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민얼굴기형돕기회(Smile for Childrenㆍ회장 백세민)의 "베트남 얼굴기형 어린이 무료수술 봉사"가 올해에는 북부지역 박칸(Bac Kan Province)에서 6월 27일부터 7월 4일까지 7박 8일의 일정으로 이루어졌다.

베트남의 수도 하노이에서 북쪽으로 170km 가량 떨어진 박칸은 인구가 약 30만 명으로 중국과의 국경선에서 그리 멀지 않다. 전체 인구가 약 8천만 명인 베트남의 61개 성(Province) 가운데 가장 낙후된 지역의 하나로 꼽히고 있지만, 소수민족 출신의 베트남 공산당 서기장인 농 뚝 만(Nong Duc Manh)의 고향이기도 하다.

베트남의 역사는 전쟁의 역사라 할만하다. 1천여년간 중국과 숱한 전쟁을 치렀고, 100여년간 프랑스 식민지 지배를 받았으나 독립전쟁을 승리로 이끌었으며, 세계의 이목이 집중됐던 베트남전에서는 최강의 화력을 가진 미국을 물리쳤다. 흥미롭게도 삼국지를 통해 우리에게 잘 알려진 제갈공명의 칠종칠금(七縱七擒) 고사도 베트남 민족이 겪은 끈질긴 전쟁의 한 흔적으로 볼 수 있다.

외국과의 전쟁에서 길러진 그들의 민족적 자부심은 대단할 수밖에 없다. 그러면서도 외국인에 대한 포용력과 겸손함을 지닐 수 있는 것은 그같은 자부심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싶다. 그런 자부심의 나라에서 이루어진 의료봉사는 베트남의 무더운 열기를 더욱 뜨겁게 달구면서 그들에게 우리의 인간애를 새로이 각인시켜주었다.

더운 날은 잘 먹어야 하는데...

6월 27일 오후 7시30분 봉사단의 백롱민 단장(분당서울대병원 성형외과 교수)을 비롯한 봉사단원 17명이 인천국제공항을 이륙하여 5시간 가량 비행한 후에 베트남 하노이공항에 착륙했다. 그곳에는 이미 여름이 찾아와 후덥지근한 열기가 온몸을 파고들고 있었다. 공항에는 108군중앙병원(108 Military Central Hospital)의 성형외과 의사들이 나와 있었다. 봉사단은 그들이 제공한 차량을 이용해서 칠흑 같은 어둠을 뚫고 포장도 잘 안된 길을 따라 4시간을 달려 목적지 박칸에 도착할 수 있었다.

봉사단에게 제공된 숙소는 박칸의 주거지역이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박칸인민위원회 초대소(Guest House of Bac Kan People Committee)였다. 숙소를 대강 들러본 백 단장은 그 동안의 경험을 토대로 "괜찮은 편"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집에 "잘 도착했다"는 연락을 취하고 싶어도 그 어디에도 전화는 눈에 띄지 않았다.

숙소 식당에 늦은 저녁 식사가 차려졌다. 처음 대하는 그곳의 음식은 너무 강렬했다. 향초가 많이 첨가되어 역겨운 느낌까지 들었다. 더운 날에는 잘 먹어야 탈이 없다는데, 앞으로 보낼 한 주일이 걱정스러웠다. 입안 가득 향내를 느끼며 첫날밤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언청이 남자아이에게 첫 수술

6월 28일 이른 아침, 숙소에서 식사를 끝낸 봉사단이 차량을 이용해 수술 봉사 장소인 박칸중앙병원(Bac Kan Central Hospital)에 도착한 것은 오전 8시 30분. 곧바로 박칸 보건국 관계자와 병원 임직원, 환자, 주민 등 12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환영식이 열렸다. 이 자리에서 백롱민 단장이 봉사단원들을 일일이 소개할 때마다 뜨거운 박수가 쏟아졌다.

