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명의 얼굴 표정』 오노에 도미에 (19세기)
『35명의 얼굴 표정』 오노에 도미에 (19세기)

지난 주 수개월 동안 연재되었던 내용을 종합하여 질병의 발생과정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가설] 인간이해를 고려한 질병발생모델(그림 A)’을 소개하였다.

질병발생모델의 시작은 과거 기억, 현재 상황, 미래 걱정인데, 이런 저런 이유로 여러 사람들과 얽혀 살면서 필연적으로 유발되는 사연이다. 사연의 주 구성요소는 일상생활 중 마주하게 되는 인간(사람)이다.

따라서 질병 발생을 이해하고 질병의 예방 및 치료를 위하여서는, (반복하여 강조하지만) 사람의 외부환경 및 내부 환경에 대한 이해가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그림 35명의 얼굴 표정에는 수 십 명의 사람이 실로 다양한 표정을 짓고 있다. 화 내는 사람, 놀란 사람, 슬픔에 잠긴 사람, 우는 사람, 비난하는 사람, 소리치는 사람, 깔보는 사람, 빈정대는 사람, 격려하는 사람, 질책하는 사람, 공감하는 사람, 멸시하는 사람, 눈치 보는 사람, 우는 사람, 감탄하는 사람, 숙고하는 사람, 혼내는 사람, 반박하는 사람, 겁에 질린 사람, 체념하는 사람, 윽박지르는 사람, 의심하는 사람 등등이다.

생로병사하여 땅속의 흙으로 되돌아가기 전까지, 인간 삶은 만남의 연속이다. 어린 시절을 지나 사회인으로 성장하고 집단의 일원이 되면서 수많은 사람을 만나는데, 매 만남마다 사람을 마주하게 된다.

그 사람은 그림 35명의 얼굴 표정처럼 다양한 표정을 지닌 사람이다. 얼굴표정이 그와 같이 다양한 이유는 인간의 심리상태가 그만큼 다양하다는 의미이다. 왜냐하면 얼굴 표정은 심리 상태가 얼굴 근육을 통하여 외부로 표현된 것이기 때문이다.

『불청객』 비토리오 레기아니니 (년도 미상)
『불청객』 비토리오 레기아니니 (년도 미상)

식탁 위 맛난 간식! 이를 알아본 수탉, 순식간에 식탁 위로 날아올라 화급하게 그러나 매우 맛있게 간식을 쪼아 대고 있다. 그 광경을 마주한 할머니는 화들짝 놀라 득달 같이 달려와 닭을 잡으려 손을 내 뻗친다.

할머니에게는 이와 같은 상황이 결단코 즐겁지 않다. 그런데 그러한 광경을 코 앞에서 딱 마주한 어린 아이는 온 몸을 비비 꼬며 즐거워한다. 마주한 상황은 똑 같은데 어른과 아이의 반응이 전혀 색다르다.

그림 A. 『불청객』 부분
그림 A. 『불청객』 부분

식탁 위 간식 훔쳐 먹는 닭을 마주한 어른 (그림 A, ), 과거의 기억과 배워왔던 기준으로 분별하고 판단한다.

아니 이 놈의 닭이, 우리 식구, 우리 아이가 먹을 간식인데 감히 훔쳐 먹다니!”

땅을 쪼던 더러운 부리로 간식을 더럽히다니!”

땅을 헤집고 다니던 다리로 깨끗한 식탁에 올라오다니!”

저 수탉, 저러다 식탁 위 그릇과 잔을 떨어뜨려 박살내겠네!”

하지만 아이(그림 A, )는 과거 기억이나 배웠던 기준이 없기에, 현재 어른과 닭이 펼치는 광경에 호기심이 활짝 발동한다. 그리곤 깔!!! 터져 나오는 웃음^^. 아이는 너무나도 재미 있고 즐거워 몸을 배배 꼰다:

우와, 닭이 땅에만 있는 것이 식탁에도 올라갈 수 있구나. 신기하다!”

닭이 먹이를 집요하게 쪼아 대는 모습이 나하고 다르네. 무척 신기하다!”

, 닭을 향해 다급하게 움직이는 할머니의 모습이 이제까지 와 매우 다르시다. 재미있다!”

