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종 규제 등에 묶여 새 기술이나 기기도입 봉쇄]

▲ 김영훈 대회장
지난 10월 12~15일 3일 동안 코엑스에서 제9차 아시아·태평양 부정맥학회 학술대회(APHRS)가 열렸다. 이번 학술대회 조직위원회 김영훈 대회장(고려대 안암병원 부정맥센터) 주도로 역대 학술대회 가운데 질과 양에서 최고의 학술대회라는 평가를 국내외 참가자들로부터 받았다. 그러나 김영훈 대회장은 학술대회 후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학술대회는 가장 성공적인 행사로 치루었지만 국내 부정맥분야의 미래는 어둡다“는 평가를 내렸다. 왜 그럴까. 다음은 김영훈 대회장과의 일문일답이다.

- 성공적인 학술대회라는 평가가 나왔다. 그런데 김영훈 대회장의 얼굴은 그다지 밝지 않다. 무슨 문제라도 있나.

→ 학술대회 자체는 역대 가장 성공적인 학술대회라는 데에는 나도 동의한다. 그러나 이번 학술대회에서 우리나라 부정맥 수준을 외국 석학들에게 그대로 보여준 것 같아 아쉬움이 더 컸다. 일본을 예로 들어보자. 일본인들은 아인슈타인을 초청하여 상대성이론을 직접 들었다. 당시 일본인들은 아인슈타인이 직접 분필로 쓰는 걸 보고 자극받았는데 당시 강연을 들은 사람들 중에 일본 최초의 노벨상수상자가 나왔다. 우리는 당파싸움이나 하고 희망을 잃어갈 때 일본은 대외적으로 핫이슈가 되던 최고 학자를 불러와서 강의를 여러 번 들었다. 그 자극이 오늘날 수많은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했다. 다시 이번 학술대회를 보자. 한국뿐 아니라 아시아의사들이 이런 수준 높은 학회를 치룰 수 있고 이제는 세계적인 학회로서의 위상을 만드는 데 어느 정도 일조했다고 본다. 처음 시도하는 것이 여러 가지 있지만 이는 상징적인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다른 학회가 아닌 이번 학회에서 국제적으로 처음 발표하는 논문이 많았다는 점이다.

-상당히 자극을 많이 받았다는 느낌이다.

→유럽에서 진행된 페이퍼를 이번 학술대회가 열린 우리나라에서 처음 발표하는 자극, 아인슈타인 이야기처럼 ‘브랙퍼스트 위드 매스터‘라는 세션을 매일 아침마다 했다. 학술대회 참가자들을 대상으로 미리 사전투표를 통해 누구와 아침식사를 하면서 인생이야기 학문이야기 같은 내용과 함께 저널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영감을 받도록 했다. 400명 석학 가운데 투표를 통해 10명을 선별하고 또 그 각자에게 10명이 식사할 수 있는 시간을 만들었다. 저도 맨 마지막 날 마스터 중 한 사람으로 선정되어 외국 참가자들에게 아시아에서 또 우리나라가 얼마나 다양하고 드라마틱한 국가라는 점을 각인시켰다. 나와 식사를 함께 한 캄보디아 부정맥연구소에는 의사가 달랑 한명 뿐이다. 현실 좀 알고 학회가 단순히 미팅이나 하고 페이퍼를 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아시아 저개발국가에는 부정맥 치료 못 받아서 힘들어하는 사람들 많다.

- 이번 학술대회 경험을 차기 개최국가에게도 전수할 생각은 없나.

→ 학술대회 후에 차기학회가 열리는 일본 주최측에 장문의 편지를 보냈다. 피드백을 받고 있지만 이번 학술대회 종합적인 결과가 나오면 모든 데이터를 제공하겠다. 다만 올해 처음 시작한 젊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준 석학들과의 만남 등을 통한 발표세션 등을 내년에도 꼭 계속 유지했으면 하는 바람에서 간곡하게 얘기했다. 아시아권에서도 부정맥 분야에 대한 부흥을 일으키자는 측면도 강하다.

- 우리나라 부정맥 수준에 대해 학술대회 기간 내내 아쉬움을 많이 드러냈는데 이유가 무언가.

