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은 나의 제2의 고향이다. 6.25전쟁이 일어나기 3년 전 나는 고향 강화를 떠나 인천으로 이사와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을 다니던 시절에 서울로 옮겨왔다. 인천의 지명에는 ‘구름다리’, ‘배다리’, ‘개건너’ 그리고 ‘괭이부리말’같은 지명이 특히 기억에 남아있다.

초등학교 3학년 돗단배에 가재도구를 싣고 ‘괭이부리말’에 도착하여 인천으로 이사 왔다. 철모르던 어린시절 이삿짐을 다 나를 때까지 ‘구름다리’동네 ‘전동’가지 몇 번 들락거렸다. 시골뜨기 인천 도회지가 좋아서...

김중미는 인천 출신의 작가다. 방송통신대 교육학과를 졸업했다. 1987년부터 인천 만석동 괭이부리말에 살면서 ‘기찻길 옆 작은학교’라는 공부방을 운영하면서 작가가 아이들과 겪은 생생한 경험을 바탕으로 <괭이부리말 아이들>이란 소설을 썼다.

작가는 2001년 강화도로 귀농한 후에도 인천을 오가며 고부방을 계속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괭이부리말은 인천시에 유일하게 남은 달동네인 만석동 일대 쪽방촌의 별칭이다. 6.25전쟁 직후 가난한 피난민들이 모여 살면서 만들어졌다. 소설 속에서 아이들은 괭이부리말이라는 마을 이름은 ‘포구와 똥바다를 하얗게 뒤덮는 괭이갈매기’ 때문에 생겼을 것이라고 짐작하고 있다.

소설 <괭이부리말 아이들>은 2000년 출간 이후 13년만인 2013년 아동문학사 처음으로 200만부를 돌파했던 책이다. 200만부를 돌파한 것은 이 소설이 처음이다. 이 소설은 IMF직후였던 1999년쯤 쓰여졌다. 모두들 여러운 시기, 달동네 사람들의 생활은 더 힘들었던 시기에 나왔다. 

소설의 내용을 살펴보자. 숙자·숙희 자매의 아버지는 오토바이 음주사고를 내고 빚은 진다. 어머니는 아버지를 견디지 못해 가출했다. 숙자언니는 어리광 부리며 욕심 많은 동생 숙희를 돌보고 친구인 동준이도 감싸주는 착한아이다. 오히려 아버지를 여러모로 위로해 주는 언니다.

어느 날 어머니가 귀가하여 즐거움이 반짝 비추었지만 아버지는 일터에서 사고를 당하여 죽었다. 숙자언니가 관심을 두고 보살폈던 동수·동준 형제는 어머니의 가출에 아버지도 돈벌어 온다며 가출하고 돌아오지 않는다. 고교를 중퇴한 동수형은 그의 친구 명환이와 함께 본드를 흡입하고, 불량소년들과 한패가 되어 가정의 허전함을 달래며 살고 있다.

이들 불우학생들을 돌보는 영호삼촌과 김명희 선생 이야기 차례다. 먼저 영호삼촌은 괭이부리말에서 자라고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괭이부리말에 정착한 청년이다. 김명희 선생은 괭이부리말 출신이지만 열심히 공부하여 다시는 돌아오지 않겠다고 하면서 이곳을 떠났다.

그러나 교사로 첫 부임지가 공교롭게도 괭이부리말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였다. 영호삼촌은 암으로 세상을 뜬 어머니의 장례를 치루고 난후 본드에 취한 동수를 집으로 데려온다. 그리고 동수·동준 뿐 아니라 한동네 아이들까지 돌봐준다. 김명희교사는 ‘괭이부리말’아이들은 구제불능이라 생각하였지만, 동수를 상담한 것이 계기가 되어, 자신이 ‘머리만 있고 가슴은 없는 선생’이었다 후회하면서, 괭이부리말 아이들과 희로애락을 같이 나누며 살고 있다. 김선생님은 자신의 10층 아파트에서 이곳에 이사 와서는 이제부터는 나 혼자 높이 올라가기 위해 발버둥치지 않겠다고 굳게 다짐하는 선생님이 되었다.

