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꾼들』 고흐 (1890년)
『술꾼들』 고흐 (1890년)

그림 술꾼들에서 탁자 위 술병을 중심으로 모인 네 사람이 함께 술을 마신다. 네 사람의 연령은 어린아이부터 노인까지 다양한데, 술을 입안으로 털어 넣는 자세는 마치 한사람인 듯 똑같다.

다만 책상 높이 정도 작은 키의 어린아이는 술잔을 한손으로 들기가 버거운지 두손으로 한껏 힘을 줘 집어 들고 행여 공인(?)된 음주 방법에서 벗어날까 걱정스러운지 주위 어른들을 세심히 관찰하면서 천천히 들이켠다.

전신을 젖색으로 표현하여 젖 비린내가 채 가시지 않았음을 암시하는 어린아이에서부터 후들거리는 다리를 지팡이로 겨우 의지한 노인까지 네 세대를 한 그림에 담아, 속담 '세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에서 시사하는 습관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듯하다.

그림 A. (1) 『압생트, 유리병과 함께하는 고요한 삶』, (2) 『담배 피는 해골』, (3) 『통풍의 도입』 부분, (4)『빌렌드로프의 비너스』.
그림 A. (1) 『압생트, 유리병과 함께하는 고요한 삶』, (2) 『담배 피는 해골』, (3) 『통풍의 도입』 부분, (4)『빌렌드로프의 비너스』.

반복하여 강조하지만 인체는 반복자극에 반드시 손상되는 물질이며, 질병의 원인은 인체에 반복적으로 가해지는 물리-화학적 자극이다.

지난 연재에서 주머니 사정이 궁색하였던 고흐에게 황시증을 유발하였던 '(압생트)', 4,500 종류의 미세물질 중 대부분이 인체 독성물질을 포함한 담배, ‘과식(혹은 탐식)’에 뒤따르는 통풍과 비만을 유발하는 음식은 모두 다 물질이다 (그림 A).

지극히 명확한 사실은 다양한 질병을 유발하는 술, 담배, (과량의) 음식은 결코 스스로 움직일 수 없는 그리고 타력에 의하여 인체 외부에서 내부로 이동되는 물질이다. 그렇다면 과연 그 물질들이 어떻게그리고 인체로 유입되었을까?

그림 B. 급성췌장염 환자의 복부 CT
그림 B. 급성췌장염 환자의 복부 CT

45세 남자 환자가 배를 움켜잡을 정도로 심한 상복부 통증으로 응급실에 내원하였다.

혈액검사에서 췌장 손상을 나타내는 아밀라제, 리파제가 정상치보다 높게 상승하였고, 복부 CT 검사(그림 B)에 췌장이 붓고 췌장주변에 염증성 삼출액이 가득하였다.

상복부 통증과 혈액검사 및 복부 CT 검사의 소견을 종합하면 급성 췌장염이다. 급성 췌장염의 흔한 원인은 담석과 술(알코올)이다. 환자는 증상 발현 전까지 지난 1년간 소주를 매일 2-3 병 마셨고, 복부 CT 및 추가 검사에서 담석은 발견되지 않았다. 결국 본 환자에서 급성 췌장염의 (가시적) 원인은 외부에서 인체내로 유입된 화학 물질인 술(소주)이다.

그림 C. 마트 진열대의 다양한 소주들.
그림 C. 마트 진열대의 다양한 소주들.

그렇다면 정말 술(소주)가 이 질환의 원흉이므로 비난의 화살을 받아야 할까? 하지만 소주의 입장에서는 무척 속상하다. 소주는 물질이기에 스스로 환자의 입으로 이동할 수 없다. 그것은 절대로 불가능하다!

소주는 그림 C처럼 어느 마트의 진열대에 여러 종류의 술들과 어울려 가지런히 서 있었는데, (소주 입장에서는) 난데없이 달려든 환자의 손에 낚인 후 술잔을 거쳐 입안으로 이동 당하였을 뿐이다.

그렇다면 환자는 스스로 움직이는 못하는 소주를 집어 입안에 털어 넣어 결국에는 극심한 통증의 급성 췌장염으로 고통받을까? 환자가 소주를 집어 들게 된 이유는 다음과 같았다.

환자는 1년전 지난 20 년간 다니던 직장에서 실직하였고, 잇따라 집안살림이 어려워지면서 부인과 불화가 잦았다. 그 후 자신을 내친 회사와 지난 날 가장으로써 나름 열심히 살아온 자신을 격려해주지 않는 부인에 대한 미움(분노)와 우울의 감정이 끓어올랐다.

그러한 감정을 주체하기 어려웠던 환자에게 불면증이 찾아왔고, 매일 밤을 괴롭히는 불면증의 해결책으로 소주를 애용하였다. 환자에게는 소주는 어디든 부담 없는 가격으로 손쉽게 구할 수 있었고 또한 효과도 확실하여 잠도 푹 잘 수 있었다.

결국 가격 대비 가성비 높은 효과를 경험하고는 매일 밤마다 소주를 마시게 되었다. 그런 생활이 수 주간 반복되면서 매일 밤 소주 마시기가 마치 불면증 약을 복용하듯 어느덧 습관이 되어버렸다.