→ 아쉬운 게 많다. 대한민국이 이젠 세계 최고의 학술대회를 개최한다거나 각종 회의를 할 정도로 능력이 있다. 이번 학술대회 프로그램도 완벽했다. 참가자들로부터 한결같이 어떤 미팅보다도 좋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 ‘브랙퍼스트 위드 매스터‘ 전경
그런 면에서는 기쁘다. 그런데 내용을 잘 보면 그렇지 않다는 느낌이 든다. 학술대회에서 발표된 논문들을 살펴보면 답답함 그 자체다. 대한민국에서 뉴 테크놀러지를 써서 봤더니 이렇더라, 이런 데이터가 없다. 현재 여건을 고려할 때 5년 후 10년 후에도 개선될 여지가 없어 더욱 답답하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부정맥 분야는 새로운 기기와 장비를 쓸 수 있는 여건이 안 돼 있다. 7-8년 전 일본이 그랬다. 일본 의사들이 우리 랩에도 한 달에 두 번씩 오고보고 배우고 그랬다. 지금은 일보에서 한국에 안 온다. 중국에서도 안 온다. 올 필요성이 없는 거다. 옛날하고 다르다. 이미 테크놀로지가 뒤처져 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대한민국에서는 배울 것이 없다는 이야기다.

- 국내에서 부정맥 분야하면 김영훈 교수를 빼놓고는 이야기를 할 수 없다는 이야기들을 많이 한다. 한국에서 배울 것이 없다는 자괴감 같은 말은 상황이 이 같이 처한 데에는 결국 김영훈 교수도 큰 책임감을 느껴야하는 것 아닌가.

→ 사실 이번에 나도 좋은 연구발표를 했다. 그런데 환자에 적용한 의료장비는 우리병원 기기도 아니다. 데모다. 외국 참가자들은 우리 랩에서 그런 기계를 구입하여 환자에게 사용하는 줄 알겠지만 아니다. 이건 내가 10여 명을 사전에 임상적용을 했다. 라이브로 해서 새로운 메시지를 주기 위해서 좋겠다고 판단했다. 그런데 라이브를 하게 되면 뭔가 교육적인 포인트가 있어야 하는데 우리가 할 수 있다는 것은 그런 게 아니라 기존 랩 시스템 보다는 장점이 있다고 생각돼 사용했다. 데모로 겨우 쓴 거다. 현재 우리 실정에서는 수억원이 넘는 그런 장비 도입에 엄청난 시간이 걸린다. 병원에서 쉽게 턱턱 사줄 병원은 없다. 설사 구입한다고 하더라도 의료보험수가가 따라오지 않는다. 결국 환자부담으로 귀결되는데 너무 부담이 크다. 앞으로 5년 후에 일본과 경쟁을 한다고 해도 그런 쓰리디 시스템에 대해서는 일본이 다양하게 경험한 발표를 우리는 그저 부러운 눈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다.

- 정책적인 문제는 없나.

→ 최근 우리나라 의료계와 정부가 공통점을 찾지 못하고 있는 것이 원격진료부분이다. 핫이슈가 원격의료다. 현재 우리나라는 원격이란 말만 해도 아무것도 못한다. 페이스메이커나 ICd 등 부착하고 있는 환자들은 원격진료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제주도에 있는 환자가 서울로 자주 올 수는 없다. 원격의료를 통해 간단하게 실시간으로 모니터링만 해도 된다. 환자가 심부전 초기증상 나타나면 알려주는 기능도 있다. 그걸 보고 약 조절하자고 할 수 있다. 우린 그 소프트웨어 못 받는다, 원격의료란 이유로.

- 현재 원격의료는 정부의 강력한 실행의지가 있다. 그럼 원격의료만 실시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나.

→ 아니다. 또 다른 하나의 이유도 있다. 서버, 메인데이터가 미네소타에 있는데 우리나라는 개인정보보호법에 걸려서 못 보낸다. 해결책은 독자적으로 국내 서버를 구축해야 하지만 엄청난 돈이 든다. 한두 명 밖에 안 되는 환자를 위해 그런 인프라를 구축해야 한다면 하지 말라는 이야기나 마찬가지다. 우리는 일 년이고 이 년이고 팔로업하는 환자를 원격의료하겠다는 것이다. 초진이 아니다. 그거 할 수 있는 대형병원이 한국에 몇 개나 되겠냐. 이런데도 원격의료라고 막고 못 쓰게 한다면. 할 말은 없다. 우리는 데이터가 없다. 세계적으로 아이티 강국이라고 자랑하고 있는데 실상은 그렇지 않다. 우리는 원격의료 말도 못하고 있다. 우리도 빨리 쓸 수 있게 하자고 이야기하면 좋긴 한데 수가가 또 발목을 잡는다. 물론 수가를 체계화한 다음에 사용해야 하지만 환자는 기다려 주지 않는다. 너무나 답답한 현실이다. 이래서 아시아에서 리딩 그룹에 속할 수는 없다. 이번에 절실히 느꼈다. 이게 현실이다. 걱정된다.

- 그럼 외국 의료기관에서는 최신 의료기기 사용하는데 우리보다 제약은 없나.

