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역사편찬원(원장 이상배)은 서울문화마당 제19권 ‘조선시대 서울의 차 문화’를 발간했다.

이번에 발간한 ‘조선시대 서울의 차 문화’는 음료이나 약이었고, 취미이자 의례이기도 한 차 문화가 조선시대 서울이라는 공간 속에서 어떻게 생산, 소비되었는지 차 문화의 역사를 쉽고 재미있게 서술했다.

‘조선시대 서울의 차 문화’는 차 문화에 관한 많은 저서를 집필한 한국차문학회의 부회장인 정은희 교수가 집필했다. 총4장(①조선시대 이전의 서울 차 문화 ②조선왕실과 관청의 차 문화 ③조선시대 한양의 명소와 차 문화 ④조선시대 한양의 인물과 차 문화)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조선시대 차 문화의 역사를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다양한 사진이 함께 수록되어 있다.

차 문화가 싹트기 시작한 삼국시대 그리고 그것이 ‘일상다반사’가 된 고려시대 모두 서울은 차 문화를 향유했다. 고려시대에는 찻집인 ‘다점(茶店)’이 새로운 차 문화 공간으로 자리 잡을 정도로 차는 고려인들에게 일상의 음료가 되었다. 고려시대 남경(南京)이었던 서울 역시 국왕들의 순행의 대상이었으며, 많은 사찰들이 자리함에 따라 차 문화를 즐긴 고려인들에게 예외의 장소가 아니었다.

조선시대 차 문화를 선도한 지역은 서울, 차 문화를 이끄는 중심에는 왕실과 관청이 있었다. 왕실이 주관하는 연회, 주다례·별다례 등의 제례, 중국 사신단의 접견의례 그리고 왕실 가족들의 사적인 모임들에서 차는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조선왕실의 중요한 음료문화였다. 또한 다시(茶時)를 통해서 정의사회를 구현하려 했던 사헌부, 여성과 신분이라는 굴레로 탄생한 특수직 차모(茶母), 조선 최대의 양잠업에 이르기까지 조선시대 관청에서도 차는 곳곳에 위치해 있었다.

조선시대 한양의 명소에는 차가 빠지지 않았다. 한강과 한양을 둘러싸고 있는 내사산은 조선시대 지배층들이 즐겨 찾은 명승지였다. 한강변과 내사산의 전망 좋은 곳은 그들의 휴식처로 풍류를 즐기거나 심신을 수양한 누정에는 차 문화가 함께했다.

사대문 안의 광통교와 수성동계곡 일대에서는 다양한 계층과 직업군이 차 문화를 즐기는 공간이었다.

조선시대 한양에는 유명한 차인(茶人)들이 있었다. 지하철 7호선 사가정역의 서거정(1420~1488)과 서울대학교 자하연의 신위(1769~1845)는 조선 전기와 후기를 대표하는 문인들로, 그들은 항상 차를 노래하고 있었다.

조선시대 차 문화는 조선이라는 시대와 서울이라는 장소를 엮어 새로운 트렌드를 만들었다. 당대인의 사상과 철학, 생각과 요구가 담긴 시대의 산물인 차 문화의 가치를 가장 생동감있게 느낄 수 있는 곳이 바로 서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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