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다 전문적이고 강력한 정신건강 거버넌스 기대.

송현주 제56대 한국임상심리학회장(서울여자대학교 심리치료학과 교수)

송현주 회장

2020년 7월 15일 자 Depression and Anxiety 학술지 온라인판(Twenge, & Joiner, 2020)에 따르면, 미국 인구조사(성인 336,525명)를 토대로 2019년과 비교해 2020년 4월과 5월 기준, 불안과 우울을 한 가지 이상 경험하는 사람의 수가 3배 이상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대한민국 성인 남녀 805명을 대상으로 한 취업포털 인크루트 자료에서는 전체 응답자의 69.2%가 COVID-19로 인해 불안과 우울을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2020년 6월 3일 동아일보 보도). 중국 우한 대학생 992명의 자료에서도 중등도 이상의 우울 및 불안 등을 경험하는 비율이 69%로 보고되었다(Chen, Sun., & Feng, 2020).

전면적인 봉쇄를 경험하지 않았음에도 코로나로 인해 우리 사회는 매우 많은 심리적 외상을 경험하고 있다. 그동안 쌓아온 사회적 연대가 와해되었으며, 보이지 않은 바이러스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타인을 의심하고 적대시하는 태도도 만연해 있다. 자신도 피해자임에도 불구하고 감염으로 인한 자괴감, 비난과 죄책감으로 심하게 위축되고 있다. 실업과 감봉 등의 경제적 어려움은 가정불화, 자녀 교육 문제 등으로 파급되고 있다. 경제적‧사회적 불평등이 심화되고 있으며 이는 보다 심한 차별과 편견으로 이어지고 있다. 몇몇 극단적 사례들을 주변 나라들을 통해 간접 경험한 바 있다.

현재 모두가 포스트 코로나를 이야기한다. 직전에는 모두가 4차 산업혁명을 이야기하였다. 불행 중 다행인 것인지, 우리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상황을 겪어내면서 그동안 이루어 놓은 기술 문명의 혜택을 톡톡히 보고 있다. COVID-19로 인해 4차 산업혁명 한가운데로 단숨에 진입해 버린 것이다. 지금 경험한 기술 문명은 점차 더욱 강력하게 우리의 삶을 지배하게 될 것이다. 결국, 4차 산업혁명을 논하며 우려했던 인간 소외 문제는 현재로썬 종식이 요원해 보이는 COVID-19 대유행과 더불어 국민정신건강에 막대한 부담을 지우고 있다.

COVID-19로 인한 정신건강 문제에 대해 대한민국 정부는 적극적으로 개입하려는 노력을 보이고 있다. 많은 기관 및 단체들도 COVID-19로 인해 심리적 어려움을 경험하는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심리상담 서비스를 제공하거나 제공할 채비를 갖추고 있다. 그러나 현재 무엇보다 우려되는 사항은 이 대국민 서비스의 질이다. 정신건강 문제는 누구나 경험할 수 있는 보편적인 문제이나 이를 효과적으로 다루기 위해서는 고도의 전문성이 요구된다. 이에 대한 충분한 이해가 뒷받침되지 않았던 과거 실책으로 인해 현재 6,000여 개의 심리상담 관련 민간 자격증이 남발되고 있다. 6,000여 개의 심리상담 자격증 대부분은 한 달 혹은 반나절 만에도 취득이 가능하다. 아마추어리즘 수준의 심리상담으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가며 국민의 건강과 관련한 시스템을 책임져야 하는 국가의 부담은 시나브로 커지고 있다. 비전문적인 심리평가와 심리치료로 막대한 비용과 시간을 낭비하고 결국 적절한 회복 시기를 놓쳐 정신질환이 만성화되는 사례는 이제 너무나 흔하다.

현재는 미증유(未曾有)의 국민정신건강 위기 상황이다. 정신건강 문제와 관련하여 국가 정신건강 거버넌스가 전문성을 가지고 제대로 작동해 주어야만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정신건강 위기를 효과적으로 극복할 수 있다. COVID-19와 같은 대 유행병은 더욱 짧은 주기로 발생할 수 있다는 예측도 있다. 추후 일어날 모든 상황에 효과적이고 유연하게 대처하기 위해서는 이미 발생한 문제에 사후 약방문식(死後藥方文)으로 접근하는 방향보다는, 일상적이며 보편적인 예방을 강조하는 정책적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고도의 전문성을 갖춘 전문가들이 유기적으로 협력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강력하고 전문성 있는 국가 정신건강 거버넌스가 이를 책임지고 이끌어 가야만 한다.

지난해 현 정신건강정책과의 정신건강정책국 승격을 고려한다는 기사를 접한 바 있다. 급격하게 높아진 국민의 불행감과 우울감을 고려할 때, 이는 매우 적절한 정책 방향으로 보였으나 현재까지 관련한 진척 상황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 당면한 국민적 정신건강 위기에 효과적으로 대처할 보다 강력한 국가 정신건강 거버넌스가 작동하기를 기대한다. 또한 코로나 사태 초반 질병관리본부와 전문가들의 정보와 의사결정이 국민의 피해를 최소화했듯,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심리 방역 또한 전문적 관점에서 긴급히 다루어져야 할 일이다. 지금은 어쩌면 국민 정신건강의 골든타임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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