할머니 손에 거의 잡힐 듯한데, 닭은 그 상황을 전혀 모르고 열심히 먹기만 하네. 우와, 재밌다

매 상황에 어른은 과거 기억과 지난 시절 배웠던 기준을 바탕으로 평가하여 좋다, 싫다라고 분별한다. 하지만 아이는 평가하거나 분별하지 않는다. 그저 매 상황을 있는 그대로 느낄 뿐이다. 아이는 마주하는 모든 상황에 오직 호기심만 일으킨다. 어른과 아이는 서로 다르다.

『청년과 노인』 조지 클로젠 경 (1908년)
『청년과 노인』 조지 클로젠 경 (1908년)

아득히 드넓은 평야를 배경으로 두 사람이 쟁기질 중이다. 한 사람은 허연 머리, 흰 수염, 다소 구부정한 허리와 앙상한 체구의 노인이고, 다른 한 사람은 떡 벌어진 어깨와 꼿꼿한 허리를 지닌 건장한 체구의 청년이다. 두 사람의 나이와 체구가 대조적인데, 그 상황이 더욱 대조적으로 느껴지는 것은 두 사람의 눈길과 자세이다.

그림 B. 『청년과 노인』 부분
그림 B. 『청년과 노인』 부분

노인 (그림 B, )의 눈이 향한 곳은 곡괭이로 내려 찍고 있는 땅이다. 두발 굳건히 세우고 서있는 그 자리이다. 온 힘을 쏟아 붓는 노인의 자세에서 가족을 부양해야 하는 가장의 애절한 책임감이 묻어난다.

이 일을 오늘 중 반드시 마쳐야 하기에, 양손 근육 팽팽히 조여 곡괭이를 단단히 쥐어 잡고는 힘차게 내리 찍는다. 현재 곡괭이질 이외의 다른 일에 호기심을 가질 체력도 없는 것은 물론 마음의 여유는 더더욱 없다.

그와 반대로 청년 (그림 B, )의 눈은 본인이 서있는 곳이 아니라, 드넓은 평야의 저 먼 곳을 향한다. 곡괭이질 중인 다소 침침한 이곳보다, 더 밝은 저 먼 곳에 호기심이 가득하다. 그는 현재의 곡괭이질에 그다지 관심이 없다.

곡괭이를 단단히 쥐어 잡지도 않았고, 양손이 아니라 한 손만 곡괭이에 올려놓았다. 그는 곡괭이에 기대여, 현재보다 미지의 다른 세계를 동경한다. 재킷이 왼쪽 어깨에 걸쳐 있다. 열심히 땅을 파는 노인은 상의를 벗지 않아, 상의를 벗을 만큼 더운 날은 아니다.

그럼에도 하는 둥 마는 둥 곡괭이질의 청년이 재킷을 벗은 것은 주체 못할 답답함이 있음이라! 포인트처럼 휘감은 빨강 목도리에서 현재의 이런 상황에 주저앉아 만족할 수 없다는 열정마저 느껴진다.

나이가 들면 노안, 퇴행성 질환, 근육감소 등 생체의 모든 기능이 쇠퇴되고 체력도 저하되어, 가장으로서 책임 범위 이외의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나 새로운 꿈을 갖기 어렵다.

하지만 전도 창창한 청년은 현실에 안주하지 못하고 새로운 상황과 넓은 세상에 동경이 크다. 현재보다 미래, 현재보다 더 넓은 세상, 현재보다 미지의 세계에 대한 관심이 높고 현재와 다른 세상을 꿈꾼다. 노인과 청년은 서로 다르다.

『돌아온 탕아』 렘브란트 (1668~1669년)
『돌아온 탕아』 렘브란트 (1668~1669년)

집안의 명예와 재산에 크나큰 손실을 입히고 집을 떠난 후 오랜 동안 살았는지, 죽었는지 소식도 없던 아들이 마침내 집에 돌아왔다. 탕자 아들은 며칠 동안 한 끼도 못 먹었는지 서 있지도 못하고 아버지 품에 쓰러지듯 안겨 있다.

걸친 옷은 낡고 해져 너덜너덜하고 때가 더덕더덕하다. 우측 신발의 뒤축은 온데간데없고, 신발 벗겨진 왼쪽 발바닥에 굳은 살이 두툼하고 역시 때가 덕지덕지하다. 행색이 너무나도 궁색하고 자신을 돌 볼 몸과 마음의 여유가 전혀 없는 모양새이다.

그림 『돌아온 탕아』 부분
그림 『돌아온 탕아』 부분

오랫동안 소식 없는 아들에 대한 근심으로 얼굴은 삐쩍 마르고 심신이 퀭해진 아버지! 마침내 살아서 돌아온 아들을 품에 꼬옥 껴안고는 아들의 등을 살갑게 다독거린다.

