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치 까치 설날은 어저께고요, 우리 우리 설날은 오늘이래요.”
 
‘설’하면 생각나는 것? 떡국, 연휴, 차례 그리고 세뱃돈이다. 우리의 설은 음력 1월 1일이다. 하지만 신정(新正)인 양력 1월1일을 설로 세는 가정도 있다. 
 
중국의 설도 음력을 기준으로 하는 점에서 우리와 같다. 중국은 음력 1월1일을 ‘봄이 임박했음을 알리는 절기’, ‘춘제(春節·춘절)’라고도 한다. 땅 넓은 중국에서는 공식적 연휴는 7일(음력 1월1일부터 1월7일), 올해는 1월31일~2월6일이다.
 
일본은 우리나라, 중국과 달리 양력 1월1일이 설(오쇼가츠·お正月)이다. 1월 1일 하루만 공식적 휴일이지만 많은 회사들은 3일까지 연휴를 준다. 땅이 넓은 중국은 고향 찾아가는데 시간이 많이 걸리는 것을 감안해서 보름에서 한달까지 휴가를 주는 회사도 있다.
 
그러면 우리는 이중과세를 하는 듯 보인다. “정삭(定朔·책력)을 바꿔 1895년 11월 17일을 1896년 1월 1일로 삼으라.”는 조선고종의 조칙(詔勅)이 내려진 것은 1895년 음력 8월 9일이었다. 명성왕후가 시해 된지 채 20일이 못돼 공포된 태양력 채택은 천자(天子)로부터 책력을 하사받는 반력(頒曆)을 폐기하고 세계보편에 우리 시간대를 맞춘 ‘시간의 문명화’일수 있었다.
 
그러나 일본군이 궁성을 애워싼 중에 단행된 개력(改曆)은 침략자 일본의 시간대에 편입되는 종속의 상징으로 다가왔다. 불과 한 달 뒤 아관파천(俄館播遷)으로 개혁주도 개화파의 몰락으로 일본세력이 위축하자 정부는 왕조의 기념일과 제삿날을 음력으로 되돌렸다.
 
1899년 2월5일자 ‘독립신문’의 기사에는 시간의 문명화가 외세에 대한 굴종이고, 전통시간대가 고수(固守)가 자주(自主)가 되는 역설이 배태된 그 당시의 혼돈을 잘 설명해준다. “음력과 양력으로 두 번 과세한다는 말은 과연 남에게 부끄러운 일이도다. 그러나 과세를 두 번이나 하였으니.... 충군애국(忠君愛國)하는 마음도 어찌 더욱 독실하지 아니하다 하리오.”
 
1910년 나라를 빼앗긴 후 일제는 물론 1945년 광복 이후 우리정부에서도 세계시간의 흐름에 어긋나는 음력설을 쇠지 못하게 특단의 조치를 강구했지만 우리민족 전래의 설날을 쇠려는 민초(民草)들은 정말 요지부동이었다. 총칼로 압박한 외세나 산업화세력도 없앨 수 없었다.
 
음력설을 1985년 ‘민속의 날’로 부활되었다가 4년 뒤 ‘설날’이란 본명을 찾았다. 우리전통 명절을 지켜낸 힘은, 근대의 시간 체계에 편입되어 잃어버린 마음의 안식처에 대한 민초(民草)들의 그리움이었다. 
 
마을공동체를 비롯하여 가족해체, 개인시대에 사는 우리들은 설날이 되면 태어난 곳을 찾아오는 연어처럼 가족과 고향의 품을 찾는 이유가 산업화, 정보통신의 발달로 야기된 속도전을 벗어나 우리 그 옛날의 자연적이고 목가적인 느림의 미학이 그립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나라를 빼앗기고 전쟁이 터졌어도 우리는 정을 주고받으며 살아왔다. 우리는 정 많은 민족이니 우리의 정 DNA를 살려 나가자.
 
한국·중국·일본은 늘 싸운다. 역사, 땅 싸움 신문을 들여다보면 그래 ‘이웃사촌’이어서? 이웃사촌보다 더 가까우니, 땅 떼어 이사할 수도 없는 ‘천륜의 형제’다. 설날 삼형제가 한상에서 떡국을 나눠먹는 상상을 해보면서 동양 삼국의 설 풍습을 살펴보자. 
 
유구한 세월, 서로 영향을 받고 주면서 살아왔다. 동양 삼국은 농경민족이란 공통점을 지녔다. 설음식도 비슷하다. 떡국이 그 대표적이다. 일본은 된장이나 가다랑어로 맛을 낸 국물에 찹쌀떡을 넣은 ‘오조니’를 먹고, 중국에서는 쌀로 만든 경단을 국물에 넣은 ‘탕위안’을 먹는다. 밀 생산이 많은 북부지방은 만두를, 쌀을 재배하는 남부지방에선 ‘탕위안’을 먹는다.
 