그림 D. 네 단계 습관고리
그림 D. 네 단계 습관고리

인간이 생활 중 마주한 동일한 혹은 비슷한 상황에 특정 행위를 계속 반복하는 이유는, 본인도 모르게 단단히 고착된 습관고리(그림 D) 때문이다.

습관고리는 다음 네 단계로 구성된다. 첫 번째 단계는 습관고리의 시발점인 '신호'인데, 대부분 여러 사람들과 어울려 살면서 야기되는 '사연'이다. 현재 생활 중 특정 상대방이나 특정 상황을 직접 마주하거나 혹은 깊은 상처의 과거 기억을 상기하거나 혹은 걱정되는 미래에 대한 상상이다.

두 번째 단계는 그 '신호'에 의하여 유발되는 '감정'이다. 현재 시점에서 특정 사람-상황을 접할 때마다 또는 과거 기억의 상처가 떠오를 때마다 혹은 불투명 미래에 대하여 상상 걱정할 때마다, 곧바로 분노(미움), 우울(절망), 공포(두려움), 기쁨(환희) 등의 감정이 마치 바늘에 딸린 실처럼 필연적으로 발생한다.

다음에는 그러한 감정으로 유발되는 감당하기 힘든 긴장감을 해소하기 위하여 일종의 대응책인 '행동'이 뒤따른다. 마지막 단계는 그와 같은 '행동'을 통하여 만족과 쾌감이라는 꿀맛 같은 '보상'을 경험한다.

앞에서 소개한 45세 환자는 술을 마시면 불면증의 해소는 물론 분노, 우울의 감정으로 촉발되었던 팽팽한 긴장이 풀어지면서 만족과 쾌감을 느꼈다. 즉, 음주의 '행동'을 통하여 심리적 보상을 받았다.

그림 E. 쳇바퀴
그림 E. 쳇바퀴

그런데 문제는 '보상'으로 얻어지는 만족과 쾌감이 아쉽게도 오래가지 못하고 일시적이다.

하지만 만족과 쾌감의 경험은 매우 자극적이어서 뇌리에 깊게 각인되고, 이후에도 동일한 혹은 비슷한 정황을 마주할 때마다 지난 경험의 만족과 쾌감을 기대하면서 또다시 네 단계의 연계 과정을 그대로 답습한다.

여러 사람들과 엉켜 살다 보면 (틀림없이 발생하는) 똑같은 혹은 비슷한 사연에 매번 똑같은 방식으로 대응하고는, 나름의 방식으로 최선을 다하였다고 자족한다. 그와 같은 경험이 오랜 기간 반복되면서 종국에는 자신도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점점 고정화되어 마치 자동프로그램처럼 작동하는 '습관고리'가 형성된다.

결국 당사자는 매 사연마다 마치 쳇바퀴 같은 습관고리를 열심히 돌리는 다람쥐의 신세(그림 E)가 되고, 쳇바퀴를 돌릴 때마다 반복하여 인체가 손상되면서 종국에는 질병으로 진행된다.

그림 F. 급성췌장염환자의 습관고리(혹은 질병고리).
그림 F. 급성췌장염환자의 습관고리(혹은 질병고리).

앞에서 소개한 45세 환자에게 급성췌장염을 초래한 습관고리는 다음과 같다 (그림 F). 습관고리의 시발점인 사연은 1년전 실직과 경제적 어려움에 의한 부인과의 불화이다.

그 사연으로 자신을 내친 회사와 부인에 대한 미움(분노)와 우울의 감정이 생겼고, 이어서 불면증이 찾아와 불면증을 해결하기 위한 손쉬운 방편으로 술을 선택하였다.

경험 있는 사람은 공감하겠지만, 본 환자와 같은 상황에서 술을 마시면 두 가지의 보상이 뒤따른다.

하나는 잠을 푹 자게 되면서 (비록 일시적이지만) 불면증이 해소된다. 다른 하나는 꽁꽁 묶였던 혀가 해제되고 육두문자(?)를 거침없이 뿜어내곤, 분노와 우울 감정의 팽팽한 긴장감이 (비록 일시적이지만) 풀어진다.

그때마다 온몸으로 느끼는 (비록 일시적이지만) 만족과 쾌감이 밀려왔다. 그럴 때마다 마셨던 소주는 화학물질의 특성으로 췌장을 반복적으로 손상시켰다.

참고로 장기간 음주는 식도 및 위는 물론 간과 췌장을 손상시키고, 뇌에 침투하여 이성을 마비시키고 심한 경우에는 신경염과 치매를 일으킨다.

환자는 '실직, 가정불화' > '미움(분노), 우울, 불면증' > '(소주)' > '일시적 만족과 쾌감의 습관고리에 빠졌고, 결국에는 화학물질 소주의 반복자극에 의한 췌장손상으로 알코올성 급성 췌장염이 발생하였다.

지난 연재에서 고흐에게 황시증을 유발하였던 '(압생트)', 4,500 종류의 미세물질 중 대부분이 인체 독성물질을 포함한 담배, ‘통풍과 비만을 유발하는 과량의 음식들도, 모두 다 습관고리의 쳇바퀴에 이끌려 타력으로 유입되어 인체를 손상시키고 종국에는 다양한 질병을 유발한다. 늘 유념하자: ‘건강하지 못한 습관고리는 곧 질병고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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