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발, 들어가지 마세요』 블라디미르 마코브스키 (1892년)
『제발, 들어가지 마세요』 블라디미르 마코브스키 (1892년)

그림의 제목과 상황이 술집 앞 한 가족의 광경이다. 벌건 대낮에 아이를 사이에 두고 엄마는 술집 입구를 단단히 막아섰고 맞은편의 아빠는 그러한 엄마를 잡아먹을 듯 째려보고 있다.

아빠의 모습을 보면 본인의 행색을 돌보지 않는 것은 물론 가장으로서 그리고 남편으로서의 책임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걸친 옷은 사방이 닳아 남루하고 때가 덕지덕지 끼어 퀴퀴한 땀냄새가 풀풀 날 것 같다. 오랫동안 씻지 않은 지저분한 얼굴에 꼬질꼬질 덥수룩한 턱수염은 목까지 둘러 덮었다.

자신의 분신인 아이에게는 털끝만큼의 눈길도 머물지 않고, 양팔 크게 벌려 온 몸으로 애원하는 부인에게도 애틋한 공감보다는 심한 욕설과 함께 뒤춤에 감춰 둔 주먹으로 한바탕 응징할 기세이다.

『제발, 들어가지 마세요』 (부분)
『제발, 들어가지 마세요』 (부분)

남자의 그러한 폭력적 행동이 예상되는 것은 부인과 아이의 몸짓과 눈빛이다. 술집을 막아선 부인의 입은 정신줄 놓은 듯 벌려져 있고 눈은 정면이 아닌 남편의 뒤춤에 숨겨진 왼주먹을 향한다.

아마 이전에도 이런 상황에 똑같이 행동하였었는데, 남편은 통제되지 않은 행동을 부인에게 가했던 것 같다. 그와 같은 정황을 더욱 의심케 하는 것은 엄마 품에 안겨서 아빠를 쳐다보는 아이의 얼굴표정, 눈 그리고 손이다.

아이의 얼굴은 엄마와 아빠 사이에서 벌어지는 상황에 굳게 긴장되어 있고 양 볼은 상기되었다. 아빠를 쳐다보는 아이의 눈과 엄마의 치마를 한껏 움켜잡은 쬐그만 손에 공포(두려움)가 짙게 배어 있다.

아마도 아이는 앞으로 벌어질 상황이 어떤 식으로 진행될 지 이미 알고 있는 것 같다; 점점 벌겋게 뒤집힐 아빠의 눈, 화가 잔뜩 섞인 아빠의 금속성 육두문자, 갑자기 날아들 아빠의 손찌검 그리고 엄마의 날카로운 비명!

『절규』 뭉크 (1893년)
『절규』 뭉크 (1893년)

그림 절규에 세 사람이 등장한다. 앞선 두 사람은 석양을 향하여 여유롭게 걷고 있고, 화면 중앙의 사람은 두 사람과 반대로 온 몸을 되돌려 석양을 등지고 정면을 향해 서있다.

저 멀리 석양이 붉은 핏빛으로 겹겹이 쌓여 있고 바닷가는 마치 죽음의 검은 그림자에 뒤 덥힌 듯 온통 시커멓다. 바다 쪽으로 걷는 두 사람의 형상 마저도 흡사 검은 연기처럼 흐물흐물 초점이 미약하다. 석양바다의 풍경이 스산하고 우중충하다.

『절규』 (부분)
『절규』 (부분)

화면 중앙의 사람은 눈 흰자위가 훤히 다 보이고, 콧구멍은 널찍이 들려 있고, 입은 아래턱이 빠질 정도로 쩍 벌렸고 양손은 귀를 단단히 틀어 막았다.

갑자기 들려온 어떤 소리에 끔찍이 놀라 극도의 공포에 휩싸인 표정이다. 몸은 전신의 뼈가 다 빠져나간 듯 출렁거리며, 몸 뒤편의 널판지 길이 보이는 투명체이다. 마치 극심한 공포에 놀라 사람 몸을 갓 빠져나온 유령 같다.

