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가사(僧伽寺)」는 북한산을 등산해본 사람들에겐 익히 알려진 절 집이지만 접근하기가 결코 만만치 않은 곳이다.

차량으로 올라가기도 쉽지 않고 경내에서도 계단이 하도 많아, 나이 많은 보살들은 지래 진이 빠지고 만다. 그리고 모든 건조물들이 하나같이 높고 화려하고, 장엄하다.

일주문을 통과하면 제일 먼저 만나게 되는 높이 25m의 「호국보탑(護國寶塔)」이 우선 시선을 압도한다.

원래의 명칭은 「민족통일 호국보탑」으로 ‘경천사 10층석탑’ 이나 ‘원각사 10층석탑’의 느낌이 난다. 하지만 호화로움과 규모면에선 절대 비교가 되지 않는다.

그림 1. 25m높이의 호국보탑. 진신사리와 아라한과를 봉안했다.

이 보탑에는 중앙에 석가모니부처님을 안치했고, 탑안에 인도 정부로부터 공식 기증받은 부처님 진신사리 1과(顆)와 아라한 사리 2과를 봉안했다.

일주문에서 호국보탑에 이르는 계단도 화려함과 장대함의 극치인데, 경주 불국사처럼 ‘청운교’ ‘백운교’ 라고 이름 붙였다.

호국보탑에서 다시 우측으로 난 비탈길을 오르면 선방인 「적묵당(寂默堂)」을 만나게 된다. 이 적묵당에는 전국적으로 이름난 비구니 선원답게 ‘삼각산 제일선원’ 이라는 편액이 붙어있다.

‘종루 옆으로 들어가면 정면에 「대웅전」, 우측에「영산전」, 그리고 좌측에는「명부전」이 자리를 잡고 있다.

먼저 대웅전에 들러 인사를 차린 뒤 시간을 보니, 벌써 오후 1시가 다 되어 간다. 공양을 먼저 하고 허기를 달래야 108계단을 올라 ‘마애여래좌상’을 배알할 것 아닌가. 부리나케 공양간으로 달려간다.

공양간 가는 길, 공양간 지나 해우소 가는 길이 모두 예술이다. 운무에 파묻힌 계곡을 바라보며 벼랑 끝을 가는듯한 기분. 마침 이슬비도 오락가락 그 분위기가 기막히다. 다행히 공양간에는 늦은 공양을 하는 보살과 거사가 있어 밥 친구가 되어 준다.

공양도 했으니 이젠 본격적으로 당우 순례에 나선다. 먼저 「영산전(靈山殿)」, 삼존불 뒤에 ‘영산회상도’ 를 걸었고, 신중단에는 ‘신중탱화를 걸었는데 모두 금박부조상이다. 「명부전(冥府殿)」은 앞에 집채보다 큰 바위가 가로막아 접근자체가 안 되고 옆으로 난 쪽문을 통해 출입해야 한다.

명부전 옆 계단을 오르면 정면으로 승가사의 제일가는 승보(僧寶)인 ‘석조승가대사상(보물 제 1000호)’ 을 봉안한 「약사전(藥師殿)」이다.

승가대사는 인도(서역)의 고승으로 중국 당나라 고종때 「천복사」에서 중생을 제도하며 ‘생불(生佛)’ 로 추앙받던 ‘승가대사’를 추모하여 제작한 것이다. 광배 뒤에 승려 ‘지광(智光)’과 ‘광유(光儒)’ 가 고려현종 15년(1024년)에 제작했다는 명문이 새겨져 있다.

승가대사상 왼쪽 바위에서는 천하제일의 약수가 흐르고 있는데, 그 맛이 기막히다. 기도하는 보살님에게 양해를 구하고 약수를 한모금 마셨는데, 이 보살님 사진촬영을 한다니까 친절하게 조명까지 켜준다.(조명의 보람도 없이 사진발이 안 좋다.)

 
그림 2. 자연 암벽에 새긴 거대한 마애여래좌상.

약사전을 나오면 이제 승가사의 하이라이트 ‘구기리 마애여래좌상(보물 제 215호)’ 차례다. 마애여래좌상을 만나기 위해서는 다시 108계단을 올라야 한다.

관절이 아픈 노보살님들은 「향로각」에서 둥근 유리창을 통해 배알하고 예불을 드린다.

마애여래좌상은 자연암벽에 새겨진 거대한 마애불로 그 어떤 채색도 가하지 않은 맨 얼굴을 하고 있어 절로 신심이 우러난다.

마애불에서 내려오니 어느새 날이 개어 화창한데, 노 비구니스님이 떡 한접시를 들고 나오셔서 권하신다. 내가 좋아하는 ‘술떡’과 ‘인절미’. 하여간 요즘 먹을 복은 타고 난듯하다. (다음호에는 월악산 ‘덕주사’ 를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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