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남쪽을 동서로 나누는 소백산맥의 끝머리에 크게 솟구친 지리산의 서남부 전남 구례군 마산면 황전리 화엄사에는 독특한 생김을 자랑하는 석탑, 석등의 중후한 건축미를 자랑하는 조선 중기의 건축물 각황전(覺皇殿), 도량에 스며있는 신비한 전설 등 볼거리와 이야깃거리가 풍성한 곳으로 소문나 있다. 문화유산의 보고와 함께 이 가람에는 화엄사상이란 고아한 정신이 흐르고 있다.

화엄사는 삼국통일 전 신라 진흥왕 5년(554)에 인도의 승려 연기조사(緣起祖師)가 창건했다. 그의 모습은 경내 석등을 이고 있는 석상의 모습에 남아 지금까지 전해져 내려온다. 신라 문무왕 10년(670)에 신라의 의상대사(義湘大師)가 화엄교학을 전파한 10개 도량 중 하나로 중창하였다.

불교 경전 중 으뜸은 <화엄경>과 <법화경>이며 <화엄경>은 <법화경>보다 진리가 깊고 넓다고 한다. 모든 것을 포괄하며, 포괄된 그 하나하나에 제가끔의 개성을 갖도록 하는 원융무애(圓融無碍)경지인 화엄의 세계, 부처님 말씀 가운데 가장 궁극적 이치가 담겨져 있으며, 부처님이 깨달으신 경지가 그대로 드러난 진리가 화엄정신이다.

화엄사는 부처님이 36세 때에 보리수 아래서 설교한 <대승화엄경>의 이름을 딴 것이다. 화엄사는 크지만 수수한 절이다. 우람한 일주문 지나, 불이문ㆍ금강문ㆍ천왕문을 차례로 넘어 강당으로 쓰이는 보제루 앞에 서면 대웅전(보물 제299호) 지붕을 맞대며 멀리 지리산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 형제봉과 원사봉 사이의 아담한 봉우리를 배경으로 의젓하게 앉아 있는 고아한 전각과 문화재들이 피워내는 시간의 향기는 순례자들의 가슴에 은근히 스며드는 듯하다.

마당에는 오층석탑 2기(보물 제132호, 제133호)가 동쪽과 서쪽에서 마주 서있다. 서쪽 오층석탑에서는 1995년 부처님 진신사리가 발견되었다.

마당 너머 자연석을 높게 쌓아올린 석축 기단 위에는 조선 중기의 건물인 대웅전과 각황전이 자리 잡고 있다. 특이한 것은 기단은 신라인 작품이고 위로 오르는 계단은 백제의 양식이란 점이다. 계단 따라 올라가면 석등(국보 제12호)과 각황전이 서로 어우러져 웅건하고 준엄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마당에 닿게 된다.

각황전은 정면 7칸에 2층으로 팔작지붕을 얹은 건물이다. 단청 없는 빛바랜 나무색 그대로다. 석등엔 귀꽃이 크게 솟아있다. 석등은 불꽃을 연상시킨다. 변화무쌍한 지리산 날씨, 대웅전 석등 그리고 각황전은 서로 어울리면서 빛의 각도와 밝기에 따라 경내는 우아하고, 근엄하면서 화려하게 분위기를 바꿔 연출한다. 대웅전은 긴 추녀가 그려내는 곡선이 날씬하다고 표현하는데 조선 인조14년(1636)에 중건한 고건물이다. 화엄의 도량에 비로자나불을 모셨다.

각황전은 임진왜란 때 타버린 장륙전(丈六殿)을 조선 숙종28년(1702)에 다시 중건한 건물이다. 숙종으로 건물 이름을 내려받았다.

부처님의 몸을 장륙금신(丈六金身)이라 한다. 신라 때 석가여래의 모습을 한 장륙의 금색불상을 모시는 신앙이 있었다 하였다니 장륙전이라는 이름은 여기서 비롯된 듯하다. 원래 장륙전은 3층이었고 사방 벽면에 화엄석경(華嚴石經)이 새겨져 있었다 하며 임진왜란 때 소실되고 석경도 파괴되어 그 파편 조각만이 영전(影殿)에 보관되어 있다.

각황전은 연임군(조선 제21대 영조)과 그의 어머니 숙빈 최씨가 대시주가 되어 지은 건물이다. 웅장하면서 단아한 멋을 풍기는 각황전 중건과 관련하여 전해오는 이야기도 신비롭다. ‘벽암 스님의 제자였던 계파스님은 스승의 위촉을 받들어 장륙전 불사를 시작했다. 그러나 화주할 길이 막연하여 걱정이 많았다. “모기가 산을 짓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바닷물을 퍼내 구슬을 취하는 일은 뜻만 있으면 이룰 수 있을 것이다. 큰 불사를 이룸에는 몸과 마음이 다하여 먼저 부처님께 가호가 있기를 빌자.”라는 서원을 세웠다.

100명의 스님들이 대웅전에서 기도를 올렸지만 불사에 들어갈 막대한 인력과 비용을 구할 일이 막막했다. 어느날 대웅전에서 기도를 하고 있던 대사에게 비몽사몽간에 한 노인이 나타나 말했다. “내일 아침 화주를 떠나라. 그리고 맨 먼저 만나는 사람에게 시주를 권하라.”