과연 무엇이 화가 뭉크에게 그림 절규같은 섬뜩한 공포에 빠지게 하였을까? 뭉크의 삶으로 추정해 볼 때 그것은 질병에 따른 심적 고통과 죽음이다. 뭉크는 유년 시절부터 가족의 죽음과 그로 인한 깊은 정신적 고통과 공포를 겪었다. 다섯 살 때 어머니가 결핵으로 사망하였고, 한창 사춘기인 열 네 살 때에는 한 살 위 누나 소피도 결핵으로 사망하였으며, 유일하게 결혼하였던 남동생 안드레아마저도 결혼 수 개월 뒤 사망하였다. 그와 같은 가족력 때문인지 뭉크는 일생 동안 좌절과 공포를 안겨주었던 질병에 따른 정신적 고통과 죽음에 연관된 그림을 여럿 남겼다. 그림 절규에는 죽음의 공포가 절절하게 표현되었다.

그림 A. 영화 '인사이드아웃'
그림 A. 영화 '인사이드아웃'

인간이 느끼는 천태만상의 감정을 간결하게 정리하여, ‘유학에서는 희노애락애오욕(喜怒哀樂愛惡欲)’, 예기에서는 희노애구애오욕(喜怒哀懼愛惡欲)’, ‘불교에서는 희노우구애증욕(喜怒憂懼愛憎欲)’칠정七情으로 표현하였다.

수 년 전 소개되었던 영화 <인사이드아웃>에서는 감정을 의인화하여 기쁨이, 슬픔이, 버럭(분노), 소심(두려움), 까칠이의 5 가지로 분류하였다 (그림 A). 물론 일곱 가지 혹은 다섯 가지의 감정으로 인간의 섬세한 감정들을 모두다 설명할 수 없다.

하지만 다음의 두 가지는 너무나도 명백하다. 하나는 아침에 눈을 뜬 후 저녁에 잠자리에 들 때까지 한 순간도 쉬지 않고, 수많은 감정들이 무수히 발생하였다가 사라진다.

다른 하나는 감정의 발생은 인생관, 살아온 방식, (동일한 상황에 대한) 해석력이 서로 다른 사람들과 섞여 살다 보면 결코 피할 수 없다: 남녀노소, 교육정도, 농부-어부-광부-블루-화이트칼라, 지위고하, 아침저녁, 봄여름가을겨울,

서울-대전-대구-광주-부산-제주시 등 어떤 상황이든 어디에 살든 관계없이 반드시 발생한다!!!

그림 B. 투쟁-도피 반응
그림 B. 투쟁-도피 반응

앞에서 기술한 일곱 가지 혹은 다섯 가지 감정 중 본 연재 <건강력을 기르자>에서 특별히 관심을 집중해야 될 감정은 분노()’공포(두려움)’이다.

지난 주 연재에서 소개하였듯이 진화 중 개발되었던 최고 생존 능력''프로그램화'하여 이미 모든 사람의 몸에 태어날 때부터 내장되어 있다. 그러한 프로그램 중 하나가 투쟁-도피 반응 fight-or-flight reaction’이다 (그림 B).

오래 전 수렵-채취 생활의 사바나 시절, 초원을 유유히 걷다가 갑자기 맹수 혹은 적을 마주할 경우 두 가지 감정과 그 감정에 이어지는 육체행동이 나타난다.

하나는 자신 그리고 가족의 생명을 해치려는 맹수 혹은 적에 대한 분노()’의 감정이다. 그 감정은 곧바로 사지근육을 격렬하게 움직이는 투쟁이라는 육체 행동으로 이어진다.

다른 하나는 공포(두려움)’이다. 맹수의 사냥능력 혹은 적의 전투력이 자신보다 뛰어나다고 판단되는 상황에서 본능적으로 유발되는 감정이며, 번개처럼 뒤따르는 행동은 맹수로부터 혹은 적으로부터 최대한 멀리 도망치는 도피이다.

그림 C. 분노(좌) 및 공포(우)의 감정 [그림출처; 인사이드아웃]
그림 C. 분노(좌) 및 공포(우)의 감정 [그림출처; 인사이드아웃]

분노--투쟁공포--도피는 예측 불가능한 혹은 예측 가능하지만 통제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반사적으로 유발되는 감정과 행동이다 (그림 C).

