을 떨어뜨린다(그림 A). 이러한 현상이 점점 심해지고 고착화되면서 기쁨을 주었던 그것이, 이제는 도리어 갈등과 곤경에 빠뜨린다.

어떤 사안을 평가하고 결정하는 권위와 권력을 가진 자가 아만이즘에 휩싸이면, 자신의 식견과 다른 새롭고 창의적 생각과 의견을 평가절하하거나 틀리다고 무시해버리거나 더욱 심한 경우에는 관련 분야에서 아주 생매장시켜 버린다.

현재까지도 많은 주목을 받는 파블로 피카소의 그림 아비뇽의 처녀들에는 기존 틀을 한참 벗어난 비정형적이고 그로테스크한 인물들이 등장한다. 기존 미술에서는 사람의 모습은 가능한 보이는 모습 그대로 사실적으로 묘사하였는데, 파블로 피카소는 겉에서 보이는 모습보다 인간 내부의 모습을 기하학적으로 표현하였다.

그리하여 비정상적으로 큰 눈, 정면과 옆 모습의 동존, 각진 얼굴 라인 등 도무지 기존 미술에서 보여주었던 정형 모습이 아니다. 그림 아비뇽의 처녀들의 발표 당시 기존 틀에 고착된 동료 전문가들에게서 인정받지 못하였고 심지어 신랄한 비판까지 받았다. 하지만 현재 이 그림은 입체파의 효시로 높게 평가된다.

그림 B. 코스모스 TV 시리즈(Comos: A Spacetime Odyssey)
그림 B. 코스모스 TV 시리즈(Comos: A Spacetime Odyssey)

과학 역사에도 그림 풀밭 위의 점심식사,아비뇽의 처녀들등과 같은 사건이 많았다. 기존 방식으로 해결되지 않았던 문제를 창조적 방식으로 연구하고 그 결과를 발표하였는데, 당시 학계를 주름잡고 있던 기존 권위자들에 의하여 거부되고 인정받지 못하였다.

그와 관련된 내용들이 지난 2014년에 TV 방송되었던 <코스모스 TV 시리즈(Comos: A Spacetime Odyssey)> 에 소개된다. 2014<코스모스 TV 시리즈> 1980년대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30여 년 만에 업그레이드 리메이크하여 총 13편으로 다시 만들었다.

현재까지 인류가 이룩한 모든 과학(물리학, 화학, 천문학, 의학 등)의 발전 과정과 결과가, 최첨단 영상 기술과 닐 타이슨의 화려한 해설로 훌륭하게 꾸며졌다. 시리즈의 마지막 <13화 창백한 푸른 섬>에 인류가 무지의 상태에서 은하계와 우주의 존재를 알게 되고, 태양계 넘어까지 우주선을 보낼 수 있게 만들어준 5개의 규칙이 소개된다.

첫 번째가 "권위를 의심하라"인데, "현재 <코스모스 TV 시리즈>를 진행하는 자신(닐 타이슨)을 포함해 누군가(기존 전문가)가 말했다는 이유로 진실이 될 수는 없다"라고 역설한다.

다시 말해서 당 시대의 대가이고 권위자의 의견이라 하더라도 의심하라고 강조한다. 이를 뒤집어서 말하면 당 시대 각 분야의 대가와 권위자는 기존 틀에 묶여 있어 시야가 좁아지고 귀가 닫힐 가능성이 상존한다는 의미이다.

사진 『닐스 보어(좌)와 아인슈타인(우)』 폴 에렌페스트 (1925년)
사진 『닐스 보어(좌)와 아인슈타인(우)』 폴 에렌페스트 (1925년)

그리곤 다른 무엇보다도 중요한 규칙을 추가도 소개한다: "자신이 틀렸을 수도 있음을 명심하라. 훌륭한 과학자(뉴턴, 아인슈타인 등)도 인간이기에 틀릴 때가 있다.

자신의 독창적 연구 결과의 발표로 크게 성공한 권위자와 대가라도 자신의 틀에 고착되면, 전혀 새로운 방식의 연구 결과에 대하여 이해하지 못하고 거절할 가능성이 내포되어 있음을 지적하였다.

노벨물리학상을 받았고 상대성 이론으로 물리학의 새로운 지평선을 열었던 '아인슈타인'은 닐스 보어의 양자역학에 대하여 의견을 달리하고 받아들이지 않았다. 현재 양자역학은 물리학의 또 다른 지평선을 열어준 학문으로 널리 인정받고 있다.

