칡을 한자로는 갈(葛)이라 쓴다.

서로 잘 어울리지 못하고 만나면 다투는 관계를 갈등(葛藤)이라 쓴다. 칡과 등(藤)나무는 만나면 서로 얽혀서 감아 오르기 때문에 어느 한쪽도 없다는 데서 생긴 말이다. 하지만 갈등이라는 단어와는 반대로 칡은 아무데나 잘 어우러지는 습성이 있다. 나무든, 바위든, 가리지 않고 칡은 옆으로 뻗어나간다. 억센 생명력과 환경 적응력이 뛰어나 종종 산지에서는 산림을 망치는 주역으로 비난을 받는다. 그 줄기를 잘라도 뿌리가 남아 있는 한 기운차게 되살아나 주위의 나무를 옭아매 숨을 쉬지 못하게 하기 때문이다.

나의 고향 강화군 송해면은 소나무가 지천이었다. 뒷동산 금동산은 소나무 수풀이었다. 마을 입구 재밭마루는 선조들 묘소가 있었고, 어린시절 놀이터였다. 일제 강점기 소나무 숲은 벌목공출로 사라졌다.

몇 년이 지났던가. 키 작은 떡갈나무들과 칡넝쿨이 뒤엉킨 뒷동산 숲은 풋내기 목동들의 소먹이 일터였다. 병길이 아저씨가 심심하던 차에 칡넝쿨 숲 속에 돈을 던지면 놀란 장기가 ‘기지 기지 꿩꿩’ 소리를 지르며 날아갔다. 칡넝쿨 숲을 뒤지면 꿩알 몇 개를 주어왔다. ‘기지’는 꿩의 일본어였다.

칡은 양수(陽樹)다. 그늘이 지면 살지 못한다. 숲이 우거진 산에서는 발을 붙이지 못한다. 사람이 숲을 파헤치거나 산지에 도로를 개설하기 위해 땅을 파헤치면 오래지 않아 칡이 파고든다. 처음엔 무성하게 자라지 못하다가 비옥한 토양에 뿌리를 내리면 3~5년 사이에 뿌리의 굵기가 지름 20~30cm에 이른다.

이제 산업화 물결 속에 도로망이 확충되어 서울 근처에도 절개지들이 늘면서 도로 주변이나 강가에 칡넝쿨을 자주 대하게 되었다. 칡을 제거하기 위해 칡과의 전쟁을 선포하기도 했다.
충분한 생태적 검정을 거치지 않고 동식물 집단을 이주시키면 어떤 환경 재앙이 따를지 모른다는 사실을 우리 뿐 아니라 세계 여러 나라에서 절실히 느끼는 예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처럼 골칫거리인 칡도 사실 쓰임이 많다. 칡의 줄기에서 뽑아낸 섬유로는 질 좋은 옷감을 짤 수 있다. 이제 시원한 여름 옷감으로 이용되고 고려 말에 목화 도입 이전엔 삼의 껍질로 짠 삼베와 갈포를 즐겨 사용했는데 삼은 외래 도입식물이었고, 갈포는 우리의 순수 자생종이었다. 칡에서 뽑아낸 섬유는 노끈, 밧줄, 종이를 만들어 썼다.

<시경(詩經)>은 아주 오래 전의 노래 모음집이다. 그 속엔 사람이 살아가면서 겪는 구구절절한 이야기가 녹아 있다. <시경>은 본래 편자 미상의 작품집이지만 심영환이 엮은 책 속의 그 첫머리에 있는 ‘칡덩굴’, ‘갈담)’을 옮겨본다.

‘칡덩굴이 뻗어가네 골짜기로 뻗어가니 그 잎사귀 무성해라 꾀꼬리도 날아와서 덤불숲에 모여 앉아 꾀꼴꾀꼴 울어내네. 칡덩굴이 뻗어가네 골짜기로 뻗어가니 그 잎사귀 무성해라 잘라다가 삶아내어 굵고 가는 베를 짜서 옷 해 입고 좋아하네. 여스승께 고하리라 친정간다 고하리라 막 입은 옷 내어 빨고 나들이 옷 내어 빨고 모두 내어 빨아 놓고 부모 뵈러 친정가리.’

