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곽길 걷기는 서울을 아는 방법 중 하나다. 성곽을 따라 걷다보면 “왜 서울인가?”가 보인다.
서울은 원래 성곽 도시다. 조선시대 ‘한양’이 그렇다는 얘기다. 북악산을 중심으로 우측으로 인왕산~남산~낙산을 잇는 성곽이 축조돼있다.

‘서울성곽길’은 이 성곽길을 복원, 정비한 약 18.6km에 달하는 길이다. 서울 성곽길에는 낙산공원·와룡공원·삼청공원·남산공원 등 10개가 넘는 녹지공원과 국보1호 숭례문(崇禮門·남대문), 보물1호 흥인지문(興仁之門·동대문)을 포함해 170개에 달하는 문화재가 성곽을 따라 산재돼있다. 서울 성곽길은 역사·문화와 생태까지 ‘삼박자’ 어우러진 ‘걷기 좋은 길’, ‘이야기가 있는 문화 생태 탐방로’로 태어나 시민들에게 개방되고 있다.

조선 태조 이성계를 비롯하여 조선왕조가 수도 ‘한양’을 지키기 위해 힘들게 쌓아 올린 성곽이 후손들의 ‘산책길’로 변하게 될 줄을 예상이나 했을까.

동대문역사문화공원 근처 광화문에서 시작되는 낙산코스는 완만한 산책길로 남녀노소 누구나 쉽게 걸을 수 있다. 지하철 1호선 1번 출구에서 시작한다. 흥인지문을 지나 낙산공원까지는 성곽이 복원되고 바깥쪽으로 산책로가 조성됐다. 낙산코스는 혜화동에서도 진입하기 쉬워 대학로를 찾는 젊은 커플들에게 데이트 장소로도 인기가 높다.

서울 성곽의 돌 모양은 시대별로 다르다. 형태마다 역사를 달리한다. 메주모양의 돌들이 촘촘히 박혀 쌓여 있는 맨 아랫부분은 조선 태조 때 축성된 것이고, 성곽 밑에 크고 길다란 돌을 받치고 그 위에 메주 모양의 돌을 얹은 성곽은 세종 때, 정방형으로 다듬어진 큼지막한 돌로 이어진 곳은 숙종 때 축조된 것이라고 안내 표지판에 설명돼있다. 조선 전기부터 중기까지의 성곽 축성술을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다.

낙산 성곽길 코스가 끝나는 나무 계단길을 내려오면 서울 지하철 4호선 한성대입구역이 나온다. 혜화문 쪽으로 ‘구름다리’가 연결됐으면 완벽한 ‘순례길’일 됐을 터인데 하는 아쉬움이 있다. 순례길이 끊겨 전철역 안으로 들어갔다가 다시 나와서 다음 코스인 북악산 성곽길로 향해야 하기 때문이다.

혜화문(惠化門)은 일명 동소문(東小門)이라고도 한다. 도성에는 4개의 대문(大門)과 4개의 소문(小門)이 설치됐는데, 이 문은 동문과 북문 사이에 세워졌다. 처음에는 문 이름을 홍화문(弘化門)이라 했다가 1483년(성종4년) 새로 창건한 창경궁의 동문을 홍화(弘化)라고 정함에 따라 혼동을 피하기 위해 1511년(중종6년) 혜화로 고쳤다고 한다. 일제 강점기 혜화동과 돈암동 사이의 전차길을 내면서 헐어버렸다가 1992년에 복원했다.

성곽 순례는 풍광 좋은 한나절 걷기 여행 트레킹 코스 중 최적코스다. 조선시대 성곽길이 18.2km, 현재 남아있거나 복원된 성곽은 10.4km. 문화재청과 서울시는 서울 도심등 복원이 불가능한 5km를 제외하고 나머지도 모두 복원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서울 성곽길은 ‘순례’라 해도 좋을 정도로 역사와 풍경과 시민들의 삶이 그대로 녹아있다. 서울 성곽 내사산(內四山)의 주변을 따라 4개 코스로 나눠져 있다. 코스마다 진출입로까지의 접근이 쉬워 순서와 관계없이 위치와 상황에 따라 코스를 선택하면 된다. 성곽종주가 목적이 아니라면 1,2개 코스를 연계해 걷는 것이 운동도 되고 즐거움이 따른다.

성곽길에서도 와룡공원~창의문 코스가 경관이 좋다. 경복궁과 청와대 뒷산인 북악산 자락이다. 북악산은 한양의 진산이었다. 조선시대의 서울, 즉 한양은 이 성곽 안을 뜻했다. TV 연속극, 사극에 나오는 도성이 바로 한양이다. 북악산이 서울을 조망하기에 좋은 것은 바로 임금의 눈으로 서울을 볼 수 있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산행 기점은 성북구 와룡공원으로 삼는게 좋다. 이 코스가 훨씬 쉽다. 창의문에서 오르는 길은 성곽길 꼭대기까지 가파른 계단길이어서 버겁고 힘들다.

입구부터 경관이 좋다. 경관 좋은 산자락에는 고급주택들이 들어 찼고, 성 안쪽엔 서민 주택이 많다. 조선시대엔 성 안 사람을 ‘성안분’, 성 밖 사람을 ‘성밖놈’으로 나눠 불렀다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사대문 안에 산다는 것만으로도 자랑거리였다. 세상은 많이 변했다.

