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둘레길 4코스는 대모·구룡·우면산 코스다. 야생화 향기 가득한 숲길 4-1코스는 수서역~윤봉길 의사 기념관이다. 4-2코스는 대모산-우면산 코스다. 윤봉길 의사 기념관에서 사당역까지다.

양재시민의 숲은 경부고속도로 진입로에 있다. 1986년 세워졌다. 서울 끄트머리 양재시민의 숲, 강남에서 가장 크다는 숲이다. 윤봉길 의사 기념관, 놀이터, 맨발공원, 자연학습장, 실내외 테니스장 등 자잘한 즐즐길거리들이 많지만, 눈길을 끄는 것은 단연 숲이다. 소나무, 느티나무, 단풍나무, 칠엽수, 잣나무등 25만여 그루의 나무가 울창하다. 발길 닿는 대로 걸으면서 ‘서울의 여름’을 만끽할 수 있는 곳이다. 카메라를 챙기지 않으면 후회할 것이란다.

2003년도의 시민의 숲 탐방안내서에는 서울 지하철 3호선 양재역에서 내려 성남방향 7번 출구를 통해 나와서 성남방향 마을버스나 시내버스를 타고 언남고교나 양재꽃시장에서 하차하라 했다. 양재역에서 걸어도 20분 거리라고 쓰여 있다. 이젠 강남-정자 급행 전철을 타고 ‘양재시민의 숲 역’에서 내린다. 다음역이 청계산 입구역이니, 서울의 끄트머리가 아니다. 이젠 도심 속 귀중한 시민의 건강 힐링의 숲이다.

양재천과 여의천, 경부고속도로를 따라 산책길은 얼려있다. 4.8㎞. 고속도로 옆이다. 시끄럽다. 그것이 약간 흠이다. 그러나 한적한 산책길을 선호하는 연인들에겐 인기 상한가다. 항시 무거운 DSLR을 메고 다니는 심교수, 아! 서울에 이런 곳이 있었나. 다시 한 번 와야겠는데! 야! 이친구야 우리 모두 두 번째인 걸!

그때는 흙길 산책로였잖아. 가을이었고. 숲 개장 초기에 산책길 stamp받던 기억이 나지 않아 이제는 빽빽하지도 느슨하지도 않은 숲 속에 나무들이 사람 키 하나 만큼씩 떨어져 서있고 제 키대로 뻗은 독일가문 비나무와 전나무가 한 아람드리로 자나라 하늘을 가리고 서 있다.

가을에 다시가면 노란 은행잎, 붉은 단풍잎, 푸른 잔디의 순도100%의 원색을 볼 수 있을 듯싶다. 공원 중앙에 놀이공원이 있어 작은 연못, 분수, 미끄럼틀에 그네가 설치되어 있다. 맑은 물에 자갈 깔린 호수바닥에는 애들이 맨발로 뛰어 들어갈 자세다.

윤봉길 의사의 동상과 매헌기념관을 맞이한다. 1932년 상하이 홍구공원에서 도시락폭탄을 던진 우리의 독립운동가 윤봉길 의사. 매헌은 그분의 호다. 그의 기념관에는 유물과 독립운동 자료 등이 전시되어있다.

맨발공원은 이채롭다. 자갈, 원목, 스테인리스 등 주제별로 꾸며놓은 140m의 지압코스는 건강다짐 코스다. 2차선 도로로 나위어지는 반대편 숲에는 각종 기념탑들이 들어섰다.

6.25전쟁 당시 참전한 백마부대 충혼탑, 대한항공 858기 희생자 위령탑, 삼풍백화점 사고희생자 위령탑이 있다.

유격백마부대 충혼탑의 위령비 글귀를 옮겨 싣는다.
 
1950년 10월 38도선을 넘어 북진하였던 UN연합군이 중공군의 인해전술에 밀려 철수하자 평안북도 정주군과 박천군 일대에서 치안 활동을 하던 청년들과 오산학교 학생들이 그해 11월 22일 정주군 갈신면 번저리에서 유격백마 부대를 조직하였다.

