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자 패널 검사’에 포함돼야 할 9개 유전자 선별

  특이위험도 산출 통해 보다 개별화된 유전상담 가능

“이 연구 결과는 암 연구를 넘어서, 유방암 환자의 진료에 커다란 영향을 줄 것입니다. 11만 명 이상의 여성을 대상으로 대규모 유전자 연구를 시행하는 일은 비용과 시간의 측면에서 결코 쉽지 않습니다. 과거의 연구 결과가 소규모여서 정확도가 떨어진 데 반해, 이번 연구는 대규모 유방암 환자를 대상으로 세계 25개국이 참여했다는 점에서 매우 획기적입니다.”

   
▲ 대림성모병원 김성원 원장

대림성모병원 김성원 원장은 The New England Journal of Medicine(NEJM) 1월 21일자에 발표된 유방암 유전자 관련 연구 논문을 소개하면서 이같이 밝혔다. 이 논문은 <유방암 위험 유전자: 여성 11만3,000여명에서의 연관성 분석>이라는 제목으로 발표됐다.

김 원장은 이 다국적 연구에 한국을 대표한 저자의 한 명으로 이름을 올렸다. 그는 “이 연구를 통해 유방암 위험 예측 패널검사(panel testing)를 구성하는 유전자를 선정하는데 매우 유용한 결과가 도출됐다”면서 “앞으로 유전상담 시 환자의 개별화된 위험도를 예측하고 그 예방법을 제시하는 데 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했다.

이 논문은 그 획기적인 성과에도 불구하고 세계적인 ‘코로나 블루’ 분위기 속에서 그만한 주목을 받지 못한 감이 있었다. 그래서 비대면 서면 인터뷰를 통해 김 원장에게 이 연구의 성과와 의미, 향후 전망을 다시 묻고자 했다. 다음은 그 일문일답이다.

  ◆먼저 연구의 배경 혹은 개념에 대해 설명해주셨으면 합니다.

유전자 검사 비용이 낮아지고 여러 종류의 유전자 검사가 단시간 내에 가능해지면서 일반인 혹은 암환자를 대상으로 한 유전자 패널 검사가 늘고 있습니다. 하지만 어떤 유전자 검사는 유방암과의 연관성이 명확하지 않은 상태에서 진행되고 있고, 호르몬수용체 유무에 따른 하위 유방암 유형의 연관성 연구도 부족한 실정입니다. 이번 연구는 유전자와 유방암의 연관성을 밝히기 위해 25개국이 참여한 연구로, 유방암과 관련성이 높은 34개 유전자에 대해 여성 유방암 환자 6만466명과 일반 여성 5만3,461명 등 총 11만 3,000여 명을 대상으로 연구를 실시했습니다. 이는 유방암 유전자 연구로는 역대 최대 규모로, 초기 단계부터 큰 주목을 받았습니다. 이제 이 연구를 통해 유전자 패널 검사에 반드시 포함돼야 할 9개 유전자를 선별할 수 있었고, 유전자별 특이 위험도를 산출하여 좀 더 개별화된 유전상담이 가능하도록 길을 열었습니다.

  ◆연구 결과를 보면 9개 유전자의 ‘단백질 생성종결 변이(protein-truncating variants)’가 각종 유방암의 위험을 높인다고 했습니다. 지금 시점에서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단백질 생성 종결 변이’란 정상적인 단백질의 생성이 중단되는 변이를 의미합니다. 우리 몸을 조절하는 중요한 물질들이 대부분 단백질로 이루어졌어요. 유전자의 이상으로 단백질의 생성에 문제가 생기면 세포성장의 조절에 실패하게 되고, 오류가 있는 세포가 증식하여 암이 생기게 됩니다. 물론 단일 유전자로서 9개 유전자의 단백절삭 변이가 중요하다는 결론이 났지만, 사실 사람의 몸은 더욱 복잡하여 여러 유전자가 상호작용하면서 균형을 이루고 있습니다. 이 연구는 유방암 위험을 높이는 단일 유전자의 리스트가 확인됐다는 데 큰 의미가 있습니다.