『메두사호의 뗏목』 테오도르 제리코 (1819년)
『메두사호의 뗏목』 테오도르 제리코 (1819년)

그림 메두사호의 뗏목은 두 개의 삼각형 구도로 사람들이 모여 있다. 돛대를 중심으로 왼쪽의 삼각형 구도에는 절망, 포기, 비탄, 죽음의 사람들이 배치되었다.

지평선 위 조그만 점 같은 범선을 보고 손에 쥔 옷을 애절하게 흔드는 흑인 소년 중심의 오른쪽 삼각형 구도에는 희망, 환희, 감동, 삶의 사람들이 배치되었다. 그리고 두 삼각형 구도 사이에는 절망에 빠진 사람들에게 마침내 구조선이 오는 감격의 소식을 전하는 사람이 있다.

그림 메두사호의 뗏목181672일 난파된 프랑스의 프리깃함 '메두사호'에서 일어난 실제 사건을 재현하였다.

18166월 프랑스는 영국으로부터 식민지를 돌려받기 위해 아프리카 세네갈로 원정함대(4)를 파견했고, 지휘함인 메두사 호에는 총독 가족과 함께 육군 사병, 수병, 선원, 식민지 개발 정찰대 등 400여 명이 타고 있었다.

안타깝게도 목적지에 도착 전 배가 난파되었는데, 구명보트가 충분하지 않아 총독 가족, 선장, 장교, 수병, 선원, 일부 승객 등 230여 명만이 여섯 개의 구명보트를 타고 대피하였다.

그림. 메두사호의 실제 뗏목
그림. 메두사호의 실제 뗏목

나머지 152명의 육군 장교와 사병, 선원, 승객 등은 좌초한 범선의 돛대를 잘라 급조된 뗏목(그림 A)에 올라탔다.

원래 뗏목은 구명보트와 밧줄로 매달아 육지까지 끌고 가려고 했는데, 보트에 타고 있던 어느 사람이 뗏목과 연결된 밧줄을 풀어버린다. 결국 뗏목에 있던 152명은 망망대해에 버려졌고, 그들에게 준비되었던 식량이라곤 몇 통의 물, 포도주, 비스킷뿐이었다.

그들은 극심한 기아와 탈수, 지독한 추위, 죽음의 공포에 시달렸으며, 파도에 쓸려 나가고 극한 상황에 따른 내부 반란과 폭동 그리고 광기가 표출되면서 결국 죽음이 속출한다. 난파된 지 13일 만에 원정함대의 아르귀스호에 구조되었는데, 이 때까지 생존한 사람은 겨우 15명에 불과하였다. 그 마저도 5명이 추가로 사망하여, 최종 생존자는 단 열 명이었다.

당시 프랑스 정부는 이 사건을 은폐하려 하였으나, 뗏목에서 살아남았던 두 명(광산기사와 군의관)의 생존자 의하여 신문 및 책으로 알려지면서 사건의 전모가 폭로된다. 그림에서 두 삼각형 구도 사이에서 구조의 감동 소식을 전하는 사람이 사건을 알렸던 군의관이다. 이 내용을 접한 화가 테오도르 제리코는 사건의 진상을 알리기 위해 그림 메두사호의 뗏목을 완성한다.

당시 프랑스는 워털루에서 패전한 나폴레옹의 몰락에 이어 맞게 된 왕정복고 시대이었으며, 루이18세 정부는 왕당파 일원들에게 일종의 정치적 보상을 쏟아 낸다.

그러한 과정 중 원정대의 프리깃함 '메두사호' 선장의 임명도 왕당파의 일원이었던 인물(쇼마레 자작)에게 주어진다. 그런데 문제는 그는 과거 시민혁명 후 현직에서 물러났던 낙하산 선장으로, 파도와 포탄이 난무하는 바다에서 자신과 부하들의 생존을 위하여 며칠씩 뜬눈으로 새고 고민해본 현장 경험이 지난 20년 동안 전혀 없었던 비전문가이었다.

원정함대의 총 지휘관은 휘하의 배(3)들과 보조를 맞추면서 항해해야 하는데 그리하지 않았고, 선박들의 무덤으로 악명 높은 아르갱 모래톱 근처에서도 항해 규범의 위치 측정 및 항진방향 조절 등을 게을리하여, 결국 '메두사호'는 좌초된다. 그리곤 안전장치도 없이 급조된 뗏목에 수많은 사람을 태워 종국에는 끔찍한 인명 손상을 초래했다.

