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정신없이 내달리며 얻은 풍요, 효율, 속도에 불안을 느끼게 되었고, 기술혁명 이후 속도효율이 신(神)처럼 모셔졌고 자동차와 고속열차를 선호하던 현대인이 느린 걷기를 선택하였다. 세계 3대 Trail은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 캐나다 West coast trail, 그리고 미국의 존뮈어 trail 이다. 걷기는 이제 여행패턴의 변화를 선도하고 있다.

예수의 제자 야고보의 ‘산티아고 가는 길’, 파올로 코엘료의 소설 ‘순례자’의 영향을 받아 산티아고 가는 길은 세계최고 여행지가 되었다. 사단법인 ‘제주올레’의 서명숙 대표는 산티아고 순례길 걷기를 끝내고 제주 옛길을 복원하였다. 제주의 올레길, 지리산 둘레길은 우리 걷기열풍의 대명사격이다. 지자제들은 걷기 좋은 길 만들기 붐을 일으키고 있다. 올레길과 지리산길은 흥행에 성공하였다. 다시 걸어보고 싶은 길이 되었다. 사람들은 걸어서 행복하다고 말한다.

건강, 삶의 평화를 위해 걷고 또 걸어 자연을 음미하고 세상이해타산을 정화한다. 걷다보면 내면의 소리를 듣고, 순례자가 되어 마음을 비우고 나눔, 베품, 자유를 누리면서 길손이 되는 여행이다. 걷기는 자신을 세계로 열어 발, 다리, 몸으로 걸으면서 자기 실존을 느끼고 행복한 감정을 찾는 여행이다.

세계로 눈을 돌려보면 영국은 4000여Km의 생태 탐방로가 있고 미국은 8만Km의 트레일이 있고, 일본은 2만천여Km의 생태 탐방로 8개를 가지고 있고, 뉴질랜드는 국토의 북쪽에서 남쪽으로 도보용도로 1200Km가 있다. 미국 존무어 Trail은 호수 30여개를 연결 30일 걷기코스이며 그 길이는 358Km이다.

우리는 산악강국이나 산길훼손, 자연생태계의 교란은 이제 방치해서는 안 될 단계에 이르렀다. 우리는 산과 산림 이용에만 정신이 팔려 혜택을 돌려주는데 너무 인색하였다. 백두대간, 정맥능선종주, 정상정복보다는 사람과 자연이 공존해야하는 새 시대로 진입하였다.

저탄소, 녹색성장 운동은 트레일 장려에 두었다. 환경부는 문화생태 탐방로라는 새로운 개념으로 접근하고 산림청은 국유림지역 옛길, 아름다운 길을 발굴 조성에 나섰다. 이제 걷기라는 원초적 공간이동수단은 건강, 행복을 위한 특별여가활동으로 진화하였다.

인간은 걸어 다녔는데 언제부터인가 다시 걷자고 야단이다.

등산은 반드시 정상정복에 있지 않다. 이젠 산책 같은 가벼운 산행을 더 선호하게 됐다. Trekking이다. Trekking의 유래는 옛날 아프리카 소달구지 집단이주에서 나왔고, 오지탐험 같은 모험성 나들이에 가깝다. 레저수요가 급증하면서 레저트렌드로 급부상하고 있다. 산에 대한 관심은 정상정복이 아니며, 그 자체는 일반인에게 부담이 되니 정상 고집 않는 산행코스를 개발하여 산행의 주요 테마화, 재미있는 코스는 트레킹코스로 만들어 재미를 더한다.

생태체험, 문화유산답사를 통해 다양한 흥밋거리가 필요하고, 가족단위 일반인에게 적당해야 된다.

