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말도 많고 사고도 많았던 해였다.

2015년 오늘 광복 70년, 분단 70년, 을미사변 120년, 을사늑약 110년 되는 해를 맞았다. 지난 세월의 굽이굽이를 돌아보면 역사는 힘 있고 준비하는 자의 것이라는 말을 실감하게 된다.

통일도! 기쁨의 날을 맞을 힘을 모으자.
“아이도 뛰며 만세 / 어른도 뛰며 만세 / 천둥인 듯 산천이 다 울린다. /
 이것인 꿈인가 / 생시라도 꿈만 같다.”
소설 <임꺽정>을 쓴 벽초 홍명희의 해방의 감격(1945)이다.

새로운 한해의 시작, 해가 바뀌면 뭔가 새로워질까. 하루와 달과 해라는 시간의 단위는 달력을 바꿀 때 가장 실감난다.

조선시대 동짓날이면 관상감(觀象監)에서 새해 책력(冊曆)을 제작하여 관리들에게 넉넉하게 나누어주었다. 이를 받은 관리들은 지인들에게 선물하였다. 책력에는 농사와 택일에 필요한 내용까지 두루 기록되어 있어 일상생활에 요긴하게 쓰였다.

조선시대 이정형(1549~1607)은 책력에 시를 썼다. “눈 어둡고 귀먹어 백발이 새로운데, 오순에도 늙었는데 육순은 어떠하랴. 혈기가 쇠했으면 물욕을 경계하라는 성현의 유훈을 다시 적노라.” 이정형은 환갑을 바라보는 나이에 책력에다 노탐(老貪)을 경계하는 글을 썼다. <논어>에서는 군자(君子)가 경계할 세 가지를 들었다. ‘청년기에는 혈기가 안정되지 않았으니 성욕(性慾)을 경계해야 하며, 장년기에는 혈기가 왕성하므로 승부욕(勝負欲)을 경계해야 하며, 노년기에는 혈기가 쇠약해지므로 탐욕을 경계해야 한다.’

지난해 11월 7일은 입동(立冬)이었다. 겨울 무턱에 들어섰다는 생각에 마음이 급해지는 시기다. 겨울은 우선 추워진다는 생각에 긴장감을 불러일으키고 김장, 겨울외투에 땔감은 다른 계절에 비해 몇 배를 준비해야 되니 더 긴장시킨다. 이젠 땔감이 연탄으로 기름으로 도시가스로 바뀌어 난방비 걱정이 앞서는 것만 달라졌을 뿐이다. 묵은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으면 마음가짐도 달라지지만 얼마 지내다 보면 다시 엇비슷한 타성 속에 빠진다.

2015년엔 ‘새해’는 새로워지라고 당부하면서 ‘천진함을 꽃 피우고 새 마음으로 새 출발을 하기 위해서는 묵은 것은 물론 해묵은 것들도 털어내야 한다.’고 당부했던 구상(具常)시인(2004년 85세로 작고)의 시 ‘새해’를 옮겨 쓴다.

‘.... 어디 헌 날, 낡은 시간이 있다드냐? / 네가 새로워지지 않으면 /
결코 새날을 새날로 맞을 수가 없고....’
‘너의 마음 안의 천진(天眞)을 꽃 피워야 / 비로소 새해를 새해로 살 수가 있다.’

더 부연하면 ‘해묵다’라는 말의 의미다. 어떤 일이나 감정이 해결되지 못한 상태에서 여러 해나, 많은 시간이 지나, 오래 될수록 좋은 것도 있을 수 있다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우리를 슬프게 하고, 마음을 아프게 한 것, 거짓과 특권의식은 버려야 한다. 세모(歲暮) 각자의 새로운 각오가 필요한 새 아침이다.

인생은 바람에 흩날리는 낙엽처럼 덧없다. 한해를 보내면서 한해가 간다. 아무리 쪼들리고 위축되어도 작은 행복에 만족하며, 자유롭게 사는 인생을 꿈꾼다. 한해가 아쉽다. 또 한해가 저문다. 인생은 저물녘에서 늙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나의 모습은 징그러운 얼굴들을 뿌리치려 밤새 몸 흔드는 나뭇잎들 같다. 그러나 ‘징그러움’은 ‘그리움’의 다른 이름이다. 그리운 얼굴들, 그리운 얼굴들은 어떻게 뿌리칠 것인가. 그것은 늙을 막(노경·老境)의 가장 큰 과업 중 하나다. 아쉬움과 후회를 삼키며 맞이하고 보내는 세모인 것을....

설날은 눈이 와야 멋지다. 씽씽 썰매도 타고 눈사람도 만들고, 설날은 어른들한테도 즐거운 명절이지만, 아이들에겐 더 큰 명절이다. 어린 시절 어머니가 지어주신 설빔을 입어보고, 또 쳐다보고, 인천에서 아버지가 사 오신 새 구두를 신어보고 또 신어보며 설날을 기다렸다.

