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청양에 가면 칠갑산(七甲山)과 함께 ‘콩밭 매는 아낙네’ 동상을 여러 곳에서 만나게 된다.

“콩밭 매는 아낙네는 무척 부지런한가요?” 질문을 던져 보았다. 모두 묵묵부답이었다.
“콩은 풀 속에서도 잘 자라기에 매지 않아도 되는 것이라... 논두렁, 밭두렁콩은 풀더미 속에서도 잘 자란다. 풀을 매주면 콩이 잘 자라지만 콩밭에 풀이 나 있으면 게으르다는 평을 듣기 때문에 풀을 맨다.”

옛 고구려 영토까지를 포함해서 한반도 풍토에 가장 적합한 작물은 콩이라 했다. 어렸을 때 시골 논두렁 밭두렁에는 콩을 심었다.

빈 땅을 그대로 묵히지 않았다. 지금 고속도로 변이나 시골길 따라 여행을 하면서 살펴보면 농사짓지 않고 놀리는 땅에는 망초, 개망초, 실망초가 한여름 연한 자주 빛이 도는 흰색 꽃밭을 일구어 놓았다.
예부터 간장 맛이 좋아야 그 집안 음식 맛이 좋다고 했다. 간장의 원료는 콩이요, 메주를 어찌 빠지겠는가.

메주는 철기시대 말기에서 원삼국시대 들어가기 전에부터 만들었다니 꽤 오래된 음식이다. 막메주는 말장이요, 고려시대에는 메주를 미순이라 했다는데 조선 왕조 초기에 말장(며주)이라고 했던가 보다. 간장이야 삼국사기 속에서도 683년 왕비의 납폐 품목이었다니, 맛의 유래를 짐작할 만하다.

시세말로 된장국을 개그콘서트의 ‘우격다짐’이라 했으니 마땅한 반찬 별로 없을 때 된장 풀어 고추, 파, 시금치, 우거지 집어넣어 오래 삶아 끓일수록 그 맛이 더 오묘하니 어찌 그 맛 잊으랴.

늙은 영감 자취방에 마누라가 찾아와서 미안스러워 한마디....
“국이나 찌개를 곁들여야 할 터인데....”
매일 잘 먹었던 음식 맛이 반감했었음을 실토했던 일이 있었다.

콩은 중국 동북부 지방에서 화북 지방으로부터 기원전 1세기 삼국시대 초기에 이 땅에 들어왔다고 전하다. 식물성 단백질의 주요 공급원이 아닌가. 두부, 간장, 된장, 콩가루 과자, 콩기름, 찹쌀떡의 고명에까지. 그리고 콩깨묵은 사료나 비료였으나 제 2차 세계대전 때는 콩의 곡창 만주로부터 콩기름 짜고 남은 콩깨묵은 배급받아 식용으로 했으니 그 이름은 대두박이라 한민족은 마, 소 취급을 받았었던 기억도 새롭다.

중학교 때 물리선생님의 콩나물 이야기가 생각난다. 일본군이 중국군과 싸움을 벌리고 있을 때 그들의 진지에는 콩이 많았었는데 그것을 볶아 먹고 설사를 하게 되었는데 콩나물을 길러 먹었더라면 잘 견딜 수 있었을 것이라 하셨던 이야기.... 황색, 푸른콩, 검정콩, 쥐눈이콩에 갈색얼룩이, 아주까리 콩까지.

한국인들이 그 옛날 하인을 부리면서 콩털이 마당에 콩이 박히는 정도를 보면서 하인들의 불만 정도를 점을 쳤다니 지혜로웠고, 주인들의 마음씀을 다시 보는 듯하다.

한국의 맛과 멋 우리 민족의 고동소리, 한여름밤 다다미 방망이, 이불호청 다듬는 소리도 며느리와 하녀들의 불만, 한풀이를 가늠했었다니 멋있는 민족이다. 우리는....

검정콩이 몸에 좋다더니 검정콩 우유는 순번을 기다려야 할 수 있다니 몸보신이라면 어느 민족이 우리들을 따라올 수 있을까 몰라.

옛날 우리 조상들은 음력 2월에 콩볶아 먹는 날이 있었다. 지금처럼 넉넉지 못했던 시절, 집단 영양섭취 행사가 아니었을까.