우리나라 최초의 도보여행, 트레킹의 근원은 신라시대 화랑도 수행에서 그 근원을 찾을 수 있다. 일연스님의 <삼국유사> 속에는 화랑의 이야기가 흥미로운 테마다. 인재들을 모아 함께 생활하게 하면서 그들의 행동과 근본을 관찰하여 장차 나라를 위하여 일을 할 수 있는 인재등용에 큰 뜻을 두고 서로서로 도리와 의리로써 충고하면서, 노래, 음악을 즐기며 생활하게 하였다.

여행은 성품을 판단하는 가장 좋은 판단기준이 아닌가. 인간에겐 춤과 노래는 집단의 강력한 협동과 상호작용을 눈뜨게 하는 놀라운 효과를 가지고 있다. 함께 노래하고 춤을 추면 연대감을 느끼게 하며 갈등이 해소되고 단결을 불러일으킨다.

화랑도의 시동이다. 정직과 간사함을 구분하여 인재를 조정에 추천하였고 어진 재상과 충신이 양성되었다. 신라 선덕여왕에서 태종 무열왕에 이르는 3대 왕조에선 200여명의 화랑이 배출되었다.

조선의 사대부들의 꿈은 산천유람이었다. 산천유람은 좋은 책을 읽는 것과 같다고 하였다. ‘견문이 넓은 사람일수록 안목이 좁은 사람이 없다.’ 주자(朱子)의 말씀이다. 천천히 걸으면 세상의 크고 작은 것을 더욱 더 자세히 볼 수 있다 하였으니 세상편력을 중요시한 이유가 그곳에 있었다.

마음 다스림에는 걷기가 제일 좋은 운동이라면서 ‘나는 걸을 때만 명상에 잠길 수 있다. 걸음을 멈추면 생각도 멈추고 나의 마음은 언제나 나의 다리와 함께 작동한다 술회했다.’

‘한발 한발 걸으면서 온갖 사물을 만나고 내가 나를 만나는 것이 걷기의 매력이다. 책속에서 논리적 지식을 습득하고, 탐방에서는 실용적 지식을 얻을 수 있으니, 고생스러운 여행을 겪어야 하며 수많은 갈림길을 만나야 한다고 했다.’

오늘 우리는 폐쇄공간, 사이버세계에 파묻혀 호연지기, 도전정신, 따뜻한 감성을 대자연의 품에서 얻지 못하고, 나약하게 성장하고 있다. 신라 화랑도의 호연지기는 지난 20세기 초 독일의 Wandervogel 철새국토순례, 청소년 걷기운동에 다름 아니다. 1909년 알테나성(城)을 간이 숙박시설로 제공한 것이 기폭제가 되어 청소년 유스호스텔로 발전하였다.

근대 알피니즘의 정신, 호기심, 탐험심을 연마할 수 있는 실천운동이 철새국토순례였다.

‘햇볕을 쬐라’, ‘자연과 친하라’, ‘격이 낮고 속된 유행가를 버려라’, ‘조국의 국토를 알아라’, ‘조국에 움트는 얼을 알아라’,‘협력하라’,‘단결하라’는 행동수칙이면서 국가관을 기르는 실천운동 방향이었다.

길위의 작가 김주영씨는 최근 몇 년간 문경새재의 길을 걷고 또 걷는다. 그의 소설 <객주(客主)>의 배경, 소설이 시작되는 공간에서 독자와 함께 현장탐방의 문화탐방을 하면서 문학기행에 나섰다.

서울 인왕산 윤동주 시인의 언덕에 이르는 길 걷기는 걷기 행사요, 독자와 한 공간에서 뒤섞인다. 강원 대관령과 정동진의 150km 바우길은 소설가 이순원씨의 ‘걷기는 생각하는 힘의 인내력을 키워주고, 길을 걸으면 생각을 정리하고, 소설에 대한 깊은 사유를 가능케 한다’고 했다. 불교계의 ‘길 위의 수행’은 큰 변화로 받아드려지고 있다지 않는가.

