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은 적막의 계절이다. 알지 못하는 사이에 조금씩, 조금씩, 나뭇잎이 떨어지듯이 모르는 사이에 조금씩 변하는 모습을 곱고 아름답게 표현하는 말은 ‘시나브로’-아름다운 우리 말이다.
잿빛하늘, 서풍 북서풍 하늬바람은 칼바람 부는 겨울을 부른다. 빈 나뭇가지 매서운 바람 소리 속에 찬 하늘에 높게 걸려 있는 은하수의 아름다운 이름말은 ‘미리내’다.

옛 시조 속의 ‘은한(銀寒)은 삼경(三更)인데... 겨울밤은 깊고도 길다. 겨울나무는 한여름의 푸르름을 모두 털어 버리고 탕아(蕩兒)처럼 칼바람의 성글고 어설픈 그물 노릇을 하고 서 있다.
윙윙씽씽! 빈 나뭇가지를 스치는 칼바람소리, 잿빛하늘, 하늬바람 따라 울부짖는 산우는 소리, 긴 겨울밤은 향사(鄕思)의 계절이다. 또 사랑의 계절이다. 그리고 순백(純白)의 계절이 되기를 학수고대하는 동짓달이 찾아왔었다.

이 겨울날 우리 문학사상, 정든 님을 애틋하게 그리워하는 연모의 정을 은유적이고 의태법적으로 우리말의 우수성을 낭만적으로 표현했던 황진이(黃眞伊)의 시조를 빼놓을 수 없다.

 동지(冬至)ㅅ달 기나긴 밤을 한 허리를 버혀내어
 춘풍(春風)니불 아래 서리서리 너헛다가
 어론님 오신날 밤이여든 구뷔구뷔 펴리라

‘서리서리’ ‘구뷔구뷔’의 섬세한 감정, 긴 ‘겨울밤’ 짧은 ‘봄밤’의 절묘한 대비... 우리 문학의 금자탑이다. 동짓달은 주로 음력으로 한해 열한 번째 드는 달 십일월이요, 지월(至月)을 말함이다. 동지는 24절기의 22번째 절후(節侯)로서 대설(大雪)의 다음이다.

양력으로는 12월 22~23일경에 해당하고, 음력으로는 동짓달에 든다. 태양이 남회귀선, 곧 적도이남 23.5˚인 동지선(冬至線)에 이르는 때인데, 이때 북반구에서는 해가 가장 짧고, 밤이 가장 길며 남반구에서는 해가 가장 길고 밤이 가장 짧다. 호주와 뉴질랜드를 여행할 때 관광가이드는 한국에서는 남향판 가옥을 짓지만 이곳에서는 북향집이 더 비싸다는 설명을 해 주었던 기억이 새롭다.

흔히 동지가 지나며 낮은 노루꼬기 만큼 길어진다고 한다. 동지를 넘기면 태양은 하루하루 북으로 올라오고 있으니, 그래서 생긴 이야기일 게다.

옛날 사람들은 태양이 복원하다 해서, 동짓날은 축제일로 삼았었다. 태양신을 숭상하던 페르시아의 미드라교에서는 동지를 태양 탄생일로 정하고 태양의 부활을 축하했다 하는데, 크리스마스도 4세기 후반 로마에서 성행했던 미드라교의 동지제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유력하다.

옛날 중국에서는 ‘대중스님들이 모여 사는 선원’의 4절은 ‘여름결제’ ‘여름해제’ ‘동지’ 그리고 ‘연조’라 했다. 동지를 동년이라 해서, 동지의 전야를 ‘동야(冬夜)’라 하여 성대하게 의식을 갖추었다. 크리스마스 이브도 바로 이 동지의 전야를 동야라 하는 풍습이 전해 내려오는 것이 아닌가라는 학자들도 있다.

우리 풍속으로는 동지를 ‘다음해가 되는 날’ ‘낙은 설’이라 하여 축하했고, ‘원단(원단)’과 ‘동지’를 최고의 축일로 생각하여 궁중에서는 군신과 황세자가 모여 큰잔치 ‘회례연(會禮宴)’을 베풀었고, 예물을 바리바리 실어 ‘동지사(冬至使)’를 중국에 파견했다.

동지팥죽에 얽힌 이야기는 재잘거리던 동생들과 형제들이 모여 긴 겨울밤을 밝힌 재미있는 일화였다.

