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산책길, 마음껏 혼자 심호흡하는 행복한 새벽길이다. 개나리산 응봉산 팔각정 앞에 서면 동쪽 잠실벌 스카이라인이 달라졌다. 더샾(The #) 서울숲, 서울숲 포레 그리고 제2롯데월드가 불을 밝힌다. 항공 유도 등이 자기키를 자랑하며 번쩍거린다. 해가 떠오른다. 아침 6시 아차산 능선 따라 여명이 피어오르더니 새아침이 찾아온다.

김형영 시인의 <땅을 여는 꽃들>이란 시집 속에서 이 봄에 먼저 ‘봄ㆍ봄ㆍ봄’이 눈에 들어왔다. ‘다들 살아 있었구나. 너도, 너도, 광대나물 너도, 그동안/ 어디 순어서/ 죽은 듯/ 살아있었느냐. 내일은/ 네오내오 없이/ 봄볕에 나가/ 희고 붉은 꽃구름/ 한번 피워보자.’

봄꽃은 첫사랑이다. 수줍게 다가와서는 설렘만 남기고 금세 떠나간다. 추억으로만 남는 첫사랑과 달리 봄꽃은, 어김없이 찾아온다. 봄은 설렘이다. 봄꽃은 꽃바람을 타고 북상 중이다. 42년 만의 봄가뭄, 질금질금 성에 차지 않는 봄비. 그래도 서울엔 천둥번개 치면서 겨우 목마름에 목을 축여주었다. 이제 봄비 그치면 꽃비 차례다. 겨우내 움츠렸던 방 안의 사람들 밖으로 나와 봄을 만끽한다. 전국은 지금 축제장이 되었다.

봄은 짧다. 오는 듯 떠난 봄자리엔 꽃비가 내렸다. 이제 산록, 새순, 앙증맞은 잎사귀는 꽃보다 예쁘다.

시인 사진작가 신현림은 북촌(北村)이 서울에서 가장 한국적인 곳이라고 했다. “강남(江南) 어디에도 한국의 원형을 간직한 곳은 없기에 서촌(西村)과 북촌을 지키지 않으면 한국은 없다고 단언할 수 있다”

주말 서촌과 북촌의 길들은 잃어버린 그 무엇인가, 그리운 그 뭔가를 찾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길이 예쁘거나 풍경이 아름다우면 그곳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 알고자 하는 심미적, 탐미적 정사와 신적인 친밀감에 기대게 되어 있다.

청정산책로 트레킹엔 인왕산·부암동(付岩洞)길이 으뜸으로 추켜세워져 있다. 인왕산 중턱에서 내려다보이는 청와대·남산-서울파노라마가 기다려진다. 서울 도심에서 멀리 차를 타고 가지 않아도 트레킹 하기 좋은 길을 만난다. 서울 한복판에서 살짝 물러나 돌아가기만 해도 아름다운 산길을 걸을 수 있다.

서울은 산의 도시다. 어느 동네에 가봐도 산이 마주보이지 않는 마을이 별반 없다. 눈앞에 마주선 산이 은연중 우리를 어루만진다. 산이 없었다면 서울 사람들은 그간의 과밀과 과속을 견뎌낼 에너지를 제대로 충전할 수 있었을까. 인왕산이나 부암동에 들어가면 서울이 깊은 산록 속에 깃들인 도시라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 1번 출구를 나와 큰길 따라 5분정도 걸어가면 오른편에 사직공원(社稷公園)이 나온다. 조선 태조 이성계는 한양에 도읍을 정하고 경복궁을 건설하고 토지의 신(社)과 곡식의 신(稷)에게 제사를 올리기 위해 만든 사직단(社稷壇)이 있는 곳이다.

사직공원 담장이 끝나는 곳에서 오른쪽으로 돌아 5분정도 올라가면 단군왕검의 영정이 있는 단군성전(檀君聖殿)과 전통 활터 황학정(黃鶴亭)을 만난다. 황학정은 평범한 조선 후기 정자다. 구한말 고종황제가 세계열강의 틈바구니에서 살아가는 어렵고 고된 정사를 수행하면서 그 설움을 삼키며 활쏘기 하던 곳이다. 활시위를 당기며 고뇌를 잊었다는 곳으로 그 슬픈 역사가 전해오는 곳이다.

노란 곤룡포를 입은 황제의 모습이 마치 학처럼 보인다 해서 황학(黃鶴)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한다. 황학정 옆에는 ‘인왕스카이웨이’라는 표지판이 있어 표지판 따라 산길로 접어들게 된다. 찻길이지만 차가 많지는 않다. 그 오른편으로 산책로가 잘 정비되어 있어 트레킹코스로 안성맞춤이다.

여름엔 나무가 많고 우거진 녹음 따라 그늘이 드리워져 있고 길가엔 꽃을 많이 심어놓는다. 산 중턱에 서면, 서울시내 모습이 압권 전망이 된다.