간단한 환영식이 끝나고 봉사단은 한국에서 가져온 물품을 정리하는 한편 수술실 세팅에 들어갔다. 수술실 하나와 수술대 두 개, 회복실 하나, 탈의실을 겸한 휴게실이 봉사단에 제공됐다. 300병상 규모의 박칸중앙병원에서는 수술 장소와 전기, 점심만 제공됐고, 나머지는 모두 처음부터 끝까지 봉사단의 손으로 감당해야 했다. 지금까지 의료봉사에 꾸준히 참여했던 한 의사는 "그나마 에어컨이 가동되는 곳에서 수술을 할 수 있게 되어 다행"이라고 말했다. 지금까지 있었던 봉사 현장의 사정을 그 한마디가 대변해주는 듯했다. 정리가 대충 끝나자마자 곧바로 수술에 들어갔다.

첫 번째 수술은 3세 남자아이에서 이루어졌는데, 윗입술이 양쪽으로 갈라진 구순열(언청이)을 가지고 있었다. 오후 1시 30분 박윤옥 선생(분당서울대병원 마취과)에 의해 전신마취가 이루어졌고, 2시부터 김진오 선생(세민성형외과)과 윤은성 선생(BK성형외과)에 의해 본격적인 입술 성형술이 시작됐다. 이 수술은 3시 35분에 종료됐으며, 마취에서 깨어난 아이는 수술실 옆에 붙은 회복실로 옮겨졌다. 평생 언청이로 살아갈 한 아이의 인생이 극적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그 사이 옆에 있는 또 다른 수술대에서는 백롱민 단장이 1시 50분부터 입천장이 갈라진 구개열을 가진 4세 여자아이의 수술을 시작했고, 3시 30분에 마쳤다. 봉사 첫날 오후에 수술 받은 환자는 이 아이들을 포함해서 구순열을 가진 3세 여아와 안검하수를 가진 11세 남아 등 모두 4명이었다.

수술을 담당했던 한 의사는 그 동안 겪은 무료 봉사활동의 경험을 들려주면서 "백롱민 교수는 항상 "이곳 아이들은 실습대상이 아니다"고 강조해왔다"고 말했다. 수술 대상이 많다고 해서 대충 수술해서는 안 된다는 경고가 담긴 말이라고 했다. 수술 받은 아이가 성장했을 때의 모습을 고려해서 갈라진 입술 조직을 잘라버리지 않고 살려두면서 완벽한 입술을 만들어주는 세심한 배려에서 그 뜻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이런 수술이 아무리 좋다 하더라도 의사 혼자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섭씨 35도를 웃도는 고온 다습한 곳에서 에어컨도 없는 차량으로 땀에 젖은 채 숙소와 병원을 오가며 모든 수술이 원활해지도록 묵묵히 도와주는 간호사 봉사단원들의 노고가 없이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또 우즈베키스탄 심장병어린이 무료수술 봉사를 앞두고 있는 성숙환 교수(분당서울대병원 흉부외과)가 봉사단에 동참하여 수술 전후 환자를 돌봐주는 것도 든든한 힘이 돼 주었다. 베트남의 뜨거운 날씨보다 더 뜨거운 마음이 아니고는 이겨내기 어려운 일주일간의 봉사 일정이 그렇게 궤도에 올랐다.

하얀 벽면을 기어오르는 도마뱀 한 마리

수술 첫날 저녁, 숙소 식당에서는 박칸 지역 당서기장의 주최로 환영연이 펼쳐졌다. 당 및 병원 관계자들과 봉사단원들이 꽤 넓은 식당 안을 가득 메운 가운데 식사와 함께 쌀로 빚은 베트남 전통술이 작은 페트병에 담겨 나왔다. 분위기가 무르익으면서 남방인들의 뜨거운 권주 공세가 시작됐다. 베트남의 "감사하다"는 말은 한자 "감은(感恩)"과 비슷한 발음이어서 서로 오가는 술잔이 더욱 친숙하게 느껴졌다.

어느 순간 게으른 형광등 불빛을 받으며 천장 높은 식당의 하얀 벽면을 타고 작은 도마뱀 한 마리가 기어오르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 모습을 신기한 듯 바라보면서 약간 오르는 취기 속에서도 "이곳이 베트남이구나"하는 느낌이 새삼 다가왔다. 여독이 채 가시지 않은 피곤한 밤이 새 벗들과 나누는 술잔 속에서 깊어갔다.