  ◆연구 결과에는 또 ‘아미노산 생성과오 변이(missense variants)’가 유방암 위험과 관련된다고 했는데, 이 결과는 어떻게 해석할 수 있죠?

‘아미노산 생성과오 변이’는 아미노산 조성이 바뀌게 되는 변이를 말합니다. 앞서 말씀드린 단백절삭 변이와 달리 단백질의 길이는 동일하지만, 특정 아미노산의 변화가 생겨 단백질 구조가 변화되는 겁니다. 이런 변이는 대부분 단백질 기능에 영향을 미치지 않지만, 구조적으로 아주 중요한 부위의 과오변이는 유방암 발생과 연관돼 있습니다. 대부분 단백질 생성이 안 되거나 불완전할 때 유방암이 발생하지만, 소수의 과오변이도 유방암과 연관돼 있음을 이번 연구에서 입증했다는 뜻입니다. 이 또한 실질적 유전상담에서 아주 중요합니다.

  ◆연구에서는 34개 유전자가 포함된 ‘다중 유전자 패널검사(multigene-panel testing)’가 사용됐습니다. 그 중 9개 유전자가 위험 예측에 유용한 것으로 확인됐죠. 이 결과를 토대로 위험 환자를 선별하는 진단 키트 같은 제품의 개발을 기대해도 좋을까요?

이번 연구의 성과는 개인의 유방암 위험을 예측하는 유전자 검사라는 의미에서 유방암의 진단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다시 말해 유방암 위험이 높은 사람 혹은 가계를 특정하여 생활습관의 변화, 약물 또는 수술을 통해 유방암의 발생을 원천적으로 예방하거나 개별화된 검진을 통해 조금이라도 초기에 암을 진단할 수 있는 대상을 구분한다는 의미를 갖습니다. 지피지기(知彼知己)면 백전백승(百戰百勝)이라고, 유전자의 이상을 정확히 알 수 있다면 유방암과의 싸움에서 이길 수 있습니다. 조만간 획기적인 결과들이 이어질 것으로 봅니다.

  진료지침을 바꾸고, 나아가 인류 미래 바꾸는 데 역할

  의학계 최고 저널 NEJM에 논문 발표돼 “기쁘고 영광”

  ◆지난번 연구결과 발표 자료에서 원장님은 “이 연구 결과는 유방암 선별검사와 약물 및 수술 등 유방암 관리 지침을 작성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유방암의 맞춤의학을 염두에 두셨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개인 맞춤의학(personalized medicine), 최근에는 정밀의학(precision medicine)이라는 말이 많이 쓰이는 데, 사실 의미하는 바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기본적인 개념은 인간이 유전적ㆍ환경적ㆍ대사적으로 상당히 다른 개체이므로 한 가지 가이드라인에 따라 치료하면 여러 가지 오류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약물 반응의 차이를 예측하여 용량을 조절한다든지 하는 것들이 알기 쉬운 예인데, 유전 분야에서도 맞춤의학이 크게 발전하고 있습니다. 가령 ‘안젤리나 졸리 유전자’로 알려진 BRCA1/2 변이를 가진 여성의 예를 들면, 사춘기 소녀가 흉부X-선 촬영을 할 경우 유방암 위험이 상당히 증가하고, 콩을 많이 먹는 동양 여성에서 유방암 위험이 감소한다고 합니다. 이런 결과들을 토대로 생활습관의 변화를 유도하는 것도 맞춤의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좀 더 적극적으로는 안젤리나 졸리와 같이 건강한 유방과 난소를 예방적으로 절제하는 수술적 예방법도 시행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BRCA보인자 유방암에서 특이하게 작용하는 PARP-i라는 약물이 개발되어 의미 있는 성과를 내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유방암의 위험인자로 시작된 BRCA 유전자가 이제 예방부터 치료까지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사실입니다.

