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수송동 조계사 대웅전 앞에는 회화나무 노거수가 있다. 여름엔 화사한 꽃향기를 뿜어낸다. 우정총국에도 오래된 회화나무가 있어 푸르름을 자랑하고 수문장처럼 서있다. 관훈동의 SK건설 빌딩 옆에는 수백년 된 회화나무 노거수가 자랑스럽다. 이곳은 조선 마지막 황족 가수 이석의 집터였다.

회화나무는 지체 높은 양반의 집, 관아터, 서원 등에 고급 정원수로 심었다. 오대고궁 궁궐은 물론 창덕궁 정문, 돈화문 앞에도 회화나무 노거수가 있다.

돈화문을 들어서면 세 그루 회화나무를 만난다. 창덕궁에는 회화나무 거목이 8그루가 있다. 돈화문과 금천교(禁川橋) 사이는 왕실 사무기관 내각사가 있는 곳으로 외조(外朝)에 해당되는 곳이다. 외조에서 왕은 삼정승(三政丞ㆍ영의정, 좌의정 그리고 우의정)을 비롯하여 관료, 양반 친척들을 만났다.

궁궐 건축의 기준은 중국의 주례(周禮)를 따랐다. 그 속엔 ‘면삼삼괴삼공위언(面三三槐三公位焉)’이란 문구가 있다. ‘삼공(三公)은 삼정승의 자리로 삼았다’. 그리고 ‘회화나무를 심어 그 표로 삼는다’.

회화나무는 ‘학자수(學者樹)’다. 선비의 굳은 절개, 높은 학덕을 상징하는 최고의 ’길상목(吉詳木)‘이다. 집안에 심으면 가세번창, 큰 학자나 인물이 난다 믿었다. 그리고 그 옛날엔 궁궐, 서원, 선비 집에 심을 수 있었다.

회화나무는 순우리말이다. 중국 회화나무는 괴목(槐木) 또는 괴화목으로 부르고 한국에서는 느티나무를 괴목으로 부른다. ‘괴목(槐木)’의 ‘괴’의 중국어 발음은 Hu?i다. 그래서 한국어로 ‘회화’로 되었다는 설명이다. 회화나무는 콩과나무, 병충해가 적어 가로수로 탁월하다. 동남아 싱가폴의 가로수는 회화나무다. 베이징은 가로수로 변경 교체중이라 한다.

가로수의 ‘훈구파’ 4대 가로수는 은행나무, 버즘나무, 느티나무 그리고 벚나무다. 2000년대 가로수의 ‘사림파’는 이팝나무, 회화나무 그리고 메타세쿼이아다.

서울시는 청계천을 복원할 때 가로수로 이팝나무를 선택했다. 이팝나무 꽃은 이밥(입쌀밥)을 얹어놓은 모양의 꽃이다. 이팝은 개화기간이 길다. 봄꽃이 들어가며 여름의 문턱에 꽃을 볼 수 있어 이팝꽃이 피면 여름이라고도 한다.

경북 구미 박정희 전 대통령의 생가가 있는 곳에 ‘박정희로’를 따라 가로수는 이팝나무다. 회화나무는 예전에 서원을 열면 임금님이 하사한 나무, 학자나무다. 서울 올림픽대로를 건설할 때 가로수로 많이 심었다. 버즘나무는 모래땅에서 여름 가뭄을 이기지 못하고 말라 죽었다. 회화나무의 식재에 성공하면서 강남구 압구정역에서 갤러리아 백화점 구간, 서초구 반포대로, 마포구 서강대로엔 회화나무가 가로수로 초여름을 장식한다.

회화나무는 언뜻 보면 아카씨나무와 비슷하다. 그러나 가시가 없고 잎은 좀 작다. 최근 가로수로 많이 심는 메타세쿼이아는 낙우송과 비슷하게 생겼지만 낙우송은 잎이 어긋나게 달리고, 메타세쿼이아는 잎이 마주나게 달린다. 서울 가로수는 은행나무(40.3%), 버즘나무(25.7%), 느티나무(11.3%), 벚나무(9.2%)가 주를 이룬다.

아직은 이팝나무, 회화나무, 메타세쿼이아는 2~3%에 불과하다. 그런데 전국현황은 지방마다 벚꽃축제에 열을 올리며 축제 유치에 벚나무를 가로수로 대거 심고 있어, 벚나무가 1위요, 나머지는 분포가 비슷해졌다.

회화나무에 연한 노란 꽃이 피면 성급한 사람들은 가을준비를 하였다고도 한다. 수많은 꽃, 나무 전체를 우윳빛으로 물들인다. 다른 나무들은 열매 맺어 살찌우고 익어갈 때 꽃을 핀다. 그 모습 대기만성(大器晩成), 수많은 꼬투리, 씨앗은 풍성한 성공의 열매로 비유되었다.

열매는 팥꼬투리처럼 길고 볼록볼록 튀어나온 모양은 염주를 닮았다. 콩과 식물 그 꼬투리를 열면 팥알 같은 씨앗이 3~5개 들어있다. 가을이 깊어 서리 내릴 때 시들어 간다. 떨어질 때는 깃꽃모양으로 달려있던 작고 긴 타원형의 잎사귀가 하나씩 떨어져 땅에 깔리면서 지면(地面)은 녹색 카펫을 깔아 덮은 듯해진다. 잎사귀도 꽃잎처럼 떨어져 발에 짓밟히며 사라진다. 가로수 회화나무 잎사귀는 가을 찬 빗물에 젖어 서러운 이별을 고한다.