말바위 쉼터에서 성곽 안으로 놓인 나무 육교 넘어서 올라가면 안내소가 나온다. 여기부터 숙정문(북대문)~창의문(자하문)까지 이어지는 길은 1968년 북한 124군부대, 김신조 일당의 청와대 습격 사건 이후 39년간 출입금지 후 개방된 문화여행구간이다.

선인(先人)들은 가뭄이 심해지면 북문을 열었다. 남쪽은 양기, 북쪽은 음기가 많다고 믿어 가뭄이 심하면 음기를 통하게 해 비가 오기를 기다렸다. 이것이 풍수다. 도시도 풍수지리설에 따라 만들었다. 북악산 마루에서는 탁 트인 세종로와 경복궁이 한 눈에 들어오고, 도심을 둘러싼 주변의 산들도 잘 보인다. 풍수에 대해 하나도 모르는 무지렁이라도 “거참, 서울 포근하고 아늑하게 보인다” 고 감탄하게 된다.

서울 장안을 내려다보며 동서남북을 산펴보자.

왼쪽 좌청룡은 대학로 뒷산격인 낙산이다. 우백호는 인왕산이다. 남주작은 남산이 된다. 경복궁에서 보자면 북현무는 백악산(북악산)이다. 서울을 둘러싼 내사산(內四山)은 인왕산, 남산, 북악산 그리고 낙산이다. 내사산 너머에 북한산, 덕양산, 관악산과 용마산이 겹겹이 둘러 싸고 있다. 서울 수도는 홀꽃이 아닌 겹꽃처럼 2중으로 싸고 있다.

<서울문화순례>란 저서를 쓴 최준식 교수는 “중국은 수도에 적궁을 지을 때 북경에 있는 자금성의 경우처럼 수도 한 가운데 궁궐을 짓는다. 그런데 조선은 그 예를 따르지 않고 풍수설에 입각해서 서북쪽으로 치우쳐서 경복궁을 지었다”고 썼다. 황제는 세상의 중심이 자신이기 때문에 궁궐을 한 가운데 배치했고 조선은 자연을 거스리지 않게 도시를 만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철학이 서로 다르다.

성곽길의 정상은 백악마루다. 흔히들 인왕산이 잘 생겼다고 찬사를 남긴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후 수도방어를 위해 성곽 보강의 필요를 느껴 탐춘대성을 세웠다고 한다. 서울 성곽은 북한산성과는 별도로 이어진다. 성곽길 여행은 조선을 알고 서울을 아는 지름길이다. ‘성곽길이 서울의 생태축’이라는 결론을 내린 녹색 연합은 서울성곽산책 여행은 경주하듯 걷는 길이 아니라 역사와 문화, 생태, 경관 같은 자연을 만나는 길이라고 하였다. 그래야 서울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4대문 잇는 성곽 안 아늑하고 포근한 한양서 자연에 순응한 도시 철학을 느끼고 인왕·백악·남산 사방팔방 탁 트인 백악마루선 역사·문화·생태의 도시 서울을 느낀다.

낙산~북악산~삼청동 코스는 서울시 걷기 좋은 길로 꼽힌다. ‘꼬불꼬불’ 성곽꽃길, 꽃 향기에 취해 역사에 취해 걷는다.

한양성곽길 트레킹 ‘힐링’ - 삼청공원은 한양성곽길 트레킹의 ‘힐링’코스의 일부다. 순례객들은 삼청공원 뒤편으로 이어진 한양도성 성곽길을 걷는다. 약 1.4km구간. 자연 풍광을 감상하며 걷기 좋은 성곽길 트레킹 코스가 조성되어있다.

도심의 고층건물을 뒤로 하고 아기자기한 카페들이 즐비한 삼청동길 따라 걸어가면 길 끝에는 아담한 공원을 만난다. 족구장, 테니스장, 베드민턴장, 농구장, 탁구장이 갖춰져 있다. 삼청공원 체력단련장이다. 38만 75m²의 면적, 종로구에는 삼청공원을 비롯해 총 26개의 운동공간이 있다. 공원의 끝자락엔 한양도성성곽길로 1.4km의 트레킹 코스가 조성돼있다. 삼청동 주민 수는 3500여명으로 종로구 18개 법정동 중에서 인구가 가장 적지만 구체육대회에서는 항상 수위를 놓치지 않는다.

한양도성 성곽길은 자연의 풍광을 감상하며 걷기 좋은 생활체육공간이다. 푸른 녹음 벗삼아 걷다 보면 이마엔 송글송글 땀이 배지만, 곳곳에 마련된 벤치에 앉아 시원한 바람에 몸을 맡기면 삼림욕의 즐거움은 보너스다. “서울아 운동하자” 생활 운동 캠페인 실천 공간이다. 삼청공원 족구장, 70대 vs 30대 ‘한 판’ 대결과 화합이 한마당 가득하다.

예스러움을 간직한 한옥 건물과 예쁘고 현대적인 분위기의 건물들이 어우러져 멋진 장면과 색다른 풍경을 연출하는 삼청동길엔 골목 안팍과 언덕배기에 질서가 있는 듯 없는 듯 섞인 다양한 분위기의 가게와 카페, 음식점들, 그리고 그 길을 걷고 있는 사람들이 어울려 독특한 매력을 풍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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