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승학 교수

산재의료전달체계 개편과 산재보험 시범재활수가

산업재해는 크게 사고성과 질병성으로 나눕니다. 통계적으로 보면 우리나라의 산업재해는 전체적으로 감소하는 경향이지만, 300인 미만의 사업장에서 여전히 재해가 많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산재 승인 건수는 연간 약 9만 건으로, 그 중 질병성이 10% 미만인 7,000-8,000명 선이며, 나머지 대부분이 사고성, 곧 외상이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매년 약 2,000명 미만이 산재 사고로 사망합니다. 교통사고 사망자수 4,000명과 비교해 보면 아직도 사망자 비중이 크다고 하겠습니다. 산재 다빈도 승인 상병을 보면 가장 많은 것이 손가락 골절이고, 그 다음이 손가락 절단입니다. 산업현장에서 상지 손상 환자가 굉장히 많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요골, 요추, 늑골, 종골 등 근골격계 골절 환자들이 그 뒤를 잇고 있습니다. 또한 이러한 근골격계 손상 뿐만 아니라 중추신경계 손상환자도 5년간 요양종결자 자료에서 추정컨대 연간 뇌손상이 약 6,000건, 척수손상이 약 500건 전도 발생하는 것으로 판단됩니다. 이를 종합해볼 때 우리나라의 산재의료는 외상의학이 중심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산재환자, 즉 외상환자의 요양과정을 보면 재해발생 급성기에 수술을 받고, 아급성기에 재활치료를 받으며, 그 뒤로 만성기에 요양 종결 및 후유관리를 받습니다. 이런 과정은 중증 환자에 해당하는 것이며, 대부분의 경증 환자는 6개월 이내에 직장에 복귀하게 됩니다. 중증 환자는 2년 정도 요양을 받고 이후 종결하면서 장애급여를 받게 됩니다. 산재환자에게는 의료기관에 지급하는 요양급여와 중증 환자를 대상으로 하는 상병보상연금, 장해급여 등을 포함해서 총 8종의 보험급여가 제공되고 있는데, 여기에 흥미롭게도 재활급여가 포함돼 있습니다. 산재 재정에서 급여항목의 비율을 보면,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장해급여로 40% 이상입니다. 산재 재정 약 4조 가운데 거의 반에 해당하는 부분이 보상성으로 지급되고 있는 셈이죠. 치료에 해당하는 요양급여는 대략 20% 미만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독일의 경우 산재재정에서 의료급여 비율이 약 30%상회를 상회하고 있는 것으로 볼 때 우리나라에의 산재재정은 독일에 비해 치료보다 보상에 좀 더 치중한 것으로 판단됩니다.

   
 

산재보험에서는 ‘산재재활’이라는 말이 ‘직업복귀’라는 말과 거의 동일하게 쓰입니다. 근로복지공단 조직을 보면 급여재활이사 산하에 재활국을 별도 조직으로 운영할 정도로 산재보험은 이러한 산재재활, 즉 직업복귀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근로복지공단은 2001-2005년 제1차 산재근로자 재활사업 6개년 계획을 수립한 이후 3년 단위의 재활 중기발전계획을 세웠으며, 올해 제5차 중기발전계획이 수립됐습니다. 제가 말씀드릴 많은 부분들은 바로 이러한 계획 아래에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산재재활은 의료재활, 직업재활, 사회(심리)재활 등 세 가지 영역으로 나뉩니다. 재활의학과 입장에서는 의료재활이 가장 관심사일 것 같습니다. 산재보험에서는 직업복귀라는 특수한 목표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기존 의료재활의 영역에서 포함되지 않은 행위들도 병원의 역할로 설정하고 있습니다.

산재에 대한 이러한 상황을 바탕으로 지금부터 산재보험에서 재활과 관련된 다양한 혁신을 추진하게 된 배경을 말씀 드리겠습니다. 산재의료와 건보의료는 진료비가 어느 상병에 많이 소모되는가에 큰 차이를 보입니다. 건보에서 진료비가 가장 많이 소모되는 질환은 만성신장질환이고 뇌경색, 악성 신생물, 치매, 협심증 등이 그 뒤를 차지합니다. 이는 앞서 말씀드린 외상 위주의 산재와 상당한 차이를 보입니다. 건보 재정은 주로 심혈관계 질환이나 악성 신생물 같은 내과적 질환에 사용되는 데 반해, 산재에서는 그런 질환이 거의 없고 근골격계 질환을 비롯한 외상이 대다수를 차지합니다. 우리나라의 건강보험은 행위별 수가체계를 갖고 있는데, 이 체계를 산재보험에 그대로 가지고 오면 환자군 자체가 건보와 아주 다르기 때문에 산재환자에게 적합한 재활서비스를 제공하는데 많은 한계를 가지게 됩니다. 또한 산재재정의 요양급여에서 의료에 해당하는 부분이 상대적으로 적으며, 재활 자원의 효율적 배분을 위한 의료전달체계가 제대로 갖춰지지 못했습니다. 이런 것들이 산재 재활에 걸림돌로 작용하는 것이죠.

