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봉산(道峰山?740m)은 바위 꽃이다. 정상인 자운봉(紫雲峰)을 비롯해 만장봉(萬丈峰)과 선인봉(仙人峰)이 산 중앙에서 화려하게 핀 장미꽃이라면 바로 옆의 주봉(主峰)은 구절초 꽃이요, 멀찌감치 떨어져 있는 오봉(五峰)과 우이암(牛耳岩)은 솜다리꽃이라 할 수 있다. 주능선뿐 아니라 마당바위능선, 보문능선, 다락능선 등 도봉산의 수많은 능선은 각기 기암으로 수놓아져 있고, 그 자락들이 모여 한 폭의 산수화, 수묵화를 그려놓고 있는 것이다.”
(월간山 2010년 5월 한필석, 이구희)

서울의 풍수(風水)를 말할 때 도봉산과 삼각산(북한산)으로 시작한다. 풍수가 최창조의 설명에서는 “내룡(來龍)의 맥세(脈勢)로 볼 때, 강원도 철령으로부터 이어온 맥세가 도봉산에서 한껏 생기를 뭉쳤다가 북한산으로 기맥을 넘기는데....”

‘내룡’이란 풍수에서 근원산(宗山)에서 내려온 산줄기를 가리킨다. 즉 백두산부터 용이 굽이치듯 달려온 맥세가 도봉을 힘껏 밀어 올린 뒤 삼각산으로 넘어갔다는 얘기다. 조선 영조 때 신경준의 <산경표>에도 비슷하게 적고 있다. “도봉산에서 한껏 생기를 뭉쳤다가 북한산으로 그 기맥을 넘기기 전에 한번 한껏 졸라맸다 보내는 자리‘가 바로 우이령이다.

호스의 물을 힘차게 쏘려면 주둥이를 손으로 지그시 누르듯, 우이령도 벌(蜂)의 잘록한 허리를 닮았다하여 봉요처(蜂腰處)라 부른다. 도봉산 오봉은 바로 삼각산으로 맥세가 넘어가기 직전에 떡하니 밀어오린 봉우리다.

만길 파란하늘에 깎아 세운 경기의 금강(金剛). 도봉동문(道峰洞門) 지난 도봉서원 어름, 숲의 얼기미 뒤 일 백 오십여 길 절벽, 파란하늘에 깎아 세운 만길 봉우리 ‘청천삭출만장봉(靑天削出萬丈峰)’ 2천만 수도권의 주민들의 도시공원, 꿈꿀 공간, 등산로 가장 촘촘한 산, 가장 사랑받는 산이 되었다. 신선이 놀다간 절묘한 바위 경연장, 빼어난 기상, 경고한 풍모 변화무쌍한 굴곡, 다양한 산행코스 등 산악미의 고전을 배우려는 사람들의 요람이다. 도봉산에서 배우고 터득하여 전국의 산을 찾고 다시 도봉으로 돌아오는 과정을 되풀이 할 수 있는 곳, 일요산행, 평일산행 모두 붐빈다.

북한산과 함께 으뜸과 버금을 다투는 천하절경 도봉산엔 우뚝 솟은 만장봉, 쫑긋한 우이봉, 후덕한 사패산, 전설속의 오봉이 솟아있다. 도봉은 어느 골짜기, 어느 능선을 따라 들어서도 산을 오르는 온갖 즐거움이 가득한 산이다. 도봉산에 어울리는 단어가 불쑥불쑥 떠오르지만 막상 산을 오르면 그 황홀한 경치에 말문이 막히고 만다.

그래서 도봉은 시(詩)라 표현하면서도 도봉을 표현할 말이 적절치 못함을 느낀다. 아름답고, 수려하고, 장쾌하다. 멋진 산, 며칠 못 보면 그리운 산, 빼어나서 화려해서 으뜸 산이라 표현해도, 모든 최상의 수식어들을 한대 모아 놓고도, 오히려 부족함을 느끼는 것이 도봉산이 아닐까.

깊은 골 건넌 곳 파란하늘에 깎아 세운 만길 봉우리 만장봉(萬丈峰.718m) 한가로이 허리를 휘감고 흐르는 붉은 구름위로 하늘에 닿을 듯 솟구친 자운봉(紫雲峰.740m), 저마다 흉내 낼 수 없는 아득한 절경을 이루는 오봉(五峰.625m), 혼자 솟은 듯 여럿이요, 여럿이며 또 하나인 우이암(牛耳岩)의 신비로움에 절해의 고도(孤島)처럼 멀리 떨어진 암봉산 사패산(賜牌山.552m)이 한대 어울리니 감동에 부족함 없는 경기의 금강(金剛)을 이루니 그것은 도봉산의 자태와 위용이라.

예부터 도봉은 시인 묵객들이 찾아올라 글을 짓고 그림에 담아 애틋한 사랑을 표현했다. 그래서 도봉은 우리들과 사랑 깊었던 산이어서 그 품위에 적합한 예찬과 사랑을 받았다. 이중환의 <택리지>엔 ‘함경도 안변부 철령의 한줄기가 남으로 5백~6백리를 달려서 양주의 여러 작은 산이 되고, 북동쪽에서 비스듬히 돌아들면서 갑자기 솟아나 도봉산의 만장이 되었다.