→ 카테터도 별다른 제약없이 사용하고 있다. 일본, 홍콩에서는 우리보다 훨씬 더 쉽게 사용한다. 현재 우리나라는 2세대 기기를 사용하는데 반해 이들은 4세대 기기를 사용한다. 이래서는 경쟁이 안된다. 국내 현실은 식약처 허가를 못 받았다거나 기존의 2세대와 같은 가격으로 구입하려는 경향까지 보이고 있다. 심지어는 90% 가격을 쳐준다. 엄청난 R&D를 해서 개발했는데 대한민국만 값싸게 구입하라고 하니 회사나 개발자들로부터 외면당하고 있는 것이다. 왜 한국에서 구입할 수 없냐고 문제제기를 하면 우리가 문제가 아니라 한국이 문제라는 반응을 보인다. 그렇게 우리가 못 쓰고 있는 걸 부정맥 분야 회사에게 리스트로 가져오라고 하면 적어도 7-8개는 될 거다. 합리적인 가격조정은 물론 전문가 의견 들어야지. 답답하다. 일본에서는 4세대를 쓰는데 우리는 병원별로는 거의 상황은 비슷하다.

- 사례를 들어달라.

→ 심방세동 시술에서 냉동요법으로 ‘크라이얼 벌룬‘이란 것이 있다. 안전하고 간단한 시술이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아직 그게 없다. 메디트로닉 회사에 따르면 이미 지난해 일본은 1천 케이스를 했다고 밝혔다. 이번에 나는 한 번도 사용해 보지 않았다고 하니까 다들 웃었다. 왜 못 들어 오냐. 가격이 안 맞아서. 크라이얼 벌룬 가격의 경우 300만원 정도인데 우리는 150만원으로 구입하라고 하니 못 들어오는 것이다. 이런 장벽이 부정맥에서는 특히 심각하다. 이 상태라면 더더욱 우리는 학회 리딩 구룹에서 멀어지게 된다. 우리는 거의 태국 수준이다. 답답하다. 심평원이든 복지부든 우리 현실을 정확하게 해서 프로세스를 정립해야 한다. 의료기기 회사편을 드는 것이 아니다. 최소한 합리적으로 해야 되지 않는가. 일본에는 이미 들어왔는데 우리가 못 들어온 이유가 원격진료 문제냐 가격 문제냐 혹은 정책 문제냐. 이제부터 라도 정확한 원인을 분석하고 대응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과거 7~8년 전 일본이 그랬다.

▲ 아시아·태평양 부정맥학회 학술대회 모습
- 정권마다 정책 차이가 큰가?

→ 정권문제가 아닌 것 같다. 부정맥 분야는 워낙 새로운 기술이 짧은 시간 내에 많이 이루어진다. 그걸 한국에서 명확히 하게 어렵다. 신의료 기술을 평가해 달라고 오는데 프로세스가 말이 안 되고, 그런 것도 순발력이 떨어진다. 6개월 1년씩 쉽게 넘어간다. 지치게 된다. 건강보험재정의 경우 엄청난 흑자를 기록하고 있다. 비전을 만들어 우선은 사용하면서 데이터도 만들고 이런 데이터가 쓸모 있다면 확대해야 한다. 아예 쓰지도 못하게 하면 학문적으로 이류 국가로 전락한다. 몇몇 외국회사의 기술마케팅하는 친구들이 한국 시스템을 이야기한다면 엄청나게 할 이야기 많을 것이다. 정권 문제 아닌 것 같다. 부정맥 분야가 워낙 새로운 기술이 짧은 시간 내에 많아진다.

- 이번 학술대회 기간에 아시아 저개발국가에 대한 지원방법도 나온 것으로 알고 있다.

→ 학술대회 기간에 재정적으로 남는 자금을 이용하여 저개발 국가를 지우너하는 방안이 나왔고 또 합의도 이뤘다. 한국은 캄보디아와 몽골을, 일본은 필리핀, 타이완은 미얀마, 싱가폴은 라오스 등 4개 국가가 5개 국가를 지원하는 것으로 합의했다. 국가대 국가를 매칭하고 5년 후에 결과를 지켜보자는 것이다. 젊은 부정맥 전문의를 키우고 우리나라에 와야 한다면 재정 지원하고 등등. 정기적으로 그 나라를 엄선된 전문가들이 가서 돕자는 취지다. 지난해 캄보디아 최초의 부정맥 컨퍼런스가 프놈펜에서 열렸다. 의사들 모으고 시술도 직접 하면서 나 혼자서 했지만 이젠 혼자만 가는 게 아니라 젊은 의사들이랑 함께 가서 같이 교류하게 한다. 부정맥 분야에서 페이퍼 쓰려면 한국 데이터만으로는 안된다. 다양한 증상이 그 나라에도 있다. 그걸 몽골, 캄보디아와 함께 퍼블리시하면 더 건강해진다. 이번에 5개 국가를 매칭하게 됐지만 많은 나라가 우리와 매칭하길 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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