   
 

먼저 오늘의 핵심 주제인 산재보험 시범수가의 개발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고용노동부와 근로복지공단은 2016년 3월 TF팀을 구성하고 이후 공단 직영병원 재활전문센터장들이 함께 끊임없는 회의를 통해 시범재활수가를 개발했습니다. 지금까지 네 차례에 걸쳐 개발된 수가들이 시행됐는데, 그 중에서 주목해서 봐야 할 것이 지난해 3월 시행된 근골격계 외상 집중재활 수가와 10월 시행된 직업재활 수가입니다. 현재 본 산재보험 시범수가는 공단 소속 재활전문센터에서만 운영되고 있습니다. 근골격계외상 집중재활 수가는 외상을 6종(상지절단ㆍ하지절단ㆍ하지골절ㆍ어깨손상ㆍ허리손상ㆍ수부손상)으로 범주화하여 개발되었는데, 충분한 치료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것이 그 전제였습니다(<그림1>). 치료 효과뿐만 아니라 각 질환군에 따른 평가들도 배터리(battery)로 만들어 수가를 개발했습니다(<그림2>). 즉, 환자가 객관적인 기능평가에서 호전되고 있는지 여부를 알아야 프로그램을 운용할 수 있기 때문에 평가수가를 개발했고, 반드시 평가를 해가면서 치료수가를 반영하도록 한데 묶었습니다. 또한 포괄적인 재활 프로세스를 운용하기 위해 재활 종합계획 수립과 그것을 추적관찰하기 위한 수가도 별도로 개발했습니다. 행위별수가 관점에서 봤을 때 이 수가들이 아주 낯설 것 같은데,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참조한 일본 재활수가체계는 단위별 수가체계이고 질환군별 재활훈련료가 책정돼 있습니다. 이런 경우 ‘치료의 내용이 어떻게 되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데, 일본에서도 재활훈련 및 행위 구성은 학회 가이드라인을 따르고 있습니다. 산재보험에서도 각 수가별 매뉴얼을 개발해서 최대한 표준화를 이끌어내도록 형태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직업재활과 관련된 수가는 지난해 10월에 시작됐습니다(<그림3>). 직무분석을 수가로 만들었고, 환자가 직장으로 돌아갈 수 있는지를 평가하기 위한 작업능력 평가도 별도 수가로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평가에서 문제가 있을 경우 여러 가지 훈련을 받도록 하는데, 그 역시 치료 수가로 개발해서 운용하고 있습니다. 사실 직업재활관련 내용은 수가화 이전에 예산사업으로 이루어지던 내용이었습니다만, 수가화 이후 직영병원에서 매우 활성화되었고, 특히 아급성기의 의료재활과의 활발한 연계측면에서 예산사업의 한계를 극복하는데 큰 동력이 되고 있습니다. 우리가 산재보험 시범재활수가를 개발하면서 가졌던 마인드는 △Comprehensiveness(철저한 팀 어프로치에 기반한 운영) △Based on functional evaluation(정기적인 다차원 기능평가 시행) △Goal-directed(재활종합계획수립시 기능적 목표 설정) 등과 같이 재활의학의 근간이 되는 핵심가치들이었음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다음으로 산재보험 내 의료전달체계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산재보험이 다양한 수가개발 등을 통해서 재활에 대한 좋은 콘텐츠를 가지고 있다면, 그 콘텐츠를 확장시키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가 있을 것 같습니다. 하나는 지금의 소속병원에서 시범수가를 운영하듯 산재보험이 직접 제공하는 의료서비스를 더욱 확충하는 방안이고, 다른 하나는 이러한 수가들을 민간병원도 사용할 수 있게 푸는 것입니다.

