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초입에 조락(凋落)과 소멸(消滅)을 떠올리는 것은 한해 마지막 달만큼은 내면을 갈무리하는 시간으로 삼았으면 해서다. 겨울은 잎이 모두 지고 나서 단단해지는 겨울 나무처럼 나이테 간격을 촘촘히 좁히며 스스로를 성찰해보고 싶다.
 
녹음의 계절, 이파리가 무성할 때는 줄기와 가지들이 잘 보이지 않았다. 하늘가려 나무 발밑은 태양의 계절에도 어두웠다. 서리 내리고 단풍 들어 잎이 떨어지며 세찬 바람 속에 낙엽으로 날리더니, 나무는 승골 승골 구멍이 뚫려, 줄기와 가지로 세상풍파 이겨보려 안간힘을 쓰지만 나목(裸木)이 되었다. 나이테는 촘촘해져 한살을 더 먹었다.
 
잎 떨구고, 줄기와 가지로 세상풍파 이겨보려 안간힘 쓰는 나목(裸木)을 보라. 외로워서 단단한 겨울나무를 보라. 저만치 멀어진 친구, 이만큼 가까워진 이웃이 보일게다.
 
하나의 나이테를 겹쳐 두루는 쓸쓸함, 내 뒤의 긴 그림자를 더욱 무겁게 한다. 무엇을 했단 말인가. 그러했는지도 모른다. 헛것으로 산 것이다. 한해가 저문다는 사실만으로도, 가슴 쓰린데, 인생의 저물녘에서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아! 나의 모습, 노경(老境)의 가장 큰 과업이 아닌가.
 
어느새 한해가 저문다고 송년회로 들썩인다. 해 가기 전에 밥이라도 먹자고 새삼 가슴 뭉클한 인사들이 분주하다. 모두 수고했다고 내년에는 더 힘내서 살자고, 묵은 감정 내려놓으며 어깨를 감싸기도 한다. 그런 가운데 지워야 할 이름도 간혹 나온다. 가까운 사람이면 한동안 삭제를 못하고 전화나 수첩 편에 그냥 두어본다. 그런데 어머니라면 평생 못 지우고 가슴으로 부른다.
 
아니 더 뜨거운 눈물로 모신다. 어머니, 그 기도가 일으켜온 무궁한 새벽을 다시 보는 세모다. 어머니의 기도가 있어 세상이 이나마 덜 병든 운행을 계속하는 것 같다.
 
오늘 새벽도 세상의 많은 어머니가 말갛게 씻어 내보낸 태양으로 시작했을 것이다. 내일도 그러하리니, 어머니의 마음으로 대하면 세상은 한결 안녕하리라.
 
추위가 벌써부터 시퍼렇다. 겨울 한파가 맹위를 떨친다. 몸은 춥고 산천의 풍경은 참담하다. 하긴 참담하지 않고서야 어디 겨울이랴. 12월 22일 동지, 겨울의 한극점. 시(詩)도 제철이 있다.
 
어금니를 지그시 물고 눈을 감아 천천히 아주 천천히 다시 읽어 마음을 적신다. 살아있는 모든 것 숨죽여 숨어버린 깨끗한 추위에 칼바람과 맞서 있다. 그러나 겨울채비는 벌써 김장과 장작으로 끝났다.
 
옛날엔 겨울 채비에 바쁠 때 덜 마른 나무라도 많이 쪼개야 했다. 나무 때던 시절 얘기지만 뒤란이며 마당귀에 차곡차곡 쌓아놓은 장작은 겨울 양식같이 든든했다. 나무들 속살은 향기롭고 아름다웠다. 지금은 절 마당에서나 볼 수 있는 광경이다.
 
장작은 불이요 꽃이다. 보고 있으면 모닥불 추억처럼 온몸이 뜨거워진다. 장작은 군고구마의 구수한 추억도 주었다. 찬바람이 드셀수록 장작불 함께 쬐던 벗들이며 군고구마 같은 마음들이 그립다.
 
고려말?조선초의 저명한 학자인 권근(權近 ?1352-1409)이 음력 10월에 김장을 하고나서 지은 ‘김장’(蓄菜)를 옮겨본다.
 
시월이라 바람세고 새벽서리 매서워져 / 울안팍의 온갖 채소 다 거둬들여놓네 / 
김장을 맛나게 담가 겨울나기 대비해야 / 진수성찬 아니라도 하루하루 찬을 대지 /
암만 봐도 겨우살이는 쓸쓸하기 짝이 없고 / 늙은 뒤로는 유난스레 감회에 깊이 젖네 /
이제부터 먹고 마실 일 얼마나 남았으랴 / 한백년 세월은 유수처럼 바쁜 것을
 
겨울밤은 길고 문풍지 틈새로 들어오는 바람은 차갑다. 밤나무 숲에서 부엉이가 울고 밤은 길어서 허기가 진다. 그런 밤이면 어머니는 고구마를 벗겨주시고, 더러 밥을 비벼주시기도 한다. 감기에 걸려 끙끙 앓으면서도 주름진 손으로 ‘어서 자거라’하고 이마를 쓸어주신다. 춥고 긴 겨울밤에 따뜻한 아랫목은 아이에게 내주고 어머니는 항상 윗목 차지다. 우리 어머니들은 늘 이렇게 바보처럼 사셨다. 그러기에 어머니는 희생과 헌신의 이름으로 늘 기억된다.
 
