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 서쪽 오대산에서 가지를 친 유창한 산줄기, 가장 깊숙한 곳 첩첩산중 긴 계곡 해발 1,200m 밋밋한 능선 태기산은 전형적 한국산의 아름다움을 지녔다. 올망졸망 늘어선 산등성이 사이로 태기산은 얼굴을 내민다. 가산(可山) 이효석(李孝石)선생은 봉평면(蓬平面) 남안동에서 태어났다. 남안동 뒷산 능선을 따라 올라가면 태기산 정상이다. 그의 서정적이고 자연친화적 문장은 태기산에서 유년, 소년기를 보낸 탓이라 전한다. <메밀꽃 필 무렵>의 탁월한 묘사력은 작품을 읽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인상 깊게 새겨져 고향같은 친밀한 향수, 그리움의 대상으로 떠올리게 된다. 

흥정천 맑은 물, 이제 그의 생가(生家)는 비록 흥씨 성을 가진 분이 새 주인이 되어 있어도, 3만여 평에 조성된 메밀꽃밭, 가산공원의 이효석동상, 문학소개비 그리고 작품 속 청주댁 선술집은 복원 조성되어 살아있다. 흥정천 다리건너 물레방아간이 서 있다. 낮은 산자락을 끼고 효석문학관이 새로 지어져 마지막 단장을 하고 있다. 

이효석의 후기 문학은 자연회기적 성격을 지녔다. 인간, 동물의 삶을 자연과의 합일을 추구하고 있다. 

<돈(豚)>은 동물적 자연을 <산><들>은 식물적 자연을 묘사하였고, <산>속에는 태기산의 나무들을 수없이 나열하고 있다. 

<메밀꽃 필 무렵>은 동식물 양자융화의 문학작품이다. 소설 속 작품의 배경은 달밤이다. 허생원이 회상하는 성씨성 처녀와의 애뜻한 밤도 달밤이요, 동이와 허생원이 걷던 길도 달밤이었다. 달밤이란 자연과 인간이 하나 되어 조화를 이루고, 허생원과 나귀가하나 되고 달밤과 메밀꽃 향기 그리고 허생원 일행도 자연 속에 녹아들어 하나가 되었다. 

평창(平昌)에 살아 숨쉬고 있는 민속풍물로는 미탄면 일대 평창의 정통 아리랑(아라리)인 평창아리랑이 있다. 미탄면 회동리, 청옥산 육백마지기에 지천으로 곤드레, 딱죽이 산나물이 많아 봄철 춘궁기에 나물 뜯어 생계유지하던 한이 서리고 서려 아라리로 승화 되었겠지... 

태기산자락 극성스럽게 번식하던 시누대는 조릿대마을로 복조리를 만들었지만 1976년 화전정리사업과 함께 태기리는 사리지고, 옛 마을터에는 고랭지 채소 당귀, 산나무 채집에 무, 배추는 금값이라... 세상 변하는 추세에...

경관 좋은 산간계곡, 농경지에는 동화속 그림같은 예쁜 집들이 우후죽순처럼 들어섰다. 이름하여 「하얀 메밀꽃」「산마을풍경」같은 개인형 펜션에, 「황토빌」「파인우성빌리지」「왈츠빌리지」「그린팜펜션」같은 대규모 단지형 펜션이 2년여에, 200여개가 새로 건립되었다. 대형리조트는 도시를 옮겨 놓은 듯 시끌벅적 땅값은 5배를 뛰었다나. 동계올림픽 유치운동도 한몫한 셈인데...

민박은 전형적 시골 숙박시설, 이제 호텔형 민박시설, 펜션이 자리를 잡는가 보다. 
마을 어귀에는 어디를 가나 옥수수와 감자를 팔고 있다. 황기백숙, 막국수, 시골밥상에 옥수수 탁주와 동동주는 덤으로 주는 듯 인심도 좋다. 산나물, 더덕 향에 도라지향에 취하기도....

가산의 소설 속에서 주제는 『길』이 아닐까. 대화(大和)장에서 장사를 끝내고, 달밤에 봉평장터 찾아 밤을 낮삼아 찾아가면서 무거운 몸을 나귀에 의지하여 옛날 달밤, 물레방앗간의 로맨스, 사랑이야기를 주고받는 모습이 서정적이다. 

시골장터는 5일장은 재래식시장이다. 평창읍내장은 5·10일이요, 메밀묵, 당귀, 감자, 찰옥수수, 표고버섯을 사가라 선전하고 있다. 정선읍 장날은 2·7일. 고추, 마늘, 황기가 특산물이고, 대화장은 4·9일 약초, 산나물류, 메밀묵을 사란다. 봉평장은 2·7일 메밀가루, 당귀, 황기에 산나물이 특산물이라고 했다. 봉평장과 정선읍 장날은 2·7일이라, 여행 중 날짜가 맞아 하루에 두곳을 섭렵할 수 있었으니, 이효석의 작품 속 여행속도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TV 방송 속에 봉평장 옥수수, 올챙이국수이야기가 생각난다. 1986년 횡성, 평창지역에 일찍 추위가 닥쳐 냉해를 당하여 여물지 않은 옥수수가 산더미처럼 쌓였다고 한다. 봉평 남안동 신보현씨는 하루 불린 옥수수를 멧돌로 갈아 솥에 넣고 끓여서 옥수수죽을 만들어 올챙이 묵틀에 부어 올챙이처럼 생긴 국수발이 아래로 떨어지는데 구멍 뚫린 바가지를 사용하여 찬물로 떨어뜨려 시원한 생수에 담긴 국수를 건져 참기름, 갖은 양념을 해서 먹게 만들었다. 