청와대 파란지붕, 세종로 활기찬 모습, 멀리 남산까지 서울 중심부가 파노라마로 펼쳐 보인다. 산길 따라 오르면 굽이굽이 산길을 돌때마다 서울의 다른 풍경이 펼쳐져 눈이 즐거운 산책길이 된다. 이곳은 북한산, 도봉산, 우면산 등 서울 외곽 산책로에 비해 탐방객은 적다. 한가한 트레킹을 즐길 수 있다.

부암동은 서울 도심 전원마을로도 불리는 조선시대 양반과 왕족이 즐겨 찾던 경승지였다. 인왕스카이웨이를 30분쯤 걸으면 널찍한 풀밭과 정자가 놓여 있는 언덕이 나온다. 윤동주 시인의 언덕이다. 시인이 언덕 아래 하숙집에 머물던 시절 산책하던 곳이다.

윤동주 문학관은 종로구 창의문로(청운동) 창의문(자하문) 아래 있다. 문학관 뒤로 펼쳐진 ‘시인의 언덕’은 산길 굴곡을 타고 오르며 맞을 수 있는 산책로다. 한가로운 산책보다는 청년 시인의 힘찬 맥박을 느낄 수 있는 공간으로 윤동주의 순결하고 꼿꼿한 시 정신을 반추할 수 있다. 야트막한 언덕에 올라서면 인왕산이 늠름한 자태를 뽐내고 있다. 서울이 풍경이 한 눈에 들어온다. 성곽 너머 옹기종기 모여 있는 주택들 모두 정겹다. 시인을 사모하고 그리워하는 마음을 담은 시들을 산책길 울타리 곳곳에 새겨 놓았다.

언덕 위에는 큰 바위 하나, ‘서시(序詩)’가 새겨져 있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 나는 괴로워했다 /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
 그리고 나에게 주어진 길을 / 걸어가야겠다 /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1941.11.20.)

창의문(彰義門)의 다른 이름 자하문(紫霞門)은 아름다운 주변 경치가 장안 제일이었다. 경복궁과 창덕궁이 가까워 나들이 최고 장소였다. 조선 고종 때 영의정을 지낸 김홍근이 자랑하던 자하문 밖 별장을 흥선대원군이 간계로 빼앗은 것도 주변 경광 때문이었다니....

지금 TV연속극에는 TvN에서 삼시세끼로 인기 상한가였던 차승원이 출연하는 ‘화정’을 보기 전에 창의문 옛터전 경치 생각하며 걸어봄이 어떨지.

광해군 14년(1623) 3월 12일 반정군이 창의문을 도끼로 부수고 창덕궁으로 난입해 광해군을 폐하고 인조를 왕으로 세운 인조반정의 장소다.

1950년 6.25전쟁 때 북한군이 넘어왔고, 1968년 1월 21일 북한 124군부대 무장공비 31명이 청와대를 습격하려고 난입했다. 이 길을 걸으며 안보의식도 키워야지요.

창의문은 서울 성곽 4소문 중 유일하게 제자리에 남아있는 건물이다. 바로 앞으로 높은 도로가 나는 바람에 옛 정취를 잃어버렸다. 창의문에서 숙정문까지의 길은 문화 산책길로 이어졌다. 건강증진길이다. 자하문 터널길 빠져나와 신도슈퍼, 부암동 주민 센터 쪽으로는 백사실 계곡을 찾아가고, 윤동주 시인의 언덕에서 경복궁역 쪽으로 내려갈 수 있다. 여기는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 2번출구를 나서, 경복궁을 우측에 두고, 청운효자동 주민센터 - 경복고등학교 - 청운중학교를 지나 창의문 쪽으로 올라올 수 있다.

경복궁역 2번 출구를 나와 30분쯤 걸으면 청와대 앞길이다. 청운중학교와 경복고등학교를 지나는 길은 나라막길이라 내려갈 때는 발걸음이 가벼워진다. 경복궁역에서 청운 효자동 주민센터까지는 800m쯤 된다. 통인동, 통의동 길은 평범한 찻길 같지만 들어서고 싶은 예쁜까페, 음식점이 즐비하다. 통인동 시장 안쪽, 기름떡볶이집은 놓치지 말길!

인왕산에는 시인 윤동주 산책길, 진경산수화의 대가 겸재 정선이 수차례 화폭에 담아냈고 아름다운 계곡과 한옥의 ‘인왕산 문예길’이 화재가 되고 있다. 문예길은 서촌으로 불리는 ‘세종마을’을 출발, 박노수 미술관, 수성동 계곡, 청운문학도서관, 윤동주 문학관, 무계원을 거쳐 석파정(서울미술관)까지 걷는 길이다.

겸재 정선과 서울 서촌(西村)여행을 중심하고 겸재 정선의 화폭 속에 ‘수성동’의 무대가 된 서울 종로구 옥인동 수성동 계곡의 복원에 자료가 되었던 옛 계곡을 걷는 것도 의미를 더한다.
창의문을 기점삼아 청운공원, 경복고교, 겸재 집터, 청풍계, 세심대, 수성동, 그리고 배화여대를 지나 필운대까지 가며, 사직공원을 거쳐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으로 가는 여정이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저작권자 © 메드월드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