지난 과거 아들이 저질렀던 엄청난 잘못은 모두 잊은 지 이미 오래고, 오직 아들의 살아있음에 안도의 한숨을 그리고 집으로 돌아왔음에 크게 감사하며 두 눈을 지그시 감는다.

그림 C. 『돌아온 탕아』 부분
그림 C. 『돌아온 탕아』 부분

하지만 탕아의 이러한 모습을 바라보는 형제의 모습은 아버지와 지극히 대조적이다.

한 형제 (그림 C, )는 오른쪽 다리를 왼다리에 얹고는, 오른손은 상의 덧옷 깃을 왼손으로는 다리를 단단히 잡고는 자신을 짓누르듯 앉아 있다. 결코 버선발로 뛰어나가 두 손을 활짝 벌려 탕아의 형제를 반갑게 맞이하고 싶은 몸짓이 전혀 아니다.

얼굴 또한 마뜩하지 않은 표정이고 입도 한숨 쉬듯 약간 벌려져, “저 애가 왜 집으로 돌아왔지? 저 녀석의 버릇은 그 누구도 못 고치는데 또 어떤 사고를 치려나?”하는 의구심이 가득하다.

또 다른 형제 (그림 C, )는 두 발 단단히 버티고 서 있는데, 걸치고 있는 망토 색이 아버지와 같아 아마도 아버님의 뜻을 가장 잘 따르는 아들인 듯싶다.

하지만 단정히 포갠 그의 두 손은 장대만을 안고 있어, 아버지의 뜻에 따라 두 팔 크게 벌려 탕아의 형제를 반갑게 맞이할 뜻이 전혀 없다.

그의 건장한 육체 중 유난히 밝게 강조된 얼굴에는 웃음기가 전혀 없고 입술마저 한 일자로 굳게 닫혔다. 아버지 품에 안긴 탕자를 째려보는 눈에는 노기가 충천하여, 여차하면 안고 있는 장대를 냅다 들어 먼지가 나도록 팰 기세이다. 결코 돌아온 탕아를 불쌍히 여기거나 흔쾌히 감싸줄 뜻이 전혀 없다.

부모인 아버지는 탕아의 지난 잘못에 대한 이해와 용서 그리고 재회의 기쁨이 가득하다. 하지만 대조적으로 형제들은 탕아에 대한 지난 기억을 결코 잊지 않았고 그러한 과거 행실에 대하여 평가하고 책임을 묻고 응징하려 한다. 부모와 형제는 서로 다르다.

『흥미로운 이야기』 제임스 티소 (1872년)
『흥미로운 이야기』 제임스 티소 (1872년)

장소는 항구에 위치한 남자의 집무실 혹은 손님 접견실이고, 창 문 밖에는 여러 대의 군함이 정박 중이다. 해군 제복을 입은 남자가 책상 위 지도의 특정 지점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과거 그 지점에서 일어났던 치열한 전투에 대하여 열심히 설명한다. 두 여인에게 자신의 무용담을 신나게 들려주던 남자는, 자신의 애기에 도취된 듯 몽환적으로 눈을 감는다.

그림 D. 『흥미로운 이야기』 부분
그림 D. 『흥미로운 이야기』 부분

그런데 남자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두 여자의 표정과 행동이 남자와 매우 상반된다. 남자의 오른편에 있는 검은색 모자와 드레스의 여자 (그림 D, )는 남자의 이야기가 지루한 듯 눈은 거의 감겨 있다.

또한 남자의 지루한 애기에 집중력이 떨어지고 졸린 듯 입이 힘없이 열렸다. 나름 성의껏 설명하는 남자에 약간 미안한 듯 오른손으로 머리를 고정하곤 흩트려지려는 자세를 간신히 유지한다. 하지만 눈꺼풀에 거의 가려진 눈의 초점은 남자의 손끝이 향한 부위와 전혀 다른 곳을 향한다. 그리곤 한마디 내 뱉는다: , 지금 뭐하니!”

책상을 중심으로 남자의 건너편 흰색 모자와 드레스의 여자 (그림 D, )는 아예 눈과 머리가 전혀 다른 곳을 향한다. 입에 침을 튀겨가며 설명하는 남자의 이야기에 일말의 관심이나 흥미가 없다.

