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복지부가 지난해 128일 공청회를 통해 발표한 건강보험 지속가능성 제고 및 필수의료 지원 대책()’은 그 기본 방향으로 건강보험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할 수 있도록 재정 효율화를 추진하고, 이를 통해 절감된 재정을 국민 생명과 직결된 필수의료국민 부담이 큰 재난적 의료비 지원등에 투입하는 것으로 요약된다. 이는 윤석열정부의 66번째 국정과제인 필수의료 기반 강화 및 의료비 부담 완화를 보다 자세하게 구체화한 것에 다름 아니다.

여기서 정부는 국민 생명과 직결된 필수의료라는 표현을 썼다. 그리고 필수의료 지원대책에 우선 순위가 높은 중증응급, 분만, 소아 환자가 거주지 인근에서 골든타임 내에 24시간365일 상시 필수의료를 제공받도록 지원하는 지역완결적 필수의료체계구축방안을 담았다. 그리고 지원이 필요한 필수의료 분야(중증희귀난치질환, 중증응급 정신질환, 의료인력 희소분야)를 지속적으로 발굴하여 추가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덧붙였다.

이 대책에서 볼 때 필수의료의 범위는 우선 지원 대상인 중증응급, 분만, 소아 분야와 향후 발굴 분야인 중증희귀난치질환, 중증응급 정신질환, 의료인력 희소분야로 확정된다. 이것이 정부가 보는 필수의료이다.

그러나 필수의료가 무엇인가를 정의하는 일은 여러 가지 관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그래서 여전히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정부의 지원 대책 발표를 계기로 필수의료의 정의와 개념을 되짚어보는 것은 그 나름대로 의미가 있을 것이다.

필수의료’, 많이 쓰지만 실체는 불분명

국내에서 필수의료라는 용어를 본격적으로 분석한 논문으로는 <대한의사협회지> 2019411일자에 발표된 필수의료(이상무, 건강보험심사평가원)가 돋보인다.

이 논문은 필수의료라는 말의 학문적 정의는 찾기 쉽지 않다. 임상의학 분야에서 이러한 말이 존재하는지 불분명하다는 말로 시작한다. 우리나라에서도 필수의료라는 말은 특히 보장성을 논하면서 드물지 않게 사용되나, 이에 대해 무엇이 필수의료인지를 정의하는 것 역시 찾기 힘들다고 했다. 한마디로 많이 쓰이기는 하는데, 실체가 분명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가령 필수의료 성격의 의료기술은 급여하고 선택적 의료기술은 비급여나 낮은 급여율로 보장하자라는 주장이 있는데, 이 용법에서 보면 필수의료선택적이라는 말의 상대적인 개념이 된다. 또 필수의료는 응급, 외상, 감염, 분만 등 필수불가결한 의료서비스라는 의미로 사용되기도 하는데, 이 경우 필수의료는 공공의료서비스와 거의 같다고 볼 수 있다.

필수의료는 국민생명과 직결된 분야, 응급외상심뇌중환자신생아고위험 등 긴급시급한 의료영역으로, 지연되었을 경우 국민 생명과 건강에 대한 영향이 크고, 시장실패로 인해 질적 수준의 문제 발생, 균형적인 공급이 어려워 국가가 직접 개입해야하는 필요성이 큰 의료 영역으로 제시되기도 한다. 필수의료를 국민건강보험에서 급여하는 의료서비스로 정의한 경우도 있다. 이처럼 필수의료에 대한 표준적인 정의는 아직 없다.

절대적 필수의료와 상대적 필수의료

논문 필수의료에서 저자인 이상무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상근심사위원은 필수의료를 절대적 필수의료와 상대적 필수의료로 구분한다. 절대적 필수의료는 응급외상감염분만 등 필수불가결한 의료서비스와 같은 것으로, ‘어느 나라이든 최소한 인권적 차원에서 환자들에게 재정적 곤란을 일으키지 않고 제공되어야할 의료서비스이고, 상대적 필수의료는 국가의 공적의료보장제도에서 급여할 항목이라는 정의와 같이 경제 사회적 여건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의료서비스이다. 이러한 구분으로 볼 때 위에서 언급한 정부의 필수의료는 절대적인 개념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이상무 상근심사위원은 절대적 필수의료 개념으로 논한다면 필수의료 범위는 치료하지 않았을 경우 환자의 생명과 삶의 질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는 의료서비스에 국한될 가능성이 많다면서 우리나라의 경우 상대적 필수의료의 개념이 더 현실적이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그는 필수의료를 의학적으로 필요하며 현 사회경제적 관점에서 공적 의료보장에 우선시되어야할 의료기술(서비스)’로 정의했다.