 

그 당시 같은 배에는 지난 수 십 년간 나폴레옹 함대에 소속되어 해상 전투 경험이 풍부하였던 베테랑 장교들이 동승하고 있었다.

하지만 선장은 그들의 의견에 귀를 닫고 무시하였다. 선장은 자신의 방식으로 성공하였고 또한 그 방식으로 세네갈 원정함대 지휘함의 최고 선장이 되었다. 자신의 판단과 방식을 고집하였고, 결국 선장의 아만이즘으로 140여 명의 무고한 생명이 목숨을 잃었다.

『목욕하는 밧세바』 렘브란트 (1654년)
『목욕하는 밧세바』 렘브란트 (1654년)

어둠이 짙게 드리워진 밤 '밧세바'가 목욕 중 잠시 쉬고 있다. 그림 왼쪽 하편 어두운 배경 속 하녀는 밧세바의 발가락을 세심히 다듬고 있다. 하녀의 시선은 오직 발가락에만 향하고 입은 굳게 닫혀 있다. 무척 무거운 분위기이다.

하녀의 분위기가 밧세바의 얼굴표정에도 그대로 이어진다. 밧세바의 눈은 하녀를 쳐다보고 있지만, 멍하니 초점이 없다. 입술은 하녀의 입처럼 굳게 닫혀 일자형이다. 결코 미소나 웃음기를 머금은 얼굴이 아니며, 근심이 가득한 얼굴이다.

그러한 분위기는 몸 전체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밧세바의 어깨는 축 늘어지고 힘 빠진 상체를 왼팔로 받히고 있다. 오른쪽 허벅지 위 올려진 팔도 역시 힘이 없다.

밧세바의 오른손에 편지가 들려 있다. 편지는 펼쳐져 있고 접혔던 부분이 있어, 아마도 편지 내용을 이미 읽은 듯하다. 그런데 밧세바의 얼굴 표정과 자세 그리고 하녀의 표정이 그 편지에는 불안과 걱정의 내용이 쓰여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그림 『목욕하는 밧세바』 부분
그림 『목욕하는 밧세바』 부분

여성이 한밤중에 편지를 읽은 후 발가락을 다듬으며 정성껏 목욕하는 행위는, 누군가와의 만남을 위한 몸치장 과정이다. 만약 만남이 흥분과 즐거움이 기대된다면, 준비하는 과정에서부터 흥분과 즐거움이 시작된다.

그런데 이 그림에서는 그와 같은 흥분과 즐거움이 없다. 결코 정상적이고 즐거운 만남이 아니다.

그림 목욕 중인 밧세바이 담고 있는 내용은 성경에 나오는 이스라엘의 다윗왕와 유부녀 밧세바와의 스캔들이다. 다윗왕은 재임 중 강력한 이스라엘 제국 건설하는 등 치적이 많았다. 우연히 휘하장수 '우레아'의 아내 '밧세바'가 목욕하는 장면을 훔쳐보고는 욕정을 조절하지 못하고 밧세바를 궁으로 불러들여 불륜을 범한다.

그리고 충성스럽고 용맹한 장수 '우레아'는 최전방 전투지로 보내서 결국 전사하게 만든다. 다윗왕은 (하나님에 대한) 깊은 신앙심, (거인 골리앗을 조약돌로 넘어뜨린) 용사, (시편을 쓴) 시인, 음악가 및 정치가로 성경에서 가장 이상적인 인물이며 리더였다. 그런데 삶의 최고 정점에서 밧세바와의 스캔들로 인간으로서 그리고 리더로서 커다란 결점을 남겼다.

성공한 리더 및 고위 공직자에게서 발생하는 '도덕성 결핍 현상'을 다윗왕과 밧세바의 스캔들에 빗대어 밧세바 신드롬 (Bathsheba syndrome)’이라 한다.

다윗왕처럼 막강한 힘과 영향력을 가지게 된 리더는 자신이 모든 상황(재원, 인력, 정보)을 통제할 수 있다는 과도한 자신감에 도취되어 현실감을 잃고, 지도자이기 때문에 일반적 윤리 기준이 자신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는 오만과 도덕적 인지 부조화 상태에 빠지게 된다.

극심한 경우에는 자기중심적 타락과 유혹에 빠지게 되고, 리더의 힘과 영향력에 압도된 상대방도 똑같은 운명의 나락에 빠뜨린다. 절대 권력자의 아만이즘이 빗어내는 밧세바 신드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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