6월 29일 아침이 밝아오고 새로운 수술이 시작됐다. 이날 오전과 오후에 수술 받은 아이는 모두 10명으로 구순열과 구개열, 안검하수, 화상흉터, 합지증 등 각종 기형을 지니고 있었다. 앙상한 얼굴의 아이들은 대개 빈곤 때문에 영양이 충분치 못하다는 인상을 주었다.

이날 병원에서 도시락으로 점심을 때운 기자는 병원에서 숙소까지 1시간 남짓 걸어가면서 박칸 거주지역을 좀 더 가까이 살펴볼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차량이 그전보다 많아졌다고는 하나 아직까지는 오토바이와 자전거가 그곳 사람들의 기본적인 교통수단이었다. 영업을 하는 오토바이 택시가 이국인에게 손짓으로 호객하기도 했다. 기나긴 오토바이 행렬 속에 얼굴 깊숙이 마스크를 하고 달리는 여인들이 무척 이국적으로 다가왔다. 간혹 신발이 귀찮은 듯 까맣게 익은 맨발의 노인네도 눈에 들어왔다.

박칸은 라오카이(Lao Cai) 및 딱락(Dak Lak)과 더불어 베트남에서도 가장 낙후된 지역의 하나라고 했다. 봉사단이 숙소에서 병원으로 이동하는 도로를 따라 시장이 형성돼 있었는데, 시장에는 60년대 혹은 70년대 우리나라의 시골장터를 연상케 하는 좌판들이 널려 있었다. 각종 생고기 좌판에 과일, 나물, 반찬, 곡식 등의 좌판이 엉겨 있었고, 그 사이로 플라스틱 생필품 좌판이 나름대로 화려한 색채를 뽐내고 있었다.

"봉사단의 열정에 깊은 감동"

봉사단의 수술 일정은 7월 2일 오전까지 모두 끝났다. 봉사단은 박칸 지역에서 5일 동안 모두 150여명의 아이들에게 무료 수술을 해주었다. 이로써 1996년 시작된 세민얼굴기형돕기회의 베트남 무료수술 사업은 지금까지 총 1,800명의 어린이들에게 새 삶을 찾아주는 기록을 남기게 됐다. 더구나 수술에 사용된 기구와 기자재, 마취장비, 소모품, 약품 등은 현지 병원에 기증됐다. 성형외과라는 개념이 아직 확립되지 않은 박칸에 새로운 성형외과가 탄생할 수 있는 계기가 된 것이다.

예정된 수술이 모두 끝난 2일 오후 봉사단은 짐을 꾸리고 박칸을 떠나 하노이로 향했다. 하노이로 돌아오는 동안 차창 밖으로 산과 들, 논과 밭이 끝없이 펼쳐지고 사람 사는 동네가 나타났다 사라지곤 했다. 주마등처럼 지나는 일련의 풍경 속에서 그들의 삶은 마치 시간이 정지된 공간을 옮겨놓은 듯 고요함으로 다가왔다. 빈곤의 일상화가 이렇듯 고요할 수 있다니! 하지만 하노이에 가까워질수록 그들의 삶 속에는 베트남의 경제 부흥을 꿈꾸는 엄청난 폭발력의 에너지가 감추어져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하룻밤 묵을 예정인 하노이-대우호텔에 도착하자마자 오후 7시부터 "베트남 얼굴기형 어린이를 위한 성형수술 기념 리셉션"이 봉사단을 기다리고 있었다. 봉사단원들의 자리가 중앙에 마련된 이 리셉션에는 베트남 어린이보호기금의 천 티 타잉 타잉(Tran Thi Thanh Thanh) 부주석과 한국대사관의 유태현 대사, 박칸 인민위원회의 황 티 타오(Hoang Thi Tao) 부위원장이 축사를 했고, 백롱민 단장이 답사를 했다. 특히 이 자리에는 세민얼굴기형돕기회의 고문으로 있는 조원일 뉴욕총영사(전 베트남 대사)가 참석해 봉사단원들을 위로했다. 그는 지난 5월 아시아유럽재단(ASEF) 이사회에서 제3대 사무총장으로 선출돼 올 10월부터 4년 임기의 총장직을 수행한다고 했다.