5월 첫 장으로 시작 10월 말까지 봉평장거리 이불가게 앞에서 국수를 팔아 장날에는 1일 150인분을 새벽 3시부터 준비하여 몽땅 팔았다고 한다. 토종옥수수는 본래 고소한 향기와 맛이 특징인데 여기에 조선간장, 풋고추, 마늘양념을 하는 것이 올챙이국수 맛의 비결이었다는데 상업화를 고집스럽게 반대하면서 남매를 대학까지 진학시켰다니 그 비결이 성실, 신토불이에 있었다는 이야기여서 구수한 옛 추억담이었다. 

내친걸음에 6번국도 따라 뱃재, 멧둔재터널, 마전터널 그리고 비행기재를 넘어 정선읍 장을 찾았다. 조양강 뗏목축제 애드버룬이 하늘 높이 들떠있었고, 34℃ 무더운 날씨 시끌벅적 시골장터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정선역에는 마침 5일장터 관광열차가 멈췄다. 승객들이 조양강 다리를 건너 시장터로 몰려 들어온다. 승용차들은 발이 묶였다. 거리는 큰 주차장이 되었다. 시장입구에는 엿장수가 지난 유행가 디스코 메들리 속에 가위춤으로 흥을 돋우고 시장터 기존 상점들은 개점 휴업상태다. 상점 앞 도로에는 옹기종기 보따리 장사들이 진을 쳤다. 감자떡집 떡시루는 흰 김을 힘겹게 내뿜지만 기다리는 손님은 목젖이 떨어질 정도로 소걸음이다. 

그 옛날『동동구리무』장사를 연상하는 약장수는 북을 동동 두드리며 풍악을 울리고 약을 팔고 있다. 시골영감님은 설피, 멍에, 망태 같은 소품을 팔고 있고, 대장장이는 호미, 삽, 괭이를 손질하며 농기구 팔기에 정신이 없다. 장터 입구 대장간의 풀무와 불열기속에 무쇠는 해머의 장단 속에 농기구 만드는 장면은 어린 시절 넋을 잃고 보던 풍경이 아니었던가.

노점상 포장마차 수수북구미 부침집은 번호표를 받아야할 지경, 10개를 사는데 한 시간쯤 걸렸다. 메밀묵, 감자가루, 취떡은 없어서 못 팔고, 곤드레, 취나물 노점에서는 검은 봉지가 바삐 오간다. 노가리 장사는 불에 구운 노가리를 가위로 잘라서 인심 좋게 먹어보라 선전하고 약콩, 서리태공은 검은콩의 신비 때문인지 물어보는 사람도 많다. 두꺼비기름 장사는 그럴싸하게 화상, 피부건조증에 특효라고 선전하면서 재담을 잘하여 발 디딜 틈 없이 사람을 끌어 모은다. 

올챙이 국수는 없어서 못팔고 노점상 막국수집은 일찍 장사를 접었다. 모두 신나는 한마당, 구기자 당귀, 장뇌삼, 헛개나무, 가시오가피, 황기... 이것이 바로 그것이었구나. 감탄사 연발이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했던가. 다리품도 적당히 팔았다. 시장터에서는 마땅하게 식사할 곳이나 차례를 기다리기 어려워 수수부구미, 메밀부침을 사들고 식당을 찾아 들어갔다. 막국수를 기다리는데 또 한 시간은 걸렸다. 왠 후추가루를 그렇게 많이 쳤는지 매워서 정신이 나갈 지경이었다. 예부터 메밀은 척박한 땅에 잘 자라, 구황식물 취급을 받아 왔다. 쌀, 밀보다 영영이 우수한 귀하신 몸이라는 연구결과 인기가 오르고 있다. 

식탁 위 생약(生藥), 살 빼고 성인병 막는 막국수의 힘이라니 「막」이란 거칠거나, 품질이 낮은 마구 닥치는 대로의 뜻이 들어있어 음식이라 할 수 있을지...

막노동, 막일, 막걸리, 막장, 막국수하면 세련미가 없지 않는가. 게다가 막말을 하면...

서양인들은 메밀 스넥, 다이어트 식품으로 즐겨 먹고, 비타민과 미네랄이 많이 들어있어 식물전체는 건강식이라는 연구 결과다. 메밀싹은 루틴 덩어리라, 메밀을 발아(發芽)해 먹으면 루틴양은 30~50배 늘어난다니 메밀싹 비빔밥은 어떨까?

 메밀점병에 옥수수 탁주야 제격이겠지만 메밀, 수제비도 운치 있겠고, 메밀수제비처럼 두껍게 밀어 썰은 손국수는 들여 마실 때 콧등을 친다해서 이름 지어진 콧등치국수는 다음번에 시식해 보기로 하고 나그네들은 맛보기 정터순례를 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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