이 글은 시집간 부인이 친정으로 돌아갈 때를 노래한 시다. 여 스승은 옛날 집안에서 여자의 행동거지를 교육하던 오늘날의 가정교사 같은 존재이다. 여 스승이 있을 정도로 부유하고 귀한 집안이면서도 검소한 생활을 했다는 것을 강조한 시이기도 하다.

칡덩굴은 청빈과 화합을 뜻하는 덩굴이다. 옛 고승들은 갈포를 입고 갈립(葛笠)을 쓰고 몸과 마음을 닦았다. 방한복이래야 한지로 지은 내복을 부드럽게 구겨서 속에 껴입는 정도였다. 사실상 갈포의 이용은 더 먼 옛날로 거슬러 올라간다. 오(吳), 월(越) 두 나라가 서로 경쟁관계에 있을 때 어느 여름 연회에 참석한 월왕이 좋은 갈옷을 입고 나타났다. 이것을 본 오왕은 나라 안 모든 백성을 산으로 보내 칡을 베어 좋은 갈옷을 짜 바치도록 했다.

기원전 2세기 때 유안의 <회남자>엔 ‘천자가 칡베로 옷을 해 입었다’는 기록을 남겼다. “군자가 목욕할 때는 목욕을 할 때는 두 가지 수건을 쓰는데 상체는 부드러운 칡베를 쓰고 하체는 거친 것을 쓴다고 했으니 황제라고 해서 함부로 사치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라 한다.

칡 줄기를 베어 말리면 생활용구의 재료가 되어 광주리, 바구니를 만들고, 굵은 것으로는 병아리 둥지나 닭장을 엮었다. 통나무 엮어 뗏목을 만들어 썼다. 칡덩굴 위장재로 멧돼지 사냥 물고기 사냥에도 썼다.

갈필(葛筆)은 목수들의 작업도구였다. 움막집도 칡덩굴이 재료였다. 칡덩굴 움막집은 갈호(葛戶)라 한다. 갈근(葛根)은 예로부터 춘궁기를 이겨내는 구황식(救荒食)이었다. 칡뿌리를 절구에 찧어 즙을 짜 가라앉히면 앙금이 생기고, 물을 자주 갈면서 즙을 가라앉히면 흰색앙금이 된다. 이 갈분으로 떡, 수제비, 전, 국수를 해 먹는다. 조선 세종 때 편찬한 <구활촬요>에는 칡 전분을 만드는 법이 자세히 기술되어 있다.

“츩부리를 정히 씨셔 겁질 벗기고 줏두듸려 그 건지를 업시하고 물에 갈안치와 마르거든 그 가루를 쌀에 범으려 죽쑤어 먹으면 됴흐니라. 간성 츩부리가 가장 됴흐니. 녹두가루를 석거 면을 맹글면 능히 목말으지 안이하니라”

칡은 뿌리뿐만 아니라 잎은 잎대로 말린 다음 갈아 분말을 만들어 두고 요리 첨가제로 쓴다. 칡즙이 정말 숙취에 좋을까? 미국에서도 칡에 관한 요리책이 나와 베스트셀러가 되기도 했다. 어린시절 소먹이 꼴로 칡 줄기를 베어오면 ‘소가 오늘은 제 생일인줄 알겠구나.’ 어머니 말씀이셨다.

조선 태종 이방원은 혁명에 앞서 고려조의 충신 정몽주를 희유한 ‘하여가’에서도 칡이 보인다.

이런들 엇더하며 저런들 엇더하료 / 만수산 드렁츩이 얼거진들 엇더하리

월정사(月精寺)를 창건한 자장법사와 츩에 관한 이야기도 흥미롭다.

칡이 산림에 피해를 주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아무리 번식력이 왕성한 칡이라 해도 그늘에서는 살지 못한다. 숲을 파괴하여 햇볕이 잘 들면 칡은 양지를 좋아하니 번성하기 시작한다. 기존의 숲을 파괴하지 않으면 쉽게 번식할 수 없다.