, 지겨워. 이 지겨운 이야기를 계속 들어야 하나?”하는 표정이 역력하다. 그녀는 이런 종류의 애기와 현재의 상황이 그림 제목 흥미로운 이야기와 달리 영 재미가 없다.

그림 E. 금성에서 온 여자, 화성에서 온 남자.
그림 E. 금성에서 온 여자, 화성에서 온 남자.

남자와 여자는 마치 각기 다른 별에서 온 우주인과 같이 서로 너무나도 다르다 (그림 E). 남녀 사이의 그와 같은 차이점은 아주 오랜 옛날 야생 동물이 넘쳐나고 척박한 주거환경에서 살아남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되었다.

당시 남자의 역할은 식량을 안정적으로 확보하는 사냥꾼이었으며 또한 외부 적으로부터 자신 및 가족의 생명을 지키는 전사戰士였다. 따라서 남자의 모든 기능은 뛰어난 사냥꾼과 전사가 되기 위한 것에 초점에 맞춰졌다.

남자에게는 사냥과 전투에 관련된 정보와 장비가 중요하며, 정보도 사실적이고 명확한 내용만 선호하고 시각 정보에 민감하다. 왜냐하면 두리뭉실한 정보로는 자신과 가족의 생명을 보장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마주한 문제는 자신과 가족의 생존과 직결되어 있으므로, 문제의 해결 방안을 반드시 찾아내야 한다. 그러한 문제의 해결에는 주위의 어떠한 간섭도 받지 않는 자신만의 공간에 틀어박혀 오직 그 문제에만 온 정신을 모아 숙고하며, 주위의 조언이나 도움 없이 혼자 해결하려고 한다.

여자의 주된 역할은 자신의 영역을 보호하는 집지킴이이였다. 가족이 안전하고 평안하게 지낼 수 있는 보금자리를 조성하고 또한 자식의 안위와 자손의 보존을 담당하였다. 그와 같은 역할에 필요한 능력은 보금자리와 그 주변에 대한 넓은 시야와 인간관계를 끈끈하게 유지하는 것이다.

가족구성원과의 원활한 소통을 중요시하며, 그러한 과정에 그들에 대한 이해, 관심 그리고 공감이 긴요한 능력이며 청각, 후각, 촉각 정보에 민감하다. 보금자리와 가족의 안전을 위협하는 문제는, 육체적으로 약하기에 혼자 해결하기 보다는 여러 사람으로부터 도움과 조언을 적극적으로 요구한다.

『달을 바라보는 두 남녀』 카스파 다비드 프리드리히 (1830-1835년)
『달을 바라보는 두 남녀』 카스파 다비드 프리드리히 (1830-1835년)

남녀 차이 중 두드러진 하나는 그들은 동일한 언어를 사용하지만 해석은 각기 다르다. 단어 순서가 같고 토씨까지도 100% 동일하게 구성된 문장이더라도, 그 문장을 이해하고 해석하는 방식이 전혀 다르다.

남자와 여자가 데이트 중 여자가 오늘따라 달이 무척 밝다라고 말한다. 남자는 오늘’, ‘그리고 밝다라는 사실이 중요하고, 여자는 무척 밝다라는 느낌을 중요시한다. 여자는 나는 오늘 기분이 무척 좋다라는 표현이었는데, 남자는 음력으로 보름날이 가까워졌구나또는 오늘은 구름이 없구나라고 해석한다. 남자와 여자는 서로 다르다.

인간은 똑 같은 틀에서 찍어낸, 똑 같은 형태와 생각을 지닌 기계가 절대 아니다. 성별이 다르고, 자라온 지역과 배경이 다르고, 기호식품이 다르고, 교육받은 내용이 다르고, 즐겨 사용하는 문장이 다르고, 자주 입는 옷이 다르고, 추구하는 목표가 다르다.

오욕이 서로 다르고, 오욕이 충족되거나 충족되지 않을 때 반응이 서로 다르고, 마주한 상황에 대한 해석과 감정 표현이 서로 다르다. 자신의 생각만이 전부라는 사람도 있고, 자신의 생각이 전부가 아닐 수도 있다는 사람도 있다.

자신을 객관적으로 보는 사람도 있지만, 자신을 객관적으로 보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심지어 같은 솥 밥을 먹고 지낸 가족이나 형제마저도 그리고 한 뱃속에서 태어난 일란성 쌍둥이조차도 서로 다르다. 사람은 서로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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