한해가 간다. 조선 중기 저명한 실학자 성호 이익(星湖 李瀷)은 친구들과 한해를 보내며 몇편의 시를 지었다.
 
사람들은 묵은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느라 떠들썩하게 오가고 행사를 벌이며 들떠있다. 함께 어울려 자기도 들뜬 기분으로 세밑을 보내는 것도 나쁘지 않다.
 
그러나 성호에게 연말 풍경은 전쟁에 패퇴한 군대처럼 어수선하고 인생은 바람에 흩날리는 낙엽처럼 덧없다. 그도 친구들도 심란하다. 술을 가득 따라놓으나 더 취할 기분도 아니다 낙지론을 펼쳐놓고 나니 마음이 한결 가라앉는다. 아무리 쪼들리고 위축되어도 작은 행복에 만족하며 자유롭게 사는 인생을 꿈꿔보았다.
 
조선 숙종시의 사상가 농암 김창협은 추운 겨울 눈 내리는 새벽 어두컴컴한 강 위에 섰다. 하늘도 들녘도 아직 잠에서 깨지 않았다. 만상(萬象)이 기지개를 켜고 활동하기 전이다. 새벽 들녘의 천지기운이 가슴 속으로 벅차게 차들어온다. 모든 감각이 멈춰서고 그 가운데 몸을 내맡겨 불현듯 아무소리도 들리지 않을 때 살아야겠다는 의지가 솟구쳐 오른다. 믿을 것은 나의 의지, 선한 마음이다. 새벽이 밝아온다.
 
종가의 불빛이 생각나는 때다. 설을 앞둔 음력 섣달에는 특히 그렇다. 가문의 자긍 지키기라는 운명의 짐을 진 사람들 그 중에도 종갓집 맏며느리의 임무는 지엄하기 짝이 없다. 그런 때문일까. 뉘 가문의 고택을 지날 때면 고개가 절로 숙여지고 말소리며 걸음도 조심스러워진다.
 
지금도 어느 종가에서는 불빛이 오래 밝겠다. 그 가문만의 특별한 제수며 설음식 준비로 주변조차 환히 밝히리라.
 
그렇듯 섣달 칼바람 눈보라 속에서도 따뜻이 퍼지는 종가의 불빛으로 삶은 또 이어진다. 그등을 내다 거는 마술새 없지만 위엄어린 손등이 보이는 것만 같다. 겨울 새벽의 정신으로 살아가기입니다.
 
이제 송년회를 끝내야 겠지요. 새해를 맞기 위하여! 우리 금융지주 이순우 회장님의 건배사입니다.
 
‘통통통’ 선창하면 ‘쾌쾌쾌’로 화답
통통통(의사소통, 만사형통, 운수대통)
쾌쾌쾌(유쾌, 상쾌, 통쾌)
 
추운 겨울날 시린손 ‘호오’ 불어주던 어머니의 따뜻한 입김, 언 손도 녹고, 언 마음도 녹는다. ‘호오’라는 말 속에는 얼어붙은 마음을 녹여주는 어머니의 입김이 담겨 있다. 어머니의 밥은 따스한 밥, 피어오르는 김 같은 입김이 서린다.
 
2015년 1월 1일 해맞이는 성동구 응봉산에서 했다. 아침 7시 47분, 둥둥둥 북소리와 함께 새해가 떠올랐다. 성동구에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는지 몰랐다. 응봉산 팔각정 새끼줄에는 새해 소망을 적은 쪽지가 바람결에 나브낀다. 소망을 이루소서!
 
너만의 꿈의 목록을 작성하라. 127개 꿈의 목록 중에서 111개의 꿈을 실천한 것으로 유명해진 탐험가 존 고더드는 꿈의 목록을 기록하는 행위가 꼭 필요한 이유를 이렇게 말했다.
 
‘꿈을 이루는 가장 좋은 방법은 목표를 세우고 그 꿈을 향해 모든 에너지를 집중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단지 희망사항이었던 것이 꿈의 목록으로 바뀌고, 다시 그것이 해야만 하는 일의 목록으로 바뀌고, 마침내 성취된 목적으로 바뀐다.’
 
올해의 슬로건을 ‘미워도 다시 한번’으로는 어떨까? 맹자는 세상은 시비지심과 수오지심으로 가득 차있다고 했다. 편이 갈리고, 미움은 넘쳐흐르며 지속되고 있다. 추를 반대방향으로 밀어보자. 마음의 균형을 잡아보는 한해 되기를 기원한다.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공감하게 가르치는 심성교육이 절실하다. 광복 70주년, 파독 간호, 광부 50주년, 을미사변 120주년 의미 있는 한해를 기다리겠다. 서로의 자존심을 지켜주고 배려하자.
 
 남이 나를 어떻게 대하는가
 나는 남을 어떻게 대하는가
 나는 나에게 어떻게 대하는가
 
세 가지 물음은 존엄성 개념으로 흘러 모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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