회화나무 어린가지는 녹색을 띄우고, 더 오래 자란가지는 잿빛이다. 더 굵어진 가지는 거칠게 갈라진다. 그러면서 거대줄기로 자란다. 천년을 사는 나무 회화나무는 은행나무, 느티나무, 팽나무와 함께 4대 장수목으로 꼽힌다.

느티나무와 팽나무는 우리의 자생수종(自生樹種)이다. 회화나무와 은행나무는 중국원산이다. 우리 곁에 전래된 연대는 불확실하다. <삼국사기>에서는 성(城)이 함락되자 백제의 해론이 회화나무에 머리를 받고 죽었다는 기록이 나오는 것을 보면 벌써 그 이전에 우리 곁에 전래된 나무가 아닌가 미루어 짐작하게 하는 유서 깊은 우리나무가 되었다.

지는 꽃이 아름다운 나무, 장마가 끝날 무렵 서서히 꽃이 벙글어지기 시작하면서 점점 연노란 꽃송이를 더하다가 절정기 지나면서 떨어진다. 작은 꽃잎이 지면을 하얗게 물들인다. 쓸어도 쓸어도 한밤자고나면 또 그만큼 땅에 깔려있다. 밟고 지나가기 아까울 정도로 가련한 꽃이다.

시들어 떨어지는 게 아니라 젊음을 송두리째 버리는 열정의 꽃, 그래서 미련을 두지 않는 꽃이다. 계절이 바뀌듯 여름을 보내고 가을을 맞이하는 아쉬운 꽃이다. 중국에서는 회화나무는 귀한나무로 친다. 공자를 모시는 대성전(大聖殿)앞에 심는 나무이기 때문이다.

대성전에는 측백나무, 은행나무, 회화나무를 심어 천년 괴목으로 자랐다. 우리도 예외는 아니었다니 회화나무 사랑은 역사가 길다. 조선의 500년 통치이념은 유교였고, 문묘(文廟)에는 은행나무, 회화나무를 심었다. 은행나무는 천연기념물 회화나무는 거목으로 컸다. 모두 보호책이 있어 그 결과로 오늘에 전해졌다.

중국의 주나라는 회화나무를 조정의 상징목으로 심어 삼정승이 정사를 보게 했다. 그래서 전통적으로 회화나무는 입신양명의 표상목이 되면서 삼공구경(三公九卿)이 집무하는 곳에 심는 나무, 그곳에 다가가기 위한 학문의 길은 ‘괴문극로’(槐門棘路)라 하게 되었다.

황제와 군왕이 정사를 돌보는 궁궐은 회화나무가 있는 큰집이란 뜻으로 괴신(槐宸)으로 부르게 되었다. 회화나무 꽃이 필 때 치르는 진사시(進士試)를 괴추(槐秋)라 불렀고, 초가을로 접어들 때 관리가 되기 위해 치르는 예비시험은 회화나무 꽃에 빗대어 지칭한말, 시험장으로 가는 길은  괴로(槐路)로 불렀다.

옛날 중국 주나라에서는 묘지에 심는 나무도 엄격하게 구분하여 심었다. 왕릉에는 군왕을 뜻하는 소나무를 심고 종친의 묘에는 측백나무를 심었다. 당상관이상 고급관리엔 회화나무, 학자의 묘엔 모감주나무, 일반백성의 묘엔 포플러를 식재했다. 그러고 보면 회화나무는 낙엽수로는 최고의 자리에 올라 귀한 대접을 받은 나무였다.

남가기(南柯記) 또는 남가태수전(南柯太守傳)에 전하는 책 속에 당나라 순우분은 괴안국에 초대받아 잘 지내다가 문득 깨어나니 꿈이었다는 이야기다. 꿈에서 깨어난 순우분이 기대어 잠들었던 회화나무를 베어내보니 개미 소굴이었다. 회화나무는 입신양명을 염원하는 이상적 나무, 피안의 세계로 가는 지표로 삼게 하였다.

서원, 향교에 회화나물를 심고, 사대부의 뜰에 회화나무를 심는 것은 관상 가치만이 아니라 나무가 간직한 성정이 학문, 출세를 뜻한다는 선호사상이었다. 회화나무는 선비가 진리를 찾도록 길잡이가 되어준 고마운 나무다. 회화나무 아래에서 관리의 첫발을 디디고 진사시 치르듯 고관이 관직에서 물어나면 향리로 돌아가 기념으로 회화나무를 심는다.

퇴직하는 관리에게 후진들이 회화나무 묘목을 선사하는 풍습은 관습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회화나무는 자원가치도 크다. 희고 깨끗한 심재는 다갈색, 단단하고 결이 곱다. 고급가구재와 불상 등 조각품 제작에 널리 쓰인다. 회화나무는 콩과 식물이다. 뿌리혹박테리아의 작용으로 유기질 적은 척박한 땅에서 질소를 고정한다. 새로 조성한 땅에 이로운 나무다.

회화나무는 가로수로 서울 인사동길, 강남구 압구정역에서 갤러리아 백화점구간, 서초구 반포대로, 마포구 서강로의 아름다운 가로수다. 회화나무 즐기는 제멋대로 뻗어 나가는 성질이 있다. 그 모습은 자연스럽다. 학문에 개성 있고 창조적이며 개성이 뚜렷한 성정을 닮았다. 학문의 상징, 지혜의 상징, 학교 교정에 심어 회화나무아래서 미래를 꿈꾸고 사회, 국가에 이바지하는 인재를 배출하는 나무로 키워나가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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