전자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자면 우선 재활특진제도가 운영되고 있습니다. 재활특진제도는 집중재활치료가 필요한 산재환자들을 재활특진의료기관으로 유도하기 위해 시작되었습니다. 근로복지공단이 산재환자 중 대상자를 선정하여 특진의료기관(소속병원 재활전문센터)으로 보내면, 특진의료기관은 해당 대상자가 집중재활 프로그램의 대상인지 여부를 판단하여 공단에 회신하고, 환자가 원할 경우 전원시켜서 집중재활 서비스를 제공하게 됩니다. 이런 특진제도는 인증제도와 함께 오래전부터 시행됐는데, 근골격 시범수가 이전에는 그렇게 활성화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최근 근골격계 외상집중재활 시범수가를 운영한 이후에 좋은 재활 콘텐츠를 기반으로 상당히 활발해지고 있습니다. 근로복지공단 인천병원의 경우 1년간 200명 이상이 재활특진 의뢰되었고, 그 중 무려 80%이상에서 전원이 이루어졌습니다. 공단 직영 외래재활센터를 개설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독일은 산재보험에서 우수한 인프라를 갖춘 외래재활센터(Ambulantes Rehabilitation)를 많이 운영하고 있습니다. 우리 산재보험에서도 이런 센터에 관심이 많기 때문에 현재 준비하고 있고, 조만간 첫 번째 외래재활센터가 개설될 것으로 기대됩니다. 외래재활센터의 개설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민간 영역과의 충돌 가능성을 우려합니다. 그러나 직업재활 같은 분야는 민간에서 하기 어렵습니다. 그런 점에 중점을 두어 운영한다면 별 문제가 없을 것이고, 산재환자들에게는 더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두 번째로 민간에서 해결하는 방법에 대해 말씀 드리겠습니다. 기존에 산재인증병원 제도를 통해서 민간의 자원을 활용하는 시도가 있었지만 효과적으로 운영되고 있는지 의구심이 듭니다. 산재환자의 의료적 특수성이 반영되지 않아 실질적인 서비스 개선의 효과가 불투명하고, 낮은 단가와 급여산정 기준으로 인해 메리트가 부족하며, 산재보험 인증제도에 대한 민간병원의 이해도가 여전히 낮기 때문입니다. 현재 소속병원에서 운영 중인 시범수가는 장기적으로 민간, 즉 인증병원으로 조금씩 넘기는 것이 수순이라고 판단되나 앞서 말씀드린 기존의 개발 취지에 맞게 운용될 수 있도록 인증제도를 미리 정비하는 것이 꼭 필요합니다. 이와 함께 의료기관 사이의 연계협력이 강화돼야 합니다. 집중재활 연계 지원금이나 집중재활 촉진 지원금을 신설하여 재활 가능성이 높은 아급성기 환자를 신속하게 재활의학과로 보내는 노력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지금 우리의 현실에서 큰 문제점은 서로 정보가 교환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환자가 왔을 때 이 환자가 무슨 치료를 어떻게 받았는지 알아야 하는데, 그런 데이터 없이 의뢰됩니다. 단순한 인센티브뿐만 아니라 진료 정보를 연계할 수 있도록 시스템 또한 마련돼야 합니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산재’라는 개념과 범위가 크게 확장됐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부족한 감이 많습니다. 산재승인 건수로 보면 우리는 연간 9만 건인데 비해, 독일은 연간 200만 건입니다. 독일에서 유독 산재가 많아서 그런 것이 아니라 ‘산재’의 개념과 정의가 우리와 다르기 때문입니다. 의료시장의 관점에서 보면 산재보험의 의료재정은 파이는 더욱 확대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러한 시점에서 재활의학과 의사들의 역할과 다양한 참여가 요망되고 있습니다.

끝으로 오늘 중점적으로 다루었던 이야기는 아니지만 척수손상, 뇌손상과 같은 중증 외상환자에 대해서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말씀드렸다시피 산재보험에서는 재활의 의미를 ‘직업복귀’에 두고 있게 때문에 애초에 직업복귀를 목표로 하긴 힘든 중증환자들은 훨씬 더 많은 의료자원이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소외되는 현상을 목격합니다. 결국 이런 중증 환자들의 대변자는 재활의학과 의사들밖에 없습니다. 이 분들에게도 보상 차원에서의 접근이 아닌 사회, 가정복귀를 목표로 하는 다양한 재활서비스의 개발과 그 실행에 재활의학의 역할이 더욱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이승학ㆍ서울의대 재활의학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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