7월 3일 아침 봉사단은 베트남 어린이보호기금의 초청을 받고 그 기금의 주석으로 있는 누엔 티 빈(Nguyen Thi Binh) 여사를 예방했다. 국가부주석을 지낸 빈 여사는 베트남전 당시 외무장관으로 재직하면서 헨리 키신저 미국 국무장관에 맞서 파리협정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빈 여사는 봉사단을 맞은 자리에서 "무더위 속에서 10시간 이상 강행군을 한 봉사단의 열정에 깊은 감동을 받았다"고 치사하고 "오랜 전쟁과 경제적 빈곤으로 질병이 많은 베트남 어린이들에게 이같은 봉사가 더욱 확대되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베트남 어린이보호기금은 특히 "수술을 통해 베트남 어린이들에게 미소(operation smile)"를 주기 위해 세계 각국에서 기금을 모아 안과 수술, 기형 수술, 언어치료, 재활치료, 심장수술 등을 후원해주고 있다.

빈 여사를 예방한 직후 봉사단은 베트남 국립묘지를 찾았다. 그곳에는 1997년 사망한 누엔 휘 판(Nguyen Huy Phan) 박사가 안장돼 있었다. 고인은 베트남의 저명한 성형외과 의사로, 세민얼굴기형돕기회의 백세민 회장이 베트남에서 무료수술 사업을 할 수 있도록 계기를 만들어주었다. 봉사단원들이 자리를 뜬 후에도 백롱민 단장은 판 박사를 추억하며 한참 동안이나 묘소를 바라보고 있었다.

판 박사 묘소 참배를 끝으로 봉사단의 공식 일정은 모두 종료됐다. 그리고 이날 밤 11시 20분 봉사단원들은 하노이공항에서 인천국제공황으로 향하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먼 이국 땅에서 7박8일 동안 모든 불편을 감수하고 군소리 없이 함께 지냈던 그 17명의 이름을 적어본다. 김명국(분당서울대병원 성형외과), 김병건(BK성형외과) 김성훈(경기일보) 김진오(세민성형외과) 박윤옥(분당서울대병원 마취과) 백롱민(분당서울대병원 성형외과) 성숙환(분당서울대병원 흉부외과) 성은경(세민얼굴기형돕기회 이사) 신재경(의계신문) 어혜정(분당서울대병원 마취과) 원현경(분당서울대병원 수술장) 윤은성(BK성형외과) 이은숙(우리들병원) 이혜영(분당서울대병원) 정경인(상계백병원 성형외과) 최주라(분당서울대병원 수술장) 최진영(인제대 일산백병원).

베트남의 그리운 얼굴들

지금 베트남에는 그리운 얼굴이 있다. 기자는 지난 2002년 12월 서울백병원 성형외과에서 연수를 받던 108군중앙병원의 부 녹 럼(Vu Ngoc Lam) 박사를 인터뷰한 적 있었다. 그런 그가 봉사단이 하노이에 도착하던 날 동료들과 함께 마중 나와 있었던 것이다. 딱 한번 마주친 그를 다시 만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다행히 그는 기자를 기억하고 있었다. 그는 봉사 기간 내내 함께 하면서 많은 도움을 주었다. 헤어질 때는 하노이 공항에서 쌀로 빚은 전통주 한 병을 건네주기도 했다.

같은 병원의 성형외과 부과장인 누엔 휘 토(Nguyen Huy Tho) 박사도 고마운 분이다. 수술을 하다가 틈나는 대로 휴게실로 찾아와 베트남의 삶과 지리, 역사는 물론 자신의 가족 얘기까지 소소하게 들려주면서 베트남에 대한 이해를 높여주려고 애써주었다. 그는 발가락이 전공이라고 했는데, 그의 이름(Tho)과 발가락의 영어발음(toe)이 비슷해 낄낄거리기도 했다.

<신재경 기자/sjk1212@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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