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 어렸을 때 시골에는 논두렁 밭두렁에 밭밑콩이 인기였다. 구수한 콩밥은 식욕 증진제였다. 콩누룽지 맛 잊지 못하고, 누른 밥은 어느 입에 들어갈지 몰랐다. 십리 들판 건너 학교에서 돌아오면 큰 솟 한구석에는 공루릉지가 한주먹, 간식거리였다. 아! 외손자 녀석. 고향에서 사온 콩 밥속에서 콩은 모두 골라내고 먹고 있다. 먹거리 넉넉한 신세대들은 우리 어린시절과는 너무 다른 식성이다.

서울의 콩국수, 기와지붕의 다이내믹함에 흠뻑 빠져 있는 마틴 프라이어(Martin Fryer, 59) 영국 문화원장은 한달에 두세 번은 시청역 인근 콩국수 맛집을 찾아 걸쭉한 콩국을 마신다고 한다. 또 평양냉면집을 찾아 툭툭 끊어지는 메밀면을 자주 먹는다고도 한다.

상다리가 휘어지도록 음식을 차려 놓고, 주인은 손님에게 ‘차린 것은 없지만, 많이 드세요’, ‘쏘는 문화에도 반하고, 이제는 손님 대접 문화도  좋아하게 되었다’고 전한다.

농촌에서 6월 망종 절기에 보리이삭 구워 먹던 악동들 이야기를 글로 옮겼더니 고향 친구는 ‘콩설이’가 더 재미있었다며 문자를 보내왔다.

사랑하는 사람의 모든 게 좋아 보이면 ‘콩깍지가 씌었다’고 한다. 나눔의 미학은 ‘콩 한 쪽도 나눠 먹는다’하고 거스를 수 없는 진리를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고 하지 않는가.

우리에겐 콩과 관련된 속담만도 100가지에 이른다고 하니, 콩은 우리 민족의 정서가 고스란히 담겨 있는 양식이었다. 더구나 콩을 ‘신데렐라’와 비유하기도 하니 도대체 그 이유는 무엇일까. 계모와 계모 딸에게까지도 구박과 미움을 받다가 유리구두가 인연이 돼 왕자와 결혼한 동화 속 주인공 신데렐라처럼 신분이 급상승한 이유는 어디 있을까.

식품영양학자들은 ‘수많은 식품 가운데 콩처럼 완벽한 식품은 찾아보기 힘들다’고 말할 만큼 콩의 성분과 효능이 최근에 와서 더욱 확실히 입증되었기 때문이다. 콩의 성분과 효능은 다른 어떤 식품과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라 한다. 콩은 구하기 쉽고 먹기 쉽고 소화도 잘 된다. 한국의 전통 발효음식이 병을 물리치는 데 도움이 된다는 사실은 여러 연구자들을 통해 밝혀지기도 했다.

콩은 발효음식의 한 가운데 있다. 콩으로 할 수 있는 요리는 끝이 없지만 현재까지 1000여 가지로 알려지고 있다. 두부청국장 콩나물.... 특히 된장, 고추장, 간장 등 콩을 재료로 한 발효식품은 우리 민족의 ‘거대한’ 발명품이다. 우리 몸에 유익한 갖가지 성분이 들어 있는 최고의 자연식품이다.

AD290년 중국에서 발간된 <삼국지위지동전>이란 책 속엔 고구려인의 장 담그고 술 빚는 솜씨가 훌륭하다 적고 있다. 최근에는 고급 레스토랑을 중심으로 두부샐러드, 두부 아이스크림, 두부 스테이크 등 신 메뉴 개발이 확산되고 있다.

콩은 옛 고구려 영토를 포함 한반도 전역에 재배할 수 있는 농산물이었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나라의 콩 재배면적과 생산량이 매년 줄어 전체 콩 수요량의 70% 이상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실정이다. 수입콩은 잔류농약 및 안전성 문제를 들어 가격이 비싸더라도 국산콩을 선호하고 있는 실정이 되고 있으니 안타깝다.

콩국수는 냉면과 쌍벽을 이루는 여름철 대표음식이다. 콩국수는 냉면과는 조금 다르다. 남쪽에서 평양이나 함흥냉면은 어쩌다 밖에 나가서 먹는 특별한 음식이었다. 콩국수는 여름이 되면 집에서 직접 콩을 갈아 만들었던 ‘어머니표’국수다. 남한 사람은 콩국수에 더 고향을 느끼는 이유가 그 때문이다.

콩국수는 서민들의 여름 별미요, 콩국수에는 어떤 그리움 같은 것이 배어 있고, 고향의 맛 어머니의 손맛이 떠오른다.

19세기 말 조리서 ‘시의전서(是議全書)에 콩국수 이야기가 전하고 있으니, 불과 100년은 조금 넘었을 듯싶다. 조선시대에는 지금 두유(豆乳)를 마시는 것처럼 콩국을 미리 만들어 놓고 부족한 양식 대신에 수시로 콩국을 마시며 영양을 보충했다.

이익(李翼)은 <성호사설(星湖僿設)>에서 자신은 친지들과 삼두회(三豆會)를 만들어 콩 음식을 먹는다고 적었다. 주로 먹었다는 음식이 콩죽 한 사발, 콩국 한 잔, 그리고 콩나물 한 쟁반이라 했다.

조선 정조 때 다산 정약용은 춘궁기가 되면 뒤주가 비어 있을 때가 잦아져서 콩국 마시는 걸로 만족하며 지낸다는 기록을 남겼다.