사바나 시절에 인간은 그와 같은 감정(분노, 공포)과 그 감정에 충실한 행위(투쟁, 도피) 덕분에 살아남았다. 그런데 문제는 삶의 환경이 사바나 시절에서 현대 사회로 바뀌면서, 생명을 보호하였던 투쟁-도피 반응이 이제는 오히려 인체를 손상시키는 원인으로 돌변하게 되었다.

현대에는 비행기가 기체 결함으로 아프리카의 밀림 한 복판에 불시 착륙하든지 혹은 언론에서 가끔 보고되듯이 맹수가 동물원을 탈출한 경우 이외에는 맹수를 만날 상황은 결코 없다.

하지만 투쟁-도피 반응은 사바나 시절이든 현대이든 시기에 관계없이, ‘분노()’, ‘두려움(공포)’의 감정에 반사적으로 작동한다. , 일상 생활 중 어느 때든 분노() 및 공포(두려움)가 발생할 때마다 본인이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투쟁-도피 반응이 득달같이 작동된다.

그림 D. 적응 반응 [그림출처: 마음경영4단계]
그림 D. 적응 반응 [그림출처: 마음경영4단계]

분노() 및 공포(두려움)에 따른 투쟁-도피 반응은 인체 내부적으로는 두 가지 방향의 적응 반응이 진행된다 (그림 D).

하나는 자율신경계의 교감신경이 활성화되어 에피네프린’, ‘노르에피네프린이라는 호르몬이 분비된다. 다른 하나는 내분비계를 자극하여 몇 단계의 과정을 거쳐 코티솔이라는 호르몬을 분비한다.

에피네프린’, ‘노르에피네프린’, ‘코티솔을 통합하여 스트레스호르몬이라 불리는데, 생명이 경각에 달린 응급상황 때 투쟁-도피 반응에 절대 필요한 사지근육, 심장, 폐를 최대한 가동시키는 호르몬이다.

그림 E. 면역세포에 분비되는 화학물질 [그림출처; Wikipedia]
그림 E. 면역세포에 분비되는 화학물질 [그림출처; Wikipedia]

스트레스호르몬은 외부적으로는 사지근육을 이용한 투쟁-도피라는 육체 행동을 유발하고, 내부적으로는 세포에 작용하여 투쟁-도피 반응에 요구되는 분자 수준의 생리반응을 조절한다.

몸 구석구석에 퍼져 있는 면역세포(백혈구, 림프구 등)를 자극하여 엄청나게 풍부한 화학물질(사이토카인, 케모카인 등)을 만든 후 전신에 뿌린다 (그림 E). 그 화학물질은 투쟁-도피 반응중 발생한 상처로 침입한 병균을 제거하고, 외상으로 손상된 조직을 말끔히 제거 후 새로운 조직을 재건한다.

적응반응 후 인체 내부에서 생성되는 스트레스호르몬과 화학물질은 진화 과정의 척박한 자연환경에서 살아남게 하였고 또한 현재에도 생명 보존을 위하여 다른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그런데 문제는 그러한 반응이 아이러니하게도 양날의 검으로 작동하여 인체를 손상시킨다. 스트레스호르몬 자극 후 면역세포에서 뿜어 대는 화학물질(그림 E)은 병균을 파괴시킬 능력을 지닌 강력한 물질이다.

그러한 물질의 생성이 몇 시간 혹은 몇 일 정도의 단기간일 때는 인체에서 병균을 제거하고 건강 조직을 재건하는 데에 이용된다. 하지만 몇 주, 몇 개월 혹은 몇 년간 장기간 지속되는 경우에는 상황이 완전 반전된다.

본 연재의 일관된 주제는 인체는 물질이며 반복자극에 손상된다인데, 인체를 보호하기 위하여 면역세포에서 만들어지는 화학물질의 생성이 적정한 시기에 종결되지 않으면 인체를 반복 자극하게 된다. 그리고 장기간 지속되면 물질로 이루어진 인체를 서서히 손상시켜 종국에는 질병이 발생한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저작권자 © 메드월드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