고향 시골집 키 큰 미루나무에 까치집 둥긋이 얹혀 있는 시골풍경은 어디서나 볼 수 있던 풍경이었다. 까치들은 하늘을 뜰로 삼고 도란도란 의좋게 살아갔다. 정겹고 훈훈했던 까치집, 왜 너희들은 이제 국조(國鳥) 반열에서 해조(害鳥)가 되었는가. 뒷곁 밤나무 가지에서 까치가 울어대면 설 선물 가지고 부모님들이 도회지(都會地)에서 오셨다.

종가의 불빛이 생각나는 계절이다. 설을 앞둔 음력 섣달에는 종갓집 맏며느리의 지엄한 임무는 가문의 자긍을 지키려는 책임 때문에 바쁘게 돌아간다. 가문만의 특별제수, 설음식 준비에 섣달 칼바람 눈보라 속에서도 불빛을 밝히며 진행된다.

아버지의 ‘바리캉’, 이놈 머리에 쇠똥 봐라! 꿀밤에 눈물이 글썽거려도 즐거운 추억이었다. 설날 이른 아침 할머니는 가족수대로 복조리를 사서 걸어 두시며 복을 빌었다. 차례를 지낸 뒤 떡국 한 그릇 먹고 세배를 드리면 덕담과 함께 받던 세뱃돈은 뿌듯함 이상이었다.

‘짐승은 모르나니 고향이나마 / 사람은 못 잊는 것 고향입니다 /
 생시에는 생각도 아니 하던 것 / 잠들면 어느덧 고향입니다.’ (김소월 ‘고향’중에서)

우리의 고향은 동심(童心)의 놀이터요, 마음이 보금자리였다. 세한(歲寒)엔 고향은 고향귀성과 어울려 설과 동의어가 된다. 이제 2천만의 민족대이동이 다가온다. 한살 더 먹으러 고향으로 떠난다. 우리말 ‘설’은 나이를 세는 ‘살’과 같은 말이었다고 한다. 설은 새것을 가리키던 ‘사라(새)’와 같은 뜻으로 쓰였다. ‘새롭다’는 의미가 더 강해지면서 ‘새해 첫날’을 가리키는 말로 자리 잡았다니 흥미롭다.

지금은 1월, 한해의 첫 달이다. 과거에는 한해의 시작을 음력 11월 또는 12월로 정한시기가 있었다. 그래서 지금도 ‘섣달 그믐날’은 음력 12월 1일이 설날이던 시절부터 써오던 그대로 음력 12월 마지막 날을 가리킨다. 이날은 한해의 끝으로 한해를 끝내며 온 가족이 모이는 날, 묵은 세뱃날이다.

새해 새 달력을 걸면 가슴이 설렌다. 한 번도 밟지 않은 하얀 눈길 같은, 아직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길 같은 새 달력은 기대와 설렘이 간절한 소망과 함께 담겨 있어서다. 서재환 시인은 ‘새 달력’이란 동시 속에서 ‘비둘기장 같은 새 달력’이란 이름을 붙였다. ‘새끼 비둘기 같은 꿈’들이 푸드덕 날아오르기를 소망했다. 매일매일~

겨울 한파가 맹위를 떨친다. 몸은 춥고 산천의 풍경은 참당하다. 하기야 참담하지 않고서야 어찌 겨울이랴. 연암(燕巖) 박지원(朴趾源,1737~1805)이 어는 몹시도 추운 겨울날 한양(서울)의 풍경을 묘사한 극한(極寒)을 옮겨본다.

‘북악은 높이도 깎아지르고 / 남산은 소나무가 새까맣다 /
 솔개 지나가자 숲은 오싹하고 / 학이 울고 간 하늘은 새파랗다.’
 
시를 읊기만 해도 춥다. 되게 추워 아무도 나타나지 않는 적막한 겨울풍경이다. 온 세상을 순백으로 빛나게 하는 겨울의 아침풍경 속에 부엌에서 아침밥상을 차리던 어머니들은 솜이불을 끌어당기며 게으른 늦잠 자는 아이들을 깨우는 말씀! 밤새 흰눈이 소복하게 쌓였구나! 아이들은 하얗게 서릿발이 얼어붙은 창가에 매달려 바깥을, 집밖을 본다. 애들을 창가로 불러 모으는 뜻 깊은 어머니의 거짓말, 그것은 추운 한데에 있는 것들을 보라는 말씀, 눈물겨운 삶들을 보라는 말씀이기 때문이다.

1월은 결심(決心)이 아닌 결행(決行)하는 달이라 했다. 오세영 시인은 ‘1월’이란 시에서

‘1월이 색깔이라면 / 아마도 흰색일게다 / 아직 채색되지 않은 / 신의 캔버스....’라 했다.
순백의 캔버스에 하나씩 올해의 꿈과 희망을 그려가는 것만으로도 설렙니다.

송구영신(送舊迎新). 세월에 금 긋는 그 시작과 끝이 언제나 혼란스럽다. 금년 양력설 한 달반 후 음력설인 것은 그래도 살갑다. 패자부활처럼, 또 그런 기회처럼, 기대(?)해볼까나.

금년 절기상 입춘(立春)은 2월 4일 그리고 우수(雨水)는 음력 정월초하룻날 2월 19일이다. 날씨 풀린다. 대동강물도 풀린다하지 않았던가. 계절의 봄은 멀지 않았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저작권자 © 메드월드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