김응수를 부대장으로 한 대원 2,600여명은 군번도 계급도 없고 무기 등 변변한 지원이 열악한 상황에서도 매도, 철산반도, 월사리, 대화도, 신미도, 압록강, 청천강하구 등에서 공산군과 500여회의 교전으로 적 사살 3,000여명과 철도, 터널, 교량 기타 주요시설 파괴 등 북위 40도선까지의 넓은 지역에서 많은 전과를 거두어 UN연합군의 정규작전에 크게 이바지하였다.
 
이 기간 중 552명의 고귀한 희생이 있었던 바 생존대원들은 1952년 백령도에서 추도식을 올린 것을 시작으로 각처를 전전하며, 추도행사를 하다가 1992년 평안북도 유지들의 뜻과 성금을 모으고 노태우 대통령이 탑명(塔名)을 휘호하여 여기 양재시민의 숲에 충혼탑을 세워 젊은 반공 의병들의 공과 넋을 기리게 되었다.

“길가는 손들아! 잠시 걸음을 멈추고 스무 살 안팎 젊은 목숨을 반공구국에 기꺼이 바친 뜻을 새기고 넋을 기려다오.”

1995년 6울 29일 희생된 502명을 기리는 삼풍위령탑은 숲의 가장 끄트머리에 있다. 비석 앞에 놓인 꽃들이 싱싱하다. 최근에 누군가 다녀간 모양이다. ‘사랑하는 딸아, 너무너무 보고 싶고 그립구나.’라고 쓰인 리본이 가슴을 울린다.

강남의 허파 시민의 숲. 30여만 그루의 나무들이 토해내는 녹음 속 색깔잔치가 현란하다. 연방 카메라를 눌러대는 연인들 한여름의 자연 에어컨 속을 쉽사리 떠나지 못한다.

우면산(牛眠山·293m)은 서울특별시 서초구, 경기도 과천시 경계에 있다. 서울 서초구 우면동, 서초동, 양재동 등지의 도심에서 쉽게 오를 수 있는 산이다. 우면산의 옛 이름은 몇 개 된다. 갓바위가 있는 산 ‘관암산(冠岩山)’, 산 모양이 도마를 닮았다하여 ‘도마산’, 활을 쏘던 사정(射亭)이 있다하여 사정산(射亭山) 그리고 수정을 캐낸 산이라 수정봉(水晶峰)으로도 불렀다.

우면산은 동쪽에 양재동, 서쪽으로 사당역과 남태령의 끝과 연이어 관악산에 연결되고 남쪽으로는 우면동, 중동마을 형촌마을과 만난다. 북쪽은 서초동, 방배동 남쪽과 잇대있다. 교통통로 상 서초동에서 과천시로 오고가는 사람들이 돌아서 1시간정도 걸렸지만, 우면산 중도를 완전히 허물어 서초에서 우면동은 갈수 있게 되었고 2004년 두 번째 공사를 시행. 우면산관통공사로 터널이 생기면서 서초-과천은 5~10분이 걸린다.

경부고속도로가 생기면서 원래 우면산 자리에도 양재자동차시험장, 서울인재개발원이 들어섰다. 우면동에 예술의 전당, 방배동쪽 우면산 지점에는 서울시교육연구원이 들어서고 방배체육공원이 있다. 우면산의 서쪽 끝과 남태령 사이에 우면산과 관악산이 연결된다.

우면산은 293m의 낮은 산이다.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서리플 근린공원에서 남쪽을 쳐다보면 산 모양을 어림할 수 있었다. 마천루 주상복합 건물들이 우면산을 막아서서 시야를 삼켜버렸다. 우면산 북쪽 기슭은 공공시설과 H형 아파트 단지들이 잠식했다. 도시에 에워싸인 ‘소가 졸고 있는 산’ 우면산은 빌딩 바다속 푸른 숲의 섬이 되었다.