영호삼촌과 김명희선생님의 따뜻한 도움으로 동수는 어둡고 고통스러운 방황에서 점차 벗어나 낮에는 작은 공장에서 일하고 야간공고에 다니기 시작한다. 소설 속 아이들은 어려운 여건에서도 서로들 다독이며 희망을 함께 키워나는 해피엔딩이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작가는 이런 모습을 동수네 공장 철문 앞에 핀 민들레로 상징화했다. 짓밟혀도 끝내 피어나는 꽃, 소설의 내용을 일부 옮겨본다.

“동수는 열쇠를 자물쇠에 꽂으려다가 파란 새싹을 보았다. 공장 철문과 벽돌담 사이에 있는 좁은 틈 사이로 파란 민들레 싹이 돋아 있었다. ‘어! 새싹이네.’ 허리를 펴 주위를 둘레둘레 살펴보니 햇볕이 드는 곳마다 푸른 싹들이 비쭉비쭉 머리를 내밀고 있었다. 동수는 저 어릴 풀들이 볕도 잘 안드는 공장지대 한 구석에서 긴 겨울을 어떻게 견뎌냈는지 신기해했다.”

“동수는 민들레 싹 곁에 쭈그리고 앉았다. 그리고 손가락으로 담 밑에 먼지처럼 쌓여 있는 흙가루들을 쓸어다가 뿌리 위에 덮어주었다.”

민들레에는 민들레, 서양민들레, 흰민들레가 있다. 크게는 토종민들레, 귀화민들레로 나누기도 한다.
민들레는 전국 각지의 산과 들, 길가 공터 등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꽃이다. 흙이 조금만 있는 척박한 환경에서도 잘 자란다. 꽃대 하나가 한 송이 꽃처럼 보이지만 실은 수십 개의 작은 꽃송이들이 모여 있는 국화과 식물들의 특징을 지녔다.  민들레 종류로는 토종민들레와 1910년쯤 들어온 귀화식물인 서양민들레가 있다. 서양민들레는 꽃을 감싸는 총포 조각이 아래로 젖혀져 있지만, 토종 민들레는 총포 조각이 위로 딱 붙어있다. 요즘엔 토종민들레 보다 귀화한 서양민들레가 더 흔하며 번식력이 왕성하여 도심에선 토종민들레는 찾기 힘들다. 서양민들레가 대세다. 또 봄부터 초가을가지 여러 번 꽃을 피워 번식할 수 있다.

꽃송이 하나당 맺히는 씨앗의 숫자도 서양 민들레가 훨씬 많다. 민들레는 홀씨가 아니다. 홀씨는 식물이 무성생식을 하기 위해 형성하는 생식세포다. 홀씨는 고사리같이 무성생식하는 식물에만 맞는 표현이다. 수술과 암술이 있는 민들레는 홀씨가 아니라 꽃씨 또는 씨앗이라 해야 한다.

민들레의 어원은 재미있다. 사립문 둘레에서도 자주 볼 수 있을 정도로 흔한 꽃이라 해서 ‘문둘레’로 부르기 시작한 것이 차차 그 꽃말이 진화해서 민들레가 되었다하니 재미있는 이름이다. 나의 소박한 정원 뜰에는 지난겨울 매서운 추위를 보냈지만, 꽃밭 밖의 보도부록 틈새 여기저기에는 민들레가 만발하였다.

민들레의 별명은 ‘앉은뱅이’다. 옛날 천자문을 배우던 서당은 ‘앉은뱅이 집’이라 했는데, 서당의 훈장을 포공(蒲公)이라 서당에는 의례 앉은뱅이 민들레를 심었다고 전해온다. 긴 장죽(長竹)을 물고, 방석에 쪼그리고 앉아있는 서당 선생님을 상상해본다.