‘뜨거운 팥죽 먹고 팥죽 같은 땀을 흘렸다’는 이야기와 시어머니?시아버지 몰래 팥죽을 뒷간에서 급히 먹고, 시집살이 하던 며느리 이야기... 끝이 없었다.

붉은 팥죽에 찹쌀 옹심이, 새알심, 꿀에 재어 다투어 먹던 형제들, 역귀를 쫓는다 해서 방, 마루, 광, 장독대데 한 그릇씩 놓아두거나, 대문 밖에 뿌린 다음에 먹어야 되는데 그것을 못 참고...

동짓달 음식 팥죽도 좋고 냉면, 곶감과 수정과도 좋지만 겨울밤 형님의 참새 매운탕맛을 어찌 잊겠는가. 형님은 인천에서 건전지와 손전등을 구해서 고향집에 가져오셨다. 고드름이 발을 엮어 주렁주렁 매달린 초가지붕 참새 보금자리에 갑자기 밝은 전등불을 밀어 넣으면 참새가 옴짝달싹 하지 못할 때 잡아 들였다.

낮에는 울타리에 새그물을 쳐 놓고, 대장형님의 지시에 따라 동생들은 새몰이에 나섰다. 손을 호호 불면서... 양파를 썽둥썽둥 썰어 넣고, 대파는 송송 썰어 넣어 끓인 부글부글 매운탕 냄비를 동지섣달 시저음식이 어찌 따라올 수 있었겠는가? 동짓날 시절음식 청어, 명태는 저리가라였었다.

나의 고향 강화의 순무김치는 동치미, 깍두기 그리고 배추김치의 퓨전김치가 아니었던가. 그 시원하고 새콤한 맛! 누가 팥죽에 동치미라 했지만, 그것은 상대도 아니 되었다.

겨울 순백의 계절을 고대한다. 8월의 크리스마스는 크리스마스 이야기가 아니지 않는가? 조서왕조 시대의 만우절은 기발한 풍습이었던 것 같다. 만우절 4월 1일이 아닌 겨울 낭만이었다.

첫눈이 내리는 날, 궁인(宮人)들이 지엄하신 임금님의 속여도 죄가 되지 않았다니 희한한 일이로다. 비빈(妃嬪)이나 궁녀(宮女)들이 임금님에게 겉포장만 화려하나 내용물이 들어있지 않는 선물을 보냈다고 했다. 선물을 풀어보신 임금님이 속은 것을 아신 뒤에도 첫눈 오는 날만은 웃어 넘기셨다니 사랑에 얽힌 이야기 한 토막임에 틀림없다.

눈(雪)은 풍요의 상징이다. 첫눈이 오는 경사스러운 날 임금님을 속여도 하해와 같은 아량으로 너그럽게 보아 주셨다고 하니 우리 조상님들의 여유 그리고 낭만에 감탄사를 연발하고도 남을 풍습이었다.

경남지역에는 100년 만에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맞이하였다는 소식이었다. 남녘에는 눈이 많이 왔는데 서울에서는 눈을 크게 뜨고 눈을 기다리고 있다.

‘눈은 보리의 이불이다’라 했다. 눈이 많이 내리면 보리를 덮어 보온막 역할을 하므로 보리가 잘 자라는 데서 나온 말이다. 예부터 동지에는 어려운 백성들도 모든 빚을 청산하고 새로운 기분으로 하루를 즐기는 날이었다 하고, 궁중에서는 달력을 만들어 나누어 썼다는 흐뭇한 소식을 전하고 있다.

그래서 단오(端午)에는 부채를 주고받는 풍속과 겨울에는 달력을 선물하는 옛 풍속을 ‘하선동력(夏扇冬曆)’이라 했다.

악귀를 쫓아내는 붉은 팥죽의 원력을 굳게 믿어보며 신문에 오르내리는 10불(不)은 지나치게 남을 믿는 사람을 조롱하는 ‘팥을 콩이라 해도 곧이 들린다’라는 속담이 본뜻이 되고, 손해를 본듯하나 손해 본게 없다는 ‘팥이 풀어져도 솥안에 있다’라는 속담처럼 제구실하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새해에는 어느 한쪽으로 기울지 아니하고 공평함이 화두가 되어 ‘콩도 닷말 팥도 닷말’같은 속담 속의 이치가 맞는 세상이 되어, ‘콩 튀듯 팥 튀듯’할 일이 절대 없어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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