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시세계 구축... 살짝 흔들어주고 싶은 충동이...
"시와는 담쌓고 지낸다는 시인이
떼파도의 울음처럼 밀려오는 詩心에 펴내"


수평선도
섬도
갈매기도

눈 감고 다 지워버렸지만

흰 갈퀴를 세우고
저승에서 달려오는
푸른 말 같은 떼파도여

너의 울음만큼은 지울 수 없구나

꼭두새벽 허공에 서서
용이 못 돼 우는 내 울음 같아
이승에서는 도저히 지울 수 없구나(시 <海霧> 전문)

"썩은 이 뽑듯 시인 면허증을 반납하고, 시와는 담 쌓고 남남으로" 지낸다는 김춘추 교수(가톨릭의대 내과)가 끝내 담을 허물고 새로운 시집 『聖오마니!』(솔출판사)를 펴냈다.

시인인 그가 시를 쓰지 않겠다는 말은 의사인 그가 의사 면허를 반납하고 환자를 보지 않겠다는 말과 같지 않았을까 기자는 생각했는데, 그 생각을 강하게 뒷받침해주는 시가 <海霧>다.

수평선과 섬, 갈매기까지는 지워버렸지만 떼파도로 밀려오는 그 울음만큼은 지울 수 없다는 것은 그에게 불가항력적인 하나의 운명이다. 그래서 이승에서는 도저히 지울 수 없는 것이다. 면허증을 지녔든 반납했든 천상 시인일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시인에게 "푸른 말 같은 떼파도"의 울음은 가슴으로 벅차게 밀려오는 시심(詩心)에 다름 아니다. 가슴에 밀려오는 시심을 모른 채 시치미 뚝 떼기 어려워 세상에 내놓은 것이 이 시집이다.

첫 시집 『요셉병동』을 비롯해서 그 동안 나왔던 시집들과 마찬가지로 이번 시집의 시편들에서도 어김없이 군더더기 없는 시어들이 거침없이 터져 나온다. 거침없다 해서 무절제함이 느껴지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 반대다.

가령 시 <氷魚>는 "그 누가 유리창에 시린 창자만 그려넣었나!"라는 단 한 줄로 진술되고 있는데, 어느 술자리에서 불쑥 뱉어낸 듯한 몇 마디가 그대로 빙어에 대한 시적 진실이 되고 있다. 이만큼 절제된 시어를 경제적으로 구사한 시도 찾아보기 쉽지 않을 것이다.

불쑥 뱉어낸 듯한 몇 마디...

시 <午睡>는 시의 경지를 극단으로까지 몰고 있다. 한 편의 선시(仙詩)를 연상시키는 이 시의 전문은 "청개구리/토란잎에서 졸고//해오라기/깃털만치나/새하얀 여름 한낮//고요는/水深/보다 깊다"인데, 그림처럼 새하얀 어느 여름 午睡를 부르는 고요가 "수심보다 깊다"는 표현을 통해 더 이상 나아갈 수 없는 극단에 이르게 된다. 여름 한낮과 졸음, 고요와 수심이 너나 없이 녹아들면서 시는 사그라진 재처럼 가라앉는다. 완벽한 하나의 시 세계이기에 살짝 흔들어 그 균형을 깨주고 싶을 지경이다.

시인은 개펄에 버려진 <廢船>을 통해 이름 없이 살다간 어느 인생을 떠올리기도 한다. "녹슨 세월을 베고/밀물 썰물 왔다 가는/개펄에" 누운 폐선에서 "이 항구 저 항구에서/젓가락 잘도/두들기던/목청 좋은 그 여자"를 보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폐선 주위를 날며 우는 갈매기 몇 마리까지도 "그 여자"의 부재를 애도하는 곡비(哭婢, 상가에서 곡성이 끊이지 않도록 하기 위해 직업적으로 우는 사람)로 느끼는 시적 비약이 이루어진다. 그 순간 그림의 마지막 점을 찍듯 시의 화룡점정(畵龍點睛)이 이루어지고 있다.

시 <廢船>에서 시인의 관심이 개인사에 국한됐다면, 시 <쇠똥구리>에서는 인류보편사로 확장된다. 이 시의 전문은 "파라오 시절 홍수에도 끄덕 않고/6ㆍ25적 그 징한 포성에도 끄덕 않고//똥을 빚어 빵을 굽는//聖오마니!"다. 단 몇 줄의 시적 진술을 통해 장구한 세월을 견디며 살아온 쇠똥구리의 강인함과 비천함이 동서고금을 막론한 모든 자식된 자의 어머니의 속성이기도 하다는 시인의 진술은 "聖오마니"라는 표현만큼이나 도발적이고 충격적이다. 역사 이전이든 이후든 기나긴 세월을 인고하면서 자식을 위해 빵을 구워 온 모든 어머니의 역사가 <쇠똥구리>를 통해 상징적으로 구현되고 있다.

거침없는 듯, 절제된 시어

거침없이 토해내는 듯하면서도 절제된 시어의 운용으로 특유의 세계를 구축하고 있는 김춘추 시인의 시는 무엇보다 재미있게 읽힌다는 것이 미덕이다. 시 <주유소>는 "포장마차 酒有笑", "잡혀온 꼬막들이 혓바닥을 내놓은 채", "쇠주에 취해 발가벗은 꼼장어가 온 몸으로 미솔 흘리며" 등 익살스러운 표현들로 그득하다. "바람이/싣고 온/큰애기/목물 소리에"에 "잠깬 총각별/눈 비비며/벌린 입/다물 줄 모른다"는 시 <복날 밤>에서는 무더운 여름밤의 은근한 풍경까지 보태진다.

이처럼 감칠맛 나는 표현들은 얼마든지 만날 수 있다. "새댁 같은 찔레나무"(雨期), "큰애기 댕기꼬리에 홀린/섬 머슴애"(상사바위), "길이란 길은 다 黑黑 울고 있다"(월식), "천만 년 전부터의/내 전생은/.../그대,/눈 아래/한 점 눈물점이라오"(견우의 노래), "저수지는/저 혼자 아랫도리를 녹이고 있다"(아닌 봄) 등등......

시인 면허증은 반납했다지만, 시심까지 반납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이 시집이 세상을 보게 됐을 것이다. 이쯤이면 무관(無冠) 시인이든, 계관(桂冠) 시인이든 무슨 상관 있으랴. 앞으로 새로운 시집들을 속속 기대해보는 것도 그런 뜻이다.

요새 며칠 혹독한 겨울을 나고 있다. 그러나 아무리 혹독해도 봄은 온다. 두 계절 사이 어느 어름에 매화도 필 것이다. 김춘추 시인은 <매화>를 이렇게 읊고 있다. "어느 童妓의/전생이거나/그 밖에 또 다른/무엇이 되어/당신은 너무나/빨리 오십니다/冬冬酒 취기가/깨기도 전에." 시 어디에도 매화는 없지만, 매화 아닌 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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