스님은 이 계시에 따라 맨 먼저 만난 거지 노파에게 장륙전 건립의 시주를 부탁했다. 대사의 간청에 감동한 노파는 “이 몸이 죽어 왕궁에 태어나서 불사를 성취하리니, 문수대성은 가피를 내리소서.” 노파는 늪에 몸을 던졌다.

몇 년이 지나 서울에 나타난 스님은 궁궐 앞에서 ‘우리스님’하면서 반가워하는 어린 공주를 만난다. 공주는 태어날 때부터 한쪽 손을 꼭 쥔 채 펴지 않았는데 스님이 공주를 안고서 쥔 손을 만지니 신기하게도 손이 펴지고 그 안에 장육전이란 세 글자가 씌여 있었다. 거지 노파가 숙종의 공주로 환생한 것이었다. 이 소식을 들은 숙종은 계파스님을 불러 자초지종을 듣고 감격한 나머지 장륙전을 지을 수 있도록 시주하였다.

신비한 전설의 각황전 옆으로 108계단을 오르면 언덕 위에 사사자석탑(四獅子石塔:국보 제35호)과 그 앞에 석등 공양석등(供養石燈)이 있다. 연화좌 위에 웅크리고 앉은 네 마리의 사자가 연화대를 받쳐 그 위에 실린 탑을 머리로 받들고, 그 가운데서 대덕이 연꽃을 이고 있는 모양의 이 탑은 다보탑과 쌍벽을 이루는 이형탑의 걸작이란 평을 받고 있다.

석등에는 한 무릎을 꿇고 한손에 공양기를 들고 공양하는 승려의 조각이 있어 공양석등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석등 아래에서 공양기를 들고 있는 스님은 화엄사의 창건주인 연기조사이고 석탑의 가운데 서있는 대덕은 연기조사의 어머니를 형상화한 것이라 한다.

그래서 사사자석탑과 공양석등이 있는 이 언덕은 ‘효대(孝臺)’라 불리는데 왼쪽 한켠에 비스듬히 서 있는 소나무와 함께 경건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효대에 서면 아래로는 절 마당이 위로는 노고단으로 이어지는 길상봉이 빼어난 경치로 다가온다.

효대에서 되돌아 내려가 각황전 옆의 원통전 앞에 서면 네 마리의 사자가 이마로 사각석단을 받들고 있는 사사자감로탑(보물 제300호)이 있는데 흔히 ‘노주(露柱)’라고도 하는데 부처님의 감로법으로 중생들에게 청정한 지혜를 얻게하여 생사윤회에서 벗어나 연화세계로 인도하는 감미로운 탑이란 뜻이 담겨있다.

화엄사의 산내 암자로는 구충암ㆍ지장암ㆍ금정암ㆍ봉천암 등이 있다. 구충암의 천불전, 지장암의 약수와 천연기념물 올벗나무, 금정암의 각설차가 유명하다. 화엄사에서는 곡우절을 전후하여 나온다는 자작나무 수액과 차나무의 연한 순을 말린 작설차도 손꼽힌다. 민낯의 처마, 수수한 받침돌, 검박한 아름다움에 저절로 ‘합장’하게 하는 화엄사, 늙고 큰 절의 미덕은 작은 것도 아름답다. 화엄사는 크지만 수수하다. 화엄사에서 감동을 주는 것은 작은 것들이다. 작고 못난 것이 부처를 모시고 있으니 중생은 감동하게 된다.

1500년이란 긴 세월이 흐르는 동안 법당도 여러번 고쳐 세웠을 것이고 탑비도 늘어났을 게 분명하나, 옛 당우들이나 탑비는 서로 모나지 않게 잘 어울린다. 흔히 사람이 모나고 튀는 모습을 중뿔나다 하듯, 이 절은 중뿔난 사람처럼 어색하게 튀지 않는다. 큰 절이지만 화려하기보다 늙은 고승의 깁고 또 기운 누더기 옷같다. 대웅전 앞마당의 강당 보제루 받침기둥은 등글등글 잘 깎아놓지 않은 원목을 그대로 썼다. 목재와 목재의 이음새는 기둥들이 다 똑같지 않다. 목재에 맞춰 지은 건물이다. 규격화 되지 않아서 자연스러우니 검박하여 자연스럽고 아름다운이 배어 나온다.

보제루 자체는 미술관이면서 작품이라 한다. 미술관에 걸려 있는 가장 아름다운 사진은 사람이 찍은 사진이 아니다. 보제루 나무 창 밖으로 보이는 나무들이다. 창이 사진틀이다. 창 너머 기와 법당 앞 나무는 피사체다. 먼 옛날 보제루를 건축했던 목수들은 창틀을 화폭 삼아 산도 나무도 담았을 게다. 휘어진 섯까래, 자연목 보제루 받침기둥처럼 둥글둥글한 원목 그대로의 모습을 살려 얹혔다.

각황전은 2층 누각이다. 국내 최대 규모 법당이다. 대웅전보다 더 위엄있는 법당이다. 큰 법당엔 단청이 없다. 일부만 했다. 긴 세월 속에 희미한 단청 그러나 빛난다. 그래서 더 좋아보인다. 진한 단청보다 민낯의 처마가 더 감동적이다.

수수한 받침돌, 자연석을 그대로 놓아 울퉁불퉁하고 바윗돌과 마주하는 기둥도 올록볼록 자연스럽다. 바위로 쌓은 축대, 큰돌 틈새는 주먹돌로 끼워 맞췄다. 장식 없는 녹슨 문고리는 정교한 디자인이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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