구한말의 학자요 의병장이었던 면암 최익현도 밀과 보리는 이미 흉년이 들었고 햇곡식이 나오려면 까마득한 시절 부엌에는 콩국이 떨어지지 않았는지 염려된다며 고향의 살림을 걱정하는 편지를 보낸다. 유배지에서의 집안걱정 이야기다.

콩국수의 주재료 콩국은 청빈한 선비들이 절개를 지키며 먹던 음식이며 살림이 넉넉지 못한 서민과 농민의 양식이었다. 지금은 콩 값이 비싸져서 싸구려 음식처럼 느껴지지 않지만 옛날엔 감옥에서 콩밥을 먹었을 정도로 흔해 빠진 곡식이었다. 그래서 가난한 살림에서 콩을 갈아 만든 콩국은 부족한 양식 보충제였음을 짐작케 한다.

여름이 되면 농촌에서는 갓 거둔 밀을 빻아 가루로 만든 후 국수를 뽑아 콩국에 말았다. 평소에는 모자란 양식 대신 마시던 콩국에다 새로 추수한 밀로 만든 국수를 말아 여름철 서민들의 최고 별미가 된 것이다. 조선시대 서민은 콩국수, 양반은 깻국을 별미로 쳤다. 요즘은 콩국이 중심이 되고 깨, 잣, 땅콩은 보조가 되었다.

콩은 단백질 성분이 소고기보다 2배 이상, 칼슘은 200배가 더 많으며, 필수 아미노산도 소고기, 돼지고기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다.

무더운 여름철은 우리 신체가 매우 피곤해지는 계절이다. 우리 어렸을 적 할머니, 어머니들은 콩을 갈아서 고운체나 무명 자루로 정성껏 콩 국물을 마련하시고, 비지찌개, 비지 비빔밥이나 콩물 부침개를 만들어 주기 위해 비지까지 마련하셨다. 오뉴월 농사철 그리고 김매기 때에는 논두렁 밭두렁에 콩국을 새참으로 해 내오셨다.

굵은 칼국수면, 콩국수에는 깨와 오이채는 기본이다. 콩국수는 담백함이 기본이다. 콩 고유의 비린내는 얼음과 함께 소금을 살짝 뿌려 먹는다. 더욱 깔끔한 맛이 탄생하고, 농사철 막걸리는 에너지원이었다.

고향동네 아저씨 “하느님 배불러도 죽습니까?”

논두렁에 남산만한 배를 움켜쥐고 행복한 포만증을 즐기시던 광경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5살 박이 외손자 녀석, 1년 전 다니던 어린이집을 지나면서 여기가 ‘옛날’에 다니던 어린이집이라 한다. 그러고 보니 옛날 농사철 들판에 새참 함박을 이시고 나가실 때 술병과 물병을 들고 다니던 시절은 정말 옛날이었다.

옛날엔 농사철에 논밭길로 지나다니는 과객(過客)도 많았다. 새참 때 남은 음식을 나누어 주며 대접하던 시절도 있었다. 이젠 스마트 폰으로 ‘자장면’, ‘우동’을 주문하고, 식후에 커피까지도 배달해 준다.
“아저씨! 들판에서 막걸리를 마실꺄?” 강화 사투리다. “지금 막걸리 마시는 인부들이 어디 있씨꺄!”

이제 어제와 오늘이 다르게 과학영농시절 달라진 풍속도 많다. 콩국수 맛 집. 도시에 많이 있다. 대부분 칼국수집이다. 콩국수 맛은 비슷하지만, 콩 요리 전문점에서 우리 콩으로 만든 칼국수를 먹을 수 있는 조건은 이제 손꼽을 정도로 많다.

이젠 콩국수 맛 여행도 가능해지지 않았겠다. 민통선 안에서 재배하는 통일촌 장단콩마을에서 맛보았던 콩국수는 잊기 어렵다.

조합공동체 음식점들이지만, 조합직영 ‘슬로푸드(Slow Foods)’를 맛볼 수 있었다. 하기야 등산 뒤에 맛보는 시원한 콩국수 맛이란!

TV화면 속 ‘한국인의 밥상’ 속에 십이령고갯길 수수개떡 이야기 즐거웠다. 요즘엔 방송국마다 ‘먹방’, ‘쿡방’ 그 시간은 매일 점심시간이 가까워오는 시간이라. 식사조절, 체중조절 환자들에게 강조하고 있는데 방송화면에는 맛있는 음식물로 도배를 하고 있으니....

환자를 보면서 힐끔거리는 시간은 정말 배가 고픈 시간이었다. 신문의 “콩죽과 쑥콩죽” 이야기 속에 조선 왕들의 식사시간이 흥미로웠다. “조선의 왕들도 오전 다섯 시에 기상해 왕실 어른들에게 아침 문안을 드린 후 여섯시가 되면 초조반(初早飯)으로 반드시 죽을 먹었다. 살이 찌지 않는 치즈라 불리는 메주콩은 성인병을 예방하고 노화를 방지하는 식품이다.” 여기까지는 이해할 수 있으나 “자투리 시간이 고무줄처럼 늘어나는 날, 기분이 우울하고 눅눅한 날엔 콩죽이나 팔팔 끓여 먹자” 했으니 실천해 볼까.

‘너무도 쉬운 콩 요리’라 하네요. 그럴 수밖에요. 여름철 콩 음식 중 대표적인 게 콩국수 아닌가요. 보양식이라지만, 만드는 과정은 현대인에게 번거로우니, 두부사용하면 간단하고 고소한 콩국수 만들 수 있다나요. 우리 콩으로 만든 신토불이 두부가 더욱 고소하다는 사실만은 염두에 두면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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