서리플근린공원은 옛 삼풍백화점 자리에 아크로비스타 주상복합건물, 우면로 고개 마루엔 조선 세종의 넷째아들 임영대군 세거지 비석이 서 있다. 우면산 남쪽 기슭에는 청동기시대 유적지 석묘가 있다. 이곳은 우리 조상들의 오래된 삶의 터전이었다. 지금 우면산 북쪽 기슭에는 이(李), 상(尙) 그리고 왕(王)씨 후예들이 살고 있다고 한다.

우면산 등산로 입구는 남부순환로 변에 모여 있다. 도심을 뚫고 달리는 경부고속도로 서초IC 못 미쳐 서초약수터, 예술의 전당 옆 대성사(大聖寺), 임광APT 건너편 유점시입구, 공무원 연수원 옆 범바위 입구 그리고 서쪽엔 지하철 4호선 남태령 역등이 주요 등산로 들입목이 된다. 보통 걸음걸이로 30~40분 올라가면 정상에 이른다. 본래 우면산 정상을 공군부대 주둔지여서 일반인들의 접근이 제한되어 있다.

모든 등산로는 우면산 8부 능선에서 대부분 만난다. 그래도 작은 길을 모두 합하면 20여개가 된다. 주말엔 5,000여명의 등산객이 우면로와 남부순환로 따라 승용차의 행렬이 멈춰서 있다. 우면산에는 경사따라 1시간 이상 걷는 능선이 기다리고 있다. 대성사 쪽에는 219개 계단의 깔딱고개가 있다. 계단을 밟고 숨을 몰아쉬고 왼쪽경사길 20여개를 올라가면 소망탑이 반겨주고 정상에 선다. 정상에 서면 청계산, 북한산, 양재, 과천이 지척으로 잘 보인다.

소망탑은 정상탑이다. 높이 3~4m, 그 아랫부분 지름은 약 2m, 삼각뿔 형태를 닮았다. 소망을 아뢰며 정성스럽게 돌멩이를 얹고 무사안녕, 소원성취를 빈다. 남쪽기슭엔 경사 급한 돌길도 있다.

서초구는 우면산의 양호한 자연 상태와 참나무 군락지를 활용하여 도심근교 ‘도시림’의 산림문화를 주제로 도심 속 자연학습, 생태보전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우면산 자연생태공원을 조성했다. 9만 6398평의 생태공원, 탐방로 1320m를 둘러보는데 한 시간쯤 소요된다.

숲, 나비, 야생조류, 수서식물, 곤충, 풀꽃, 계곡과 염료식물 등 15개 테마공원은 나무 데크 관찰로 따라 연못, 제방에 서면 형촌마을, 성촌마을이 가까이 다가선다. 우면산 자연생태공원은 두꺼비 보호마을로 지정되었다. 나비관찰원 지나면 참나무 숲이다.

겨울엔 찬바람이 불면 수선떠는 참나무 6형제 수풀은 산책공원이요, 능선등산길이다. 항시 젊음이 약동하는 산책길에선 새벽을 여는 등산객들의 아침 구호소리가 요란하다. 낮은 산이지만 정결한 약수터는 15개에 이른다. 물맛도 좋다. 대성사 절마당 키 큰 나무들 도열 속 새벽 예불의식은 엄숙하다.

대성사는 백제 제 15대 침류왕 때 백제에 불교를 전해준 동진의 마라난타 대사가 설범하러 백제에 오는 동안 음식과 기후가 맞지 않아 수토병에 걸렸는데 다행히 우면산 생수로 병을 고쳤다고 한다. 그 후 우면산 기슭에 대성초당을 세우고 머물렀다고 전하며 우면산 대성사는 백제불교의 성지가 되었다고 한다.

근대에 이르러 백성용 스님이 한용운대사를 앞세워 천도교 손병희 교수, 기독교 길선주 목사, 기독교 이필주목사 등과 교류하여 세종교가 합심해서 민족 중혼과 종교 중흥을 도모한 성지로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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