크리닉 정원 좁은 포도블록 틈새에서 자라고 있는 민들레를 뽑아버리면 곧 다시 살아나고 있어 이제는 마음대로 자라게 내버려두었더니 민들레 밭을 이루었다.

민들레의 꽃말은 ‘이별’이라고 하기도 하나 ‘농부들의 예언자’란 꽃말이 더 흥미롭다. 시골 농촌에서는 민들레꽃은 시계역할을 해서 민들레꽃이 피면 아침 5시 5분, 저녁때 꽃잎을 닫으면 오후 8시 9분이라 한다. 민들레는 4월부터 꽃을 피기 시작하여 9월까지 꽃을 달고 있다. 민들레꽃은 밝은 빛이 찬란한 노란색 꽃으로 가는 혀 모양이고 그 앞쪽에는 5개의 톱니를 지녔다. 황금빛 민들레꽃은 동물의 왕자인 사자의 제왕적 색깔을 닮고, 그 꽃모양이 사자가 입을 벌린 모습과 닮았다. 사자가 입을 벌린 모습과 민들레잎이 톱니모양 거칠게 나있는 잎모양을 독일어에서는 ‘뢰벤찬(Lowenzahn)' ’사자의 이빨‘이라 부르고, 영어의 ’민들레dandelion'은 불어에서는 dent de lions(사자의 이빨)에서 유래하였다고 한다.

키 크고, 시도 때도 없이 꽃이 핀다고 핀잔 받는 민들레는 양지쪽 풀밭에 퍼져 사는 여러해살이 풀이다. 민들레꽃은 생명력 강한 잡초다. ‘안질방이’ 로제트형으로 퍼지는 기다란 뿌리잎 사이에서 꽃줄기가 나와 그 끝에 노란 꽃송이가 하늘 향해 피어난다. 둥근 꽃줄기는 속이 비어있다. 잎 꽃줄기에 우유 같은 즙액이 나온다. 우리 주위에서 흔히 보는 민들레, 꼬들배기, 씀바귀는 모두 국화과 식물이다. 쓴맛을 낸다. 흰 즙이 있다. 민들레 홀씨는 바람타고 날아가 자손을 퍼뜨린다. 민들레 홀씨는 100리까지 날아간다. 땅 속 뿌리는 줄기의 15배까지 뻗어 자란다. 땅 밑 60cm 이상 깊이 들어가 뿌리를 내린다. 민들레 뿌리는 캐어내 5일간 건조하여 1cm 잘라 심어도 싹이 나는 강인한 식물이다. 민들레 꽃말은 ‘이별’이다. 강인한 뿌리, 번식력을 생각하면 꽃말이 미덥지 못하다.

민들레는 저항력이 강한 예쁜 꽃이다. 널리 퍼져있는 잡초로 분류되지만, 추운 겨울 혹독한 시련을 견디고, 아름다운 꽃으로 승화되는 인고(忍苦)의 풀이다.

일편단심 민들레란 말뜻은 생명력 강한 그 뿌리와 상관있다. 한가지에만 절개를 지키며, 한번 정을 맺으면 영원히 변치 않는데서 유래된 어원인 듯싶다.

앉은뱅이 민들레는 특성과 장점이 많다. 국립수목원 이유미소장의 민들레 특성을 요약해본다. 민들레는 구덕초(九德草)로 부른다. “나쁜 환경에서 잘 견디어 내는 인(忍), 뿌리 잘려도 새싹이 돋는 강(剛), 꽃이 한번에 피지 않고 차례로 피므로 예(禮), 여러 용도로 사용되니 온몸 바쳐 세상에 기여하는 용(用), 꽃이 많아 벌을 부르므로 덕(德), 줄기 자르면 나오는 흰 액이 젖처럼 나므로 자(慈), 약으로 이용 노인의 머리를 희게하여 효(孝), 흰 액은 모든 종기에 들어 인(仁), 씨앗은 스스로의 힘으로 바람타고 멀리가 새로운 후대를 만드니 용(勇)의 덕(德)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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