필수비필수의료에서 가치의료까지

202012<의료정책포럼>(18권 제4)에 기고한 필수의료의 개념과 공공의료에서 박진규 당시 대한의사협회 기획이사는 필수의료라는 용어를 사용한다면, 반대되는 필수의료라는 것이 존재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필수의료를 상대적으로 정의한다면 생명이나 중증에 해당되지 않고 삶의 질에 제한적인 영향을 주거나 개인의 성향에 의하여 좌우하는 선택 진료라고 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미용과 성형이 포함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박진규 이사는 필수와 필수 사이의 중간적인 영역도 생각해 볼 수 있다면서 무릎이나 어깨의 통증 같은 퇴행성 질환과 급만성 통증, 가벼운 감기, 복통 같은 증상을 보이는 경우 등을 그 예로 들었다. 특히 이런 질환들은 근로 능력을 가진 노동자로서 사회 활동을 저해하는 원인이 될 수 있기 때문에 국가가 개입해야 할 근거를 가질 수 있다고 했다. 이러한 의료서비스 영역에 대해 박 이사는 사회적으로 가치 있는 근로 활동에 영향을 미치므로 필수와 비필수 사이에 위치하는 가치의료라는 새로운 영역에 포함시킬 수 있다며 새로운 주장을 도출했다.

그에 따르면 필수의료 체계에 국가가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래서 최우선보장 범위에 포함돼야 한다. 그러나 삶의 질에 영향을 끼치고, 사회적으로 가치 있는 근로 활동에 영향을 미치며, 인간의 건강권과 같은 존엄권을 침해할 수 있는 가치의료에 정부의 개입이 절대적일 필요는 없다. 하지만 재원이 가능하다면 사회적 동의를 전제로 필수의료의 확대 영역에 포함시킬 수 있다고 했다.

공공의료응급의료과도 뚜렷한 구분 없어

흔히 말하는 필수의료의 영역은 공공의료나 응급의료 영역과도 뚜렷하게 구분돼 있지 않아 혼란을 야기할 수 있다.

공공보건의료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공공보건의료는 국가, 지방자치단체 및 보건의료기관이 지역계층분야에 관계없이 국민의 보편적인 의료 이용을 보장하고 건강을 보호증진하는 모든 활동을 말한다.

그리고 그 법률 제7조에는 공공보건의료기관이 우선적으로 제공해야 할 보건의료로 의료급여환자 등 취약계층에 대한 보건의료 아동과 모성, 장애인, 정신질환, 응급진료 등 수익성이 낮아 공급이 부족한 보건의료 재난 및 감염병 등 신속한 대응이 필요한 공공보건의료 질병 예방과 건강 증진에 관련된 보건의료 교육훈련 및 인력 지원을 통한 지역적 균형을 확보하기 위한 보건의료 등을 규정하고 있다.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응급의료란 응급환자가 발생한 때부터 생명의 위험에서 회복되거나 심신상의 중대한 위해가 제거되기까지의 과정에서 응급환자를 위하여 하는 상담구조이송응급처치 및 진료 등의 조치를 말한다.

이로써 보면 필수의료는 공공보건의료 영역에 포함되는 것으로 볼 수도 있고 응급의료를 다루는 영역으로도 볼 수 있다. 따라서 필수의료가 제도적으로 뒷받침되지 않을 경우 영역 다툼에 휘말릴 가능성은 상존한다고 할 수 있다.

개념이 불분명하면 영역 다툼 발생 여지 많아

통상적으로 의료계에서 필수의료는 내과외과산부인과소아청년과를 뜻하는 의미로 사용돼 왔다. 법적으로도 300병상을 초과하는 종합병원 이상의 의료기관은 이들 4개과 중 3개과를 의무적으로 설치해야 한다. 이외에도 심장혈관흉부외과와 비뇨의학과, 감염학과, 중환자의학과 등이 필수의료의 대열에 합류하는 양상이다.

지금처럼 필수의료의 정의와 개념이 분명하지 않으면 영역간의 다툼이 발생할 여지가 다분하다. 지난 8월 정부에서 필수의료 지원 대책이 나올 것으로 예고되자 이미 여러 진료과들이 경쟁적으로 필수의료를 자처하면서 지원을 요구하고 나섰다.

의사협회는 이러한 양상이 의료계의 내분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하고 정부와의 대화 창구를 의협으로 단일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전문 학회 측은 필수의료의 위기가 수가뿐만 아니라 정책 개선을 통해 이루어져야 하는 만큼 유관 학회의 정책 전문가들이 정부와의 대화에 더 적합하다고 반박했다.

위에서 언급한대로 복지부는 최근 공청회를 통해 필수의료 지원 대책()을 내놓고 각계의 의견을 수렴하겠다고 했다. 차제에 정부와 의료계, 국민을 포함해서 모든 당사자들이 논의를 거쳐 필수의료를 보다 명확하게 정의해내고, 그 기반 위에서 제도화를 위한 노력을 진행하는 것이 보다 바람직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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