서울은 이제 산의 도시에서 산과 물의 도시, 이제는 항구다. 하늘의 도시다. 서울 주위의 북한산, 북악산, 도봉산 그리고 관악산은 주말이면 종로의 번잡함을 껴안고 발 들여놓을 틈이 없다. 서울산 둘레길도 많이 생겼다. 북한산, 도봉산 둘레길은 등산수준이다. 서울둘레길도 등산수준이다. 지난 주말 사당역에서 서울대학교 관악캠퍼스까지 걸어보았는데 준 등산수준의 트레킹 코스였다. 관악산 관음사를 돌아내려오는 코스였는데 초심자는 다시 가지 않겠다는 말이 나올만도 하더라.

나의 아침 산보길은 개나리산 응봉산을 거쳐 응봉역에서 한강을 따라 옥수역을 지나 다시 달맞이 근린공원을 올라 내려오는 5km코스다. 일주일에 한두번은 매봉산을 끼워넣는다. 슬그머니... 아침 출근시간 지하철 6호선 좌석 뒤편엔 지하철 6호선 역에서 가까운 관광시설 그림이 붙어있다. 6호선 지하철의 종점이 봉화산이다. 출퇴근 시간 10년 만에 봉화산둘레길을 찾아나섰다. 봉화산은 배나무골, 배나무 텃밭에 주말농장터 아닌가. 봉화산역 4번 출구 나서니 옛날 먹골이 아니었다.

신내아파트 단지는 9개단지, 비가 오는 계절에도 뽀송뽀송한 마사토 숲길 산책로라더니, 등산객이 많이 찾아다녔으니 나무 뿌리가 노출된 피로에 지친 길이었다. 서울 중랑구청 뒤 봉화산 봉우리, 칭칭 감고 늘어서 좁은 오솔길들이 거미줄망이다.

산 입구따라 3분정도 걸어 올라가면 신내공원 다목적 체육관이 보인다. 왼쪽으로는 울창한 숲길이 시작되고, 둘레길과 만나는 곳까지는 또 50m걸어간다.

울창한 숲길에 좌우 갈림길 만나 둘레길로 들게 된다. 오른쪽이던 왼쪽이던 걸어가면 산을 돌게 되어 있으니, 무제한 걸어다닐 수 있다. 벌써 오래전에 조림사업은 마무리 된 듯 저절로 자란 잡목, 자연이 키워낸 숲의 전형이다.

소나무는 활엽수 사이에서 힘겹게 자라 신갈나무 투쟁기다. 봉화산 둘레길 걷다 봉수대 다녀오던가 봉수대부터 올라가거나 산 높이는 160.1m니 야산이다.

봉화산의 봉수대 이름은 아차산 봉수대터다. 대동여지도에도 이같이 표기되어 있다한다. 봉수대 옆에는 400년 도당굿당이 있고, 봉화산도당굿은 원형이 잘 유지되어 있어 서울시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정상부근엔 벙화산도당굿 보전위원회 건물과 운동시설, 식품구입 매점 그리고 화장실이 자리잡아 정자쉼터가 서있다.

봉화산은 묵동, 신내동, 중화동에 걸쳐있다. 그 높이 160.1m. 그 옛날 중랑천 일대를 통제하던 군사요지였다. 삼국시대 군사시설이요 조선시대 봉수대. 도당굿터(서울시기념물 15호). 서울특별시 무형문화제 제34호다. 삼월 삼짓날 주민안전을 기원하는 굿을 올린다.

고구려 보루, 봉화산 외곽을 경비하는 보루 추정설이 있고, 1994년 11월 봉수대는 모형으로 설치하였다. 봉화산은 일종의 구릉지대, 정상엔 모형 봉수대가 있는 곳에는 받침 밑에 울퉁 뽀족한 바위 덩어리다. 함경도 경흥에서 강원도와 포천 봉수대를 거쳐 한양 남산에 봉화를 옮기던 군사시설이었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저작권자 © 메드월드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