콩 속의 필수 아미노산이 엉겨 붙어 다시 콩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것이 그 속성이니 출옥한 사람들이 두부를 먹는 의식은 다시 그곳에 들어가지 않기를 바라는 가족들의 주술이 아닐까?

박완서씨의 신문집 <두부> 속에는 지난날 권좌에 앉았던 상감님의 이야기 흥미로운 수필이다.
고려말 이색 선생은 <목은집>에 “두부”라는 글을 남겼다.
“나물국 오래 먹어 맛을 못 느껴 두부가 새로운 맛을 돋구어 주네. 이 없는 이 먹기 좋고 늙은 몸 양생에 더없이 알맞다.”

두부는 부드럽고 독특한 맛, 반듯한 모양, 먹기 편한 음식이다. 두부는 오미(五味)를 지녔다.
두부는 2200년 전 중국 한무제 때 유왕이 처음 만들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고, BC 150년 한나라 회남왕 때 만들기 시작 우리나라에는 고려시대에 들어왔다고 전한다. 

두부는 단백질 대용식이다. 사찰 음식이요, 스님음식이다.
조선왕조 세종 14년, 명나라에 사신으로 다녀왔던 박선생에게 두부 만드는 솜씨 뛰어난 찬모를 중국에 파견해 달라는 요청을 받아야 했다.

<홍길동>저자 허균의 아버지 허엽씨는 집 앞의 좋은 샘물로 빚은 “초당순두부”는 지금까지도 속초 한계령 밑에서 전통을 이어오고 있다.

수없이 많은 초당두부집, 모두 원조라는 간판은 콩, 두부까지도 너털웃음을 터뜨릴 지경이다.
명절이나 제삿날을 맞이하여 삼발이 걸어놓고, 맷돌 돌려 만들어 주시던 그 두부마시 어찌 잊으랴.
고향 동네 할아버지는 탐복이네 순두부 맛에 가정파탄 일으켰던 이야기도 두부 맷돌 돌아갈 때 고부간 다정스러운 옛이야기 레퍼토리였지 않았던가.

전국 방방곡곡 연두부(순두부), 비단 두부, 베두부, 탄다부, 곤두부, 유부 등등 신토불이 우리콩 두부라는데 믿어도 좋을지....

중국 두부 요리 중 가장 많이 알려진 마파두부의 내력은 흥미롭다. 중국인부들이 무더운 날씨에 일에 시달려 지쳤을 때, 잘게 썬 고기에 두부와 파 고춧가루를 섞어 만들었는데 요리사 만복교가 시식 후에 전파하기 시작하였는데 요리사 노파는 얼굴에 곰보자국이 있어 “마파”두부가 되었다 한다.

서양사람들은 두부를 “살찌지 않는 치즈”라고 부른다. 콩보다 소화흡수력이 좋으면서 칼슘 다량 들어 있어 뼈를 튼튼히 해주고, 간장을 풀어주는 음식이다.
쌀밥 대신 두부, 낮밤 2회, 매식마다 두부 한모에 간단한 반찬을 먹어라. 두부 다이어트의 요점이다.
밭에서 나는 고기, 살이 찌지 않는 치즈, 두부 두르치기는 어떻고, 부글부글 두부찌게가 제맛을 내는 가을의 문턱에 왔다.

치서날에 구질게도 하루종일 비가 쏟아진다. 두부찌게 그리워지는 배 촐촐한 주말이다. 풀무원은 미국 LA에 두부공장을 세 번째 설립했다니, 치즈를 먹고살아도 멀리 이국땅 교포들은 입맛은 변하지 않는가 보다.

중국 고대 문헌 속에는 고구려 사람들은 장(醬) 담근다. 타국인들은 고기로 육장(肉醬), 물고기로 어장(魚醬) 담그지만 우리는 콩으로 메주 쑤어 두장(豆醬)을 담근다.

월남 참전용사들은 모이면 그 야릇한 냄새의 ‘늑막’이야기 꽃을 피운다.
옛날부터 여자가 시집갈 때는 36가지 장 못 담그면 시집갈 조건을 갖추지 못했다 평가했다 한다. 간장 조미료는 살림 밑천이기 때문에...

조선시대 실학자 이익(李瀷)은 대두국력론을 펴기도 했다. 빈터에 콩을 수없이 많이 심어 기르기를 바란다! 두부 1세대 이야기 쯤으로 우선 끝을 맺는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저작권자 © 메드월드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