떡국은 세 나라 모두 설날별식이다. 설맞이 한·중·일 ‘떡국 삼국지’에선 모양은 서로 다르지만 ‘복(福)을 부르는 음식’이란 개념은 같다. ‘떡국’은 먼 옛날 동양 삼국의 조상들이 매우 비슷한 음식을 먹고 살았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우리 역사상 고려시대 이후에 밥이 주식이 아니고 떡이 주식이었다. 고려시대 이전엔 쇠붙이가 부족하여 맷돌을 썼다. 쇠는 무기재료였다. 쌀이나 보리 도정기술도 문제였을 듯싶다. 그래서 곡물을 돌확에 넣고 갈아 거친 가루로 만든 뒤에 시루에 쪘다. 마을단위 공동체 생활에 공동 생산품은 공동취사로 만들어 낸 것도 떡으로 본다. 신에 제사 지낼 때도 떡이었을 것이고, 나눠먹던 음식도 떡이었을 듯하다. 
 
설날 아침에는 정성스럽게 상을 차려 조상들께 차례를 지낸다. 아이들은 어른들에게 세배하고 세뱃돈을 받는다. ‘새해 복 많이 받아라.’며 덕담을 해주신다. 설날의 대표적 음식 떡국물을 만드는 주재료로 옛날에는 꿩고기가 으뜸이었는데 꿩고기가 구하기 쉬운 일이 아니어서 일반인들은 닭고기를 대신 이용한다는 데에서 ‘꿩 대신 닭’이란 말이 나왔다한다. 요즘은 쇠고기를 많이 쓴다. 설 풍속으로는 복조리 달기, 연날리기, 윷놀이는 세시풍속 중 으뜸이다. 
 
중국인들은 우리와 마찬가지로 춘제 아침에 차례를 지내고 새해인사를 나눈다. 
 
‘신넨콰이러 궁시파차이(新年快樂 恭禧發財)’, ‘새해 행복하고 돈 많이 버세요.’란 뜻이다. 세뱃돈은 홍바오라는 붉은색 봉투에 넣어준다. 온 가족이 모여 교자(만두)를 만드는 전통을 지키는데 교자를 빚을 때는 몰래 동전을 넣기도 하는데 동전을 씹는 사람은 그해 돈 많이 번다고 해서 서로 축하를 보낸다. 
 
잡귀신 잡기 폭죽놀이는 대표적 풍습이다. 일본인들은 새해 첫날 집 근처의 신사(神社)로 참배를 간다. 새해 이루고 싶은 소망을 빌 오미구지(御神籤)라고 하는 운수 뽑기를 한다. 오쇼가츠에 많이 먹는 음식은 ‘오조니(お?煮)’와 ‘오세치요리(お節料理)’가 있다.
 
오조니는 우리의 떡국과 유사한 음식이다 오세치요리는 여러 단의 찬합에 새우·생선·콩·다시마·버섯·연근 등 다양한 재료를 요리해 담아둔 음식이다. 
 
새해인사는 ‘신네, 아케마시테오메데토고자이마스(新年, 明けましておめでとうございます), ’새해가 밝아온 걸 축하드린다.‘는 뜻이고 새해 세뱃돈은 오도시다마(お年玉)로 받는다. 
 
설 연휴기간 중 신문에서 ‘김성윤의 맛세상, 이탈리아 통일과 통합도운 요리책 한권’과 ‘떡국떡, 넌 언제부터 삐딱했니’를 읽어보았다. 그리고 민속학의 주영하 교수의 ‘설날 가래떡 추억’도 보았다. ‘떡국떡’이란 이상한 이름, ‘가래떡’ 그리고 ‘고수레떡’ 이야기 등 설음식 떡국에 관한 이야기였다. 
 
이제는 우리도 통일이야기가 회자된다.‘빠른 통일’보다 ‘바른 통일’이란 말도 생겼다. 이탈리아 통일에 기여했던 요리책은 “이탈리아가 단일국가로서의 일체감을 형성하는데 도움이 됐다”는 평가다. 김성윤기자는 요리책을 읽으며 “한국을 생각했다.”고 했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통일은 오고 있다. 
 
그날이 왔을 때 음식은 어떻게 우리사회의 통합에 기여할 수 있을까. 음식만큼 훌륭한 통합의 매개체가 없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우리가 아는 건 냉면처럼 과거부터 즐겨먹은 음식뿐, 요즘 북한에서 무엇을 먹는지 잘 모른다. 남북을 아우르는 한국요리책을 새로 쓸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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