  ◆연구의 주체는 ‘Breast Cancer Association Consortium(BCAC)’이고, 한국에서는 원장님이 총괄책임연구자를 맡고 있는 ‘한국인 유전성유방암 연구회(KOHBRA Study Group)’가 참여했습니다. 앞으로도 두 단체가 관계를 맺고 연구를 이어갈 계획인가요?

‘한국인 유전성 유방암 연구회’는 한국유방암학회 산하 40개 의료기관이 참여하고 있는 단체로, 2007년 보건복지부 암 정복 추진 사업단의 후원으로 시작됐습니다. 현재까지 14년간 진행되고 있고, 72편의 논문이 세계 유수 저널에 발표됐습니다. 한국의 주도하에 ‘아시아 유전성유방암 컨소시엄’이 구축됐고, 세계적으로는 CIMBA(Consortium of Investigators of Modifiers of BRCA1/2), IBCSG(The International BRCA1/2 Carrier Cohort Study), BCAC 등과 협업하고 있습니다. 이번 연구를 함께 한 BCAC는 영국 캠브리지 대학에서 주도하여 2005년에 시작된 컨소시엄으로, 유방암의 유전적 위험에 관심 있는 연구자들의 모임입니다. BCAC의 목표는 여러 연구의 데이터를 결합하여 유전자와 연관된 신뢰도 높은 유방암 위험도를 산출하는 것입니다. 10만 명 이상의 유방암 환자, 그리고 비슷한 숫자의 대조군이 포함되어 있는데, ‘한국인 유전성유방암 연구회’도 그 중 하나의 단체입니다. 유전자 연구의 특성상 대규모 연구대상이 필요하고, 각 인종별 특징을 갖고 있기에 세계적인 컨소시엄에서 협업하는 것이 몹시 중요합니다.

  ◆세계 속의 한국 유방암 연구 수준을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이미 세계적인 수준이라고 봅니다. 기초과학, 임상연구, 중개연구 등에서 의미 있는 연구 성과가 발표되고 있고, 앞으로 더욱 기대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개인적인 소망은 기초와 임상의학 연구에서 일하고자 하는 후배들이 좀 더 많아졌으면 하는 것과 천문학적인 연구비와 시간이 필요한 의학 연구에 좀 더 많은 연구비가 배정됐으면 하는 것입니다.

  ◆세계 임상의학 분야에서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NEJM에 연구 결과가 게재되어 자부심이 클 것 같습니다. 연구자로서 소감 한 말씀 해주시죠.

연구결과가 논문으로 출판된다는 것은 연구자로서 매우 큰 기쁨입니다. 나의 연구결과가 현재의 진료지침을 바꾸고, 나아가서 인류의 미래를 바꾸는 데 역할을 할 것으로 ‘동료들(colleagues)’의 동의를 얻었다는 뜻이니까요. 의학계 최고 저널인 NEJM이니 더욱 그렇습니다. 의미 있는 연구의 공동연구자로서 참여할 수 있게 되어 영광스럽습니다. 이런 연구가 원활히 진행될 수 있도록 함께 해주신 한국인 유전성유방암 연구회 회원 여러분과 연구에 참여해 주신 환자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아울러 이번 연구를 가능하게 해주신 순천향대서울병원 이민혁ㆍ서울대병원 노동영 교수님과 연구를 함께 진행해 주신 서울의대 박수경ㆍ분당서울대병원 강은영 교수님께 특별한 감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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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원 대림성모병원장은?

김성원 대림성모병원장은 서울의대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에서 석ㆍ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세계 3대 암센터 중 하나인 미국 메모리얼 슬론-캐터링 암센터에서 유전성 유방암을 연구한 이후 서울대병원 전임의, 분당서울대병원 유방센터 책임자를 거쳐 2015년 3월부터 대림성모병원 병원장ㆍ유방센터장을 맡고 있다. 대외적으로는 한국유방암학회 출판간행 이사, 한국유방건강재단 이사, 한국인유전성유방암연구 총괄 책임연구자, 아시아 유전성유방암 컨소시엄 대표 등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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