연보라색 커튼처럼 피는 꽃송이를 지닌 등나무 이야기로 옮겨보자. 등나무는 콩과에 속하는 낙엽성 덩굴식물이다. 대부분 학교나 공원 등에 그늘을 만들기 위해 일부러 심는 경우가 많다. 중부 이남의 산과 들에서는 저절로 자란다. 덩굴식물이기 때문에 다른 나무나 지지대를 감으면서 올라가는 특징이 있다.

흔히 지주목을 오른쪽으로 감고 올라가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왼쪽으로 감고 올라가는 나무도 있다.

꽃은 5월에 잎과 함께 연한 보라색으로 피고 밑으로 처지면서 달린다.

꽃에서 나는 향기가 좋다. 꽃 중앙부에 노란색 무늬가 있다. 꽃이 지고 나면 부드러운 털로 덮인 꼬투리가 주렁주렁 달린다. 원줄기가 굵어지면 꿈틀거리는 듯한 모습이 인상적인데 알맞게 자란 등나무 줄기는 지팡이 재료로도 쓰인다. 필자는 정원 한 구석에 등나무를 심어 가옥 벽면을 따라 옥탑에까지 올렸던 등나무의 위력에 놀라 베어 버렸던 경험이 있다. 출근길 개나리 동산, 달맞이 근린공원 암석절개지 따라 식재해 놓은 등나무들이 방향을 이탈하여 개나리를 뒤덮고 있다.

경주 현곡면 오류리에 있는 팽나무를 감고 자라는 등나무들은 슬픈 전설을 갖고 있다. 신라시대 이 마을에 예쁘고 착한 자매가 살았는데, 둘이 사모하는 이웃집 청년이 전쟁터에 나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함께 연못에 몸을 던졌다. 그 뒤로 연못가에는 등나무 두 그루가 자라나 청년의 환생인 팽나무를 감고 자라기 시작했다는 전설이었다. 이 전설 때문에 이 등나무 잎을 베게 속에 넣거나 삶아서 물을 마시면 부부금슬이 좋아진다고 해서 이곳을 찾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부산 금정산 범어사 등나무 군락은 1966년 천연기념물로 지정됐다. 수많은 등나무가 소나무와 팽나무를 감고 올라가는 것을 볼 수 있다. 등나무 군락을 이루는 것은 보기 드문 일이다. 등나무는 다른 나무들을 감고 자라는 달갑지 않은 점도 있지만 아름다운 꽃과 향기, 시원한 그늘을 제공하는 고마운 나무다.

등나무 그늘은 학교의 상징으로 보았다. 등나무 그늘은 요즘처럼 교실에 에어컨이 없던 시절 운동장에서 뛰어 놀다가 땀을 식히며 숨을 돌리고, 낮은 목소리로 친구들과 고민을 주고받던 장소였다.

이유미 국립수목원장의 저서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나무 백가지>에는 “등꽃이 피는 계절에 등나무 곁에 서면 나른한 봄기운에 꽃향기가 묻어난다.”고 했다. 은은하고도 깔끔한 등꽃향기의 뒷맛은 진하고 달콤한 아가씨 꽃향기와 사뭇 다르다.

청빈과 화합을 뜻하는 칡, 지팡이 나무 오월의 보라색 꽃으로 시인 묵객의 단골손님은 어찌하여 일이 까다롭게 뒤얽히어 풀기 어려운 형편을 이르는 말, 갈등(葛藤) 그리고 서로 불화하고 다툼으로 갈등이 생기는 표현의 나무로 회자될까. 사전적으로는 두개 이상의 요구가 동시에 존재하고 그 유인성(誘引性)의 강도(强度)는 거의 같으나 방향이 상반(相反)하여, 개체가 그 위치로부터 움직이는 것이 곤란한 상태, 갈등상태(葛藤狀態)란 설명이다. 갈등은 불화다. 남을 배려하는 근본 마음이 갈등을 벗어나는 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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