최고봉, 자운봉 주변에는 깎아지른 듯한 암석들은 오랜 세월 풍상에 깎이고 씻겨 저마다 기암절벽이 되었다. 눈 아래 연봉들은 흰 구름 너머로 굽실거리며, 탁 트인 사방의 조망을 거칠 것 없이 가관이라 했다. 도봉산 이름과 관련된 분명한 유래는 전하지 않는다.

조선 왕조의 흥업이 도봉산 정기 때문이란 전설은 전해온다. 철원을 출발 도봉에 이르는 산줄기는 거리가 200리쯤이다. 그래서 조선왕조 500년 사직과 연결을 짓기도 한다. 도봉산 자락의 천축사와 회룡사라는 절들은 이성계의 왕조창업과 관련이 된 무학대사의 중창기록을 전해온다.

1984년 도봉산은 북한산과 함께 북한산 국립공원이 되었다. 총 면적은 78.5㎢이다. 북한산 54.7㎢, 도봉산 23.8㎢이다. 서울 도봉구와 경기도 의정부시, 양주시 장흥면 경계에 도봉산이 있다. 운악산(935.5m)과 불곡산(460m)이 남서쪽으로 달리던 한북정맥의 산맥이 북한산에 이르기 전 수려한 바위봉이 겹겹이 솟아 이루어졌다.

도봉산은 우이령을 사이에 두고 동북쪽에 위치하고, 웅장하고 빼어난 아름다움과 신비스러운 모습을 간직한 능선들은 보는 사람들을 선경으로 인도한다.

도봉산은 그 산 높이는 북한산에 미치지 못하나 천하일색 수려함을 자랑한다. 도봉산의 산계는 사패산, 자운봉, 오봉, 우이암을 주봉으로 거느리고 이를 잇는 사패능선, 포대능선, 오봉능선, 도봉주능선, 송추 남·북능선으로 이루어졌다.

산봉우리와 능선은 우뚝 솟은 바위산이 자리 잡아 있다. 바위산은 장구한 세월의 풍화작용을 받아 그 바위 면은 벗겨지고, 떨어져 나간 박리돔과 절리면을 형성했다. 저마다 독특한 멋을 지닌 능선과 능선 사이에는 송추계곡, 도봉계곡 문사동계곡, 원도봉계곡, 무수골, 용어천계곡, 거북골, 오봉계곡, 회룡골, 안골 그리고 범골을 아로 새겼다.

수려한 계곡들 그리고 계곡에는 폭포가 쏟아져 수려한 계곡을 만들고 있다. 계곡의 폭포들은 청량감을 넘어 수도권에서 다연 으뜸을 자랑한다. 도봉산행 대표적 들머리는 다섯 곳이다. 도봉동, 원도봉골, 회룡골, 송추계곡 그리고 우이계곡들이다. 주말이나 주중을 가리지 않고 서울 지하철 1,7호선 도봉산역과 도봉동역은 항시 북새통이다.

도봉산 둘레길에 주목한다. 도봉산 둘레길은 ‘도심 속 숨구멍’이라 부른다. 도봉산 둘레길은 북한산 둘레길보다 칭송을 받고 있다. 복잡한 도봉산 산행은 둘레길 활용으로 러시아워가 사라질 듯싶다.

도봉산 산행1번지는 도봉동이다. 도봉산 도봉입구지나 공원입구엔 ‘1668년(조선현종9년) 당시 62세의 나이에 도봉서원을 방문하여 정암 조광조선생의 사당을 참배하고 도봉동문(道峰洞門)이란 행서 4글자를 바위에 남겼다.’ 조선 숙종 20년 김수종은 개울 바닥에 고산앙지(高山仰止, 높은 산처럼 우러러 사모한다)란 글씨를 남겼다. 송시열 선생은 도봉서원 학풍진작의 나아갈 길을 시로 남겼다.
 
‘제월광풍갱별전(霽月光風更別傳) 료장현송답잔원(聊蔣絃誦答潺湲)’
(비가 개고 달리 올라 시원한 바람이 다시금 특별히 이어 받았도다 / 애오라지 거문고를 치며 노래하여 졸졸 흐르는 물소리에 화답하라.)

광풍제월(光風霽月)(비가 내린 후 맑게 개인 날씨에 시원하게 부는 바람과 밝은 달)이란 글씨는 조선후기 문신 이재(李縡)의 작품이다. 도봉서원 앞 개울가엔 수암 권상하선생의 글시 무우대(舞雩臺)가 있다.

위대한 학자에게 나아갈 길을 물어보았던 문사동(問師洞)길은 도봉길의 다른 이름이다. 도봉산은 서울의 상징 북한산(삼각산)에 붙어 있으면서 서울의 진산으로 사랑받고 있는 명산이다. 드높은 화강암벽, 웅장한 바위, 흰빛을 뿜으며 공중에 솟아있는 변함없는 지조와 의리의 상징으로 서울을 굽어보고 있다.

 ‘도봉은 이기려 하지 않는다.’ 북한산이 짝으로 있을 때 가장 진가를 발휘하기 때문이다. 이제 문사동계곡이 조용한 계곡으로 되돌아와 